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데.. 손님으로 온 나훈아가 한 눈에 반해 캐스팅한 레전드 가수

1955년 태어난 심수봉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가까웠다. 세 살 무렵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아 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들며 연주 실력을 키운 그는 청소년 시절 미8군 무대에서 드럼까지 소화할 정도로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실력파로 성장했다.

대학생 시절, 심수봉은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도쿄호텔 나이트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바로 이곳에서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 운명적 인물이 등장했다.

당시 최고 인기 가수였던 나훈아가 손님으로 찾아왔고, 심수봉은 서비스 차원에서 나훈아의 히트곡 ‘물레방아 도는데’를 피아노를 치며 노래했다.

심수봉의 독특한 음색과 노래에 매료된 나훈아는 음반사 사장을 데리고 와 가수 데뷔를 권유했다.

당시 가수가 될 생각이 전혀 없던 심수봉이었지만, 나훈아의 추천으로 바로 계약서에 서명하며 새로운 길이 열렸다.

이후 나훈아는 심수봉을 위해 직접 '여자이니까'라는 곡을 써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곡은 이후 교통사고로 인한 긴 공백 끝에 3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음반 발매가 지연되던 심수봉은 1978년, 명지대학교 3학년 시절 ‘대학가요제’라는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적어도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이 나올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였다. 자작곡 ‘그때 그 사람’을 들고 무대에 오른 그녀는 그해 대학가요제에서 단숨에 주목받으며 가수로 데뷔했다.

곧바로 대히트를 기록하며 심수봉은 스타로 등극한다.

데뷔 직후, 나훈아가 군 복무 중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심수봉은 어린 마음에 “저 사람 대신 내가 죽을게요”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끔찍한 사고를 겪게 된다.

이 사고로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했고 얼굴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때 병실을 찾아온 사람이 나훈아였다.

나훈아는 직접 기타를 치며 그녀를 위로했고, 이 장면은 훗날 그녀의 대표곡 ‘그때 그 사람’ 가사 속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고 위로하며 다정했던 사랑한 사람’이라는 구절로 남았다.

심수봉은 훗날 “나훈아 선배님은 은인 같은 분”이라고 담담히 회상했다.

짧지만 깊었던 인연은 그녀에게 가수로 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외롭고 불안정했던 젊은 시절의 큰 위안이 되었다.

이후 백화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마지막 인연에서 나훈아는 “이 바닥에서 버틸 사람이 아니니 가수를 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고,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심수봉의 삶은 이후에도 순탄하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 금지, 정신병원 감금, 고문 소리까지 들어야 했던 트라우마, 미혼모로서의 삶 등 수많은 시련이 그녀를 찾아왔다.

하지만 1984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로 재기에 성공했고, 이후 데뷔 30주년을 맞아 당당히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랐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

Copyright © by 뷰티패션따라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컨텐츠 도용 발각시 저작권 즉시 신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