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항 가지고도 ‘들쭉날쭉’… 여론조사 이대로 괜찮나 [심층기획]
등록 여론조사기관 무려 92곳
日 20곳·佛 13곳 비해 4∼7배나 많아
39%는 2년간 조사이력 한 번도 없어
같은 문항, 다른 결과 ‘황당’
분석 직원 1명뿐인 업체가 절반 넘고
특정세력 편향 적발돼도 과태료 그쳐
객관성·공정성 제고 필요 지적
등록조건 강화·응답자에 인센티브 등
여심위 개선방안 이달 말 선관위 제출
한국은 여론조사 과잉의 나라다. 정당지지도, 국정 수행평가, 각종 현안 등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가 매일 쏟아진다. 앞선 두 여론조사 결과처럼 비슷한 시기 같은 문항을 가지고도 들쭉날쭉한 결과 속에서 진짜 ‘민의’를 읽기란 어렵다. 오히려 부실한 여론조사가 정치적으로 소비되면서 실제 여론을 왜곡하는 데 사용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야말로 여론조사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론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일 방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의 ‘2022년 양대선거 선거여론조사 백서’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실시신고된 제20대 대통령선거 관련 여론조사는 774건, 제8회 지방선거 관련 여론조사는 3588건에 달했다. 특히 선거 직전 여론조사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지선 여론조사는 지난해 4월 한 달만 해도 961건이 신고됐다. 정당이나 언론사 등 실시신고 제외 대상이 비공표용으로 진행한 선거여론조사는 사실상 현황파악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여론조사가 있었다는 의미다.


여심위의 규제 대상이 되는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문제도 있다. 정당 지지도는 선거여론조사에 포함돼 여심위 등록 업체만 조사·공표할 수 있지만, 선관위 관리 대상이 아닌 당대표 선거 관련 여론조사나 국정 수행 지지도, 각종 정치현안 조사 등은 제외된다. 올 초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국면에서도 일부 후보들이 특정 여론조사가 여심위에 등록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5% 미만의 낮은 여론조사 응답률을 끌어올려 정확성을 높이는 방법도 논의 중이다. 여심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주요 선거에서 전체 평균 여론조사 응답률(미국여론조사협회 기준 환산)은 제21대 총선 3.5%, 제20대 지선 3.5%, 제8회 지선 3.7% 등으로 나타났다. 지난 3일 여심위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선거여론조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성실 응답자에게 ‘기프티콘’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법이 제시되기도 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선거여론조사에 성실하게 응답한 사람에게 전화 요금 할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절차상 번거로움 등으로 사실상 활용되지 않고 있어 실효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여심위는 지난 16일 선거여론조사기관 등록 조건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선거여론조사 제도개선방안을 여론조사협회에 제안했다. 주요 내용은 △등록·유지요건을 분석전문인력 3명 이상, 연간 매출액 1억원 이상으로 상향 △불법 선거여론조사기관에 대한 재등록 제한 기간을 현행 1년에서 최대 4년으로 확대 △성실응답자에게 인센티브 제공 등이다. 여심위는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이달 말까지 제도개선안을 확정해 선관위에 제출할 계획이다.
◆“직접 규제보다 자정 노력 필요” 목소리
해외 주요국 중 한국처럼 선거여론조사 관련 규제가 있는 곳은 프랑스와 캐나다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 국가가 관련 협회의 자율규제에 선거여론조사의 품질을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직접 규제보다 업계의 자율적인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2일 국회입법조사처의 ‘선거여론조사 관련 규제 현황과 해외 입법례’에 따르면 프랑스는 1977년 제정된 여론조사 공표 및 전파에 관한 법률을 통해 한국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유사한 여론조사위원회에서 관련 규제를 하고 있다. 프랑스의 여론조사 규제 법령은 담합행위 규제 등 위원회의 재량을 줄이고, 보도·공표 시 공개사항과 위원회에 제출 정보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캐나다는 2000년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여론조사 결과 공표 시 정보공개 규정을 도입했다. 이전까지는 조사 관련 협회의 자율규제를 따랐지만, 조사품질을 가늠할 정보공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여론조사 보도·공표 시 조사의뢰자 및 조사기관, 조사 기간, 조사 모집단, 접촉한 피조사자 수, 오차범위, 조사보고서가 게재된 인터넷 사이트 등의 정보를 제시해야 한다.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국가들은 유럽마케팅여론조사협회와 국제상공회의소가 마련한 규약을 따른다. 이 규약은 여론조사 및 발표에 관한 기본원칙으로 자료수집 방법 및 목적의 투명성, 피조사자의 신상보호 및 거부 의사 존중 등을 제시한다. 미국여론조사협회의 조사 원칙도 유럽의 규약과 유사하다. 자료수집 방법, 조사의뢰자 및 조사기관, 설문 문항, 모집단, 표본추출방법 등을 공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현행 규제를 보완해나가면서 조사기관의 자체적인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인호 부경대 교수(통계학)는 “궁극적으로는 법적 규제가 아닌 조사기관의 자율적인 노력을 통해 전문성과 신뢰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면서 “선거결과 예측에 실패한 조사기관은 언론사로부터 재위임을 받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등 품질경쟁에 기반한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한 조사회사만 생존할 수 있는 풍토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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