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독일이 반한 한국의 전기 자전거 기술"

마이크로 모빌리티 전용 모터 만드는 이플로우 윤수한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공중전화부스에 기대 선 윤 대표. 그가 개발한 수소연료 충전시설 호아시스는 딱 공중전화부스 정도의 크기다. /더비비드

가솔린, 경유 등을 이용한 내연기관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각국에서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노르웨이는 2025년, 네덜란드는 2030년, 영국·프랑스는 2040년부터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캐나다 퀘백주도 단계적으로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내연기관의 대안으로 ‘전기’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소리가 들린다. 긴 충전 시간과 짧은 주행거리가 대표적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수소연료’다. 수소 전기자전거는 1분 충전으로 150㎞까지 달릴 수 있다. 모터를 만들다 수소에 빠진 이플로우 윤수한 대표(60)를 만나 운송 수단의 미래를 들었다.

◇3년 만에 대리에서 이사로

윤수한 대표는 외국계 정제 기술회사 폴 입사 2년 차에 히트작을 만들어 1년 만에 이사로 진급했다. /더비비드

아주대 생물공학과 82학번이다.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가 3학기 만에 석사 학위를 땄다. 1989년 4월 제약회사 유한양행의 생산개발 부서에 입사했다. “일과 공부 사이에서 계속 갈팡질팡했어요. 석사론 부족하단 생각에 사직서를 던지고 KIST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어요. 미국 유학을 꿈꾸며 퇴사했다가 1991년 외국계 정제 기술회사 폴(Pall)사에 들어갔죠.”

입사 2년 차에 히트작을 만들었다. 맥주 비열(非熱)처리 공법을 개발했다. 이를 국내 최초로 적용한 하이트 맥주는 대박을 냈다. “대리에서 3년 만에 과장, 차장을 넘어 이사로 승진했어요. 당시 제 나이는 고작 서른에 불과했습니다."

높은 직급이 오히려 부담스러웠을까.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2022 유로바이크에서 AFPM을 설명하는 윤수한 대표(왼쪽). /윤수한 대표 제공

1998년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전자 회사에서 기술 마케팅 부사장직을 제안받았다. “완전히 다른 분야라서 더 끌렸습니다. 주된 일은 신사업 발굴이었어요. 요즘으로 치면 ‘오픈이노베이션(기업이 외부의 기술·정보를 도입하는 동시에 기업 내부의 자원·기술을 외부와 공유하며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죠.”

미국·독일·일본 등 전 세계에서 열리는 박람회에서 참신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찾아다녔다. “한마디로 모래 속의 진주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박람회장에 가 보면 제일 눈에 잘 띄는 자리는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찾는 스타트업의 부스는 대개 가장자리에 다닥다닥 붙어있었죠.”

AFPM을 개발한 독일 스타트업 쉴러의 기술자와 윤수한 대표. /윤수한 대표 제공

2012년 독일의 한 기술박람회에서 직원 두 명의 작은 부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축방향 자속형 모터(AFPM)를 개발한 독일 스타트업 ‘쉴러(Schile)’였다. 축방향 자속형 모터는 기존 방사형 자속형 모터와 달리 회전판이 2개다. “그만큼 전력 손실을 줄여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기술이었어요. 그런데 개발된 지 15년 넘게 상용화가 안 됐더군요. 그래서인지 우리 팀 내부에서도 기술 활용 가능성에 대한 의견이 갈렸습니다.”

투자·공동개발 계약이 번번이 무산되는 동안, 아무도 모르게 딴생각을 품었다. “저 기술을 이전받을 수만 있다면 내 사업을 꾸려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유럽 출장길에서 질리도록 봤던 길거리의 전기 자전거가 연결 고리가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효율 좋은 모터를 장착하는 건 자전거에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니까요.”

◇독일에 숨겨둔 과외 선생님

독일 출장길. 2년간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씩 독일을 찾아 기술을 배웠다. /윤수한 대표 제공

특허권의 존속기간은 출원일로부터 20년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만료 전에 다른 사람에게 ‘전용실시권’의 형태로 권한을 이전할 수 있다. AFPM 특허 만료 시점은 2020년이었다. “2015년 무렵 특허권 이전을 두고 여러 회사가 달려들었어요. 자동차, 비행기에 쓰이는 대형 모터는 영국의 ‘야사(YASA)’에게, 소형 모빌리티에 쓰이는 모터는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주변에선 ‘알짜배기는 다 남 줬다’며 핀잔했지만, 제겐 다 계획이 있었죠.”

2015년 12월 모터·추진체 전문기업 이플로우(e-flow)를 설립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전용실시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터가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선 전용 연구실과 관련 장비가 필요했죠. 투자를 받기위해 공공기관과 연구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퇴짜를 맞기 일쑤였어요.”

AFPM을 안정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코일 하나도 잘못 감아선 안 된다. /윤수한 대표 제공
독일 쉴러사의 기술자 프랭크 헬러(Frank Hellaer)에게 자문을 받아 AFPM을 만들었다. /윤수한 대표 제공

그도 그럴 것이 AFPM은 가히 비현실적인 기술이었다. “모터의 힘은 자력(磁力)에서 오는데요. 기존 모터에서는 회전판 하나로 N극과 S극의 자기장을 만들어 내니 손실이 큽니다. AFPM은 회전판 2개가 각각 N극과 S극을 맡아 자력을 만듭니다. 그 간격이 좁을수록 힘이 더 커지기 때문에 딱 0.5㎜의 틈만 남겨요. 판이 회전하다가 조금이라도 균형이 깨지면 모든 게 다 망가집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이유죠.”

혼자서 모터를 만들다가 막힐 때면 비행기를 탔다. 본래 특허권자인 쉴러의 기술자를 찾아간 것이다. “과외받으러 가는 기분이었어요. 13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가서 '코일 하나를 다시 감아라' 같은 답을 듣고 돌아와서 그대로 해보고, 그러다 또 막히면 다시 선생님을 찾아가는 거죠. 꼬박 2년간 일주일에 1~2번씩 독일과 한국을 오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양산형 AFPM 제품을 만들어 냈고 2017년부터 시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어요.”

◇더 빨리, 더 많이

프랑스 모빌리티 전문 업체 '프라그마'와 합작으로 수소전기자전거를 만들었다. /윤수한 대표 제공

AFPM 개발을 가장 반긴 건 전기자전거 제조업체였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전기자전거의 출력을 250W(와트) 이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250W 안에서 최고의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효율 좋은 모터가 필요한데요. AFPM이 바로 그 역할을 해냅니다. 전기차에서 그 실례를 볼 수 있어요. 테슬라 모델3에 들어간 모터가 1㎏당 5.2kWp(킬로와트피크)의 힘을 내는데요. 이플로우의 AFPM 양산 제품은 1㎏에 최대 16kWp의 힘을 냅니다. 줄어든 모터 무게만큼 배터리를 더 실을 수 있으니 주행거리는 더 길어지겠죠.”

2018년 8월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G7(주요 선진 7개국)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동력의 가능성을 엿봤다. “300여 명의 기자들이 프랑스 전기자전거 회사 프라그마가 만든 수소전기자전거를 이용해 회의 현장을 이동해가며 취재하더군요. 총 이용 거리가 4500㎞에 달했죠. 이 풍경 속에서 제가 주목한 건 ‘수소’였어요. 기존 리튬 배터리와 달리 1분이면 충전할 수 있고 수소 42g으로 150㎞까지 달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늘색 공중전화부스처럼 생긴 수소 충전설비 호아시스와 이를 소개하고 있는 윤수한 대표. /윤수한 대표 제공

그 길로 수소전기자전거에 들어갈 파워트레인 개발에 착수했다. 파워트레인은 모터·기어·배터리·구동축 등 바퀴가 굴러가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모아둔 모듈을 말한다. “파워트레인의 핵심은  단연 ‘모터’입니다. 해외 사례를 봐도 모터 기술을 가진 보쉬(Borsch), 브로쉐(Brose)가 파워트레인을 만들죠. 이플로우도 2018년 AFPM을 이용한 전기자전거용 파워트레인에 대한 특허를 등록하고 수소연료배터리를 결합할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은 제조강국 독일은 물론 미국, 일본 등의 제조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약 20개 제조사에서 시제품을 요청해 시제품만으로 1년에 5억원 이상의 매출을 냈다. 독일 이바이크 전문회사 아쿠라드(Akkurad)를 비롯한 3개사와 20억원 규모의 구매조건부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수소연료 기반의 파워트레인을 만들고 보니 일상적으로 쓰기 위해선 ‘충전소’ 같은 기반시설이 필요했습니다. 연달아 2022년엔 태양광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충전시설을 개발했어요. 공중전화부스 정도의 크기로 하루 1㎏의 수소를 생산하는 이른바 호아시스(H-oasis)입니다.”

◇맨해튼 거리에 놓일 한국산 수소충전소

마이크로 모빌리티 전용 모터를 만드는 이플로우 윤수한 대표. /더비비드

기술을 선보일 자리가 있다면 어디든 나서고 본다. 2022년, 2023년엔 미국 라이베가스에서 열리는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 참가했다. 2022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IR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덕분에 맨해튼 화물 바이크 회사와 연이 닿아 시범사업을 함께하기로 했어요. 조만간 맨해튼 거리에 있는 호아시스에서 수소연료를 충전해 도심을 달리는 친환경자전거가 등장할 겁니다.”

모터에서부터 출발해 파워트레인, 수소 충전시설까지 개발하며 친환경 모빌리티의 상용화를 조금씩 앞당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에서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에서 특허청장상을 받았다. “유럽·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운송·배송 수단이나 시설에도 관심을 놓지 않고 있어요. 현재로선 비교적 규제가 많아 수소연료를 충전할 수 있는 곳이 경남 창원 단 한 곳 뿐인데요. 주유소보다 더 보편적인 시설이 되는 날까지 달릴 겁니다.”

이플로우 윤수한 대표(왼쪽)와 직원들. 저마다 전기자전거를 옆에 끼고 있다. /윤수한 대표 제공

정제 기술회사에서 ‘이사’를 달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로 벌써 환갑이다. “요즘도 간간히 바이오 컨설팅을 하러 다닙니다. 음료나 식품 제조과정에서 불량이 나왔을 때, 현장에 찾아가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있는지 찾아주는 일이죠. 하루 상담 비용으로 500만원을 받아요. 아내는 그냥 이 일을 하라고 성화인데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서 점점 줄이고 있어요. 전 이미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행복한 사람이 돼버렸습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