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과 최대 글로벌 그룹 네슬레가 만든 합작법인이 출범 12년 만에 운영을 종료하기로 했다. 네슬레는 커피 제품력, 롯데는 국내 유통망이라는 강점을 가져 두 회사가 손잡고 국내 커피믹스 시장에서 동서식품과 남양유업을 따라잡으려 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롯데네슬레가 발족 당시 스위스 네슬레 본사에 선지급한 기술도입료 명목의 로열티를 정산 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18일 롯데네슬레코리아에 따르면 이 합작법인은 내년 1분기 말 운영을 종료한다고 전날 밝혔다. 2014년 6월 출범한 롯데네슬레코리아는 롯데웰푸드(옛 롯데푸드)와 네슬레가 각각 지분 50%씩을 투자해 설립한 합작회사다. 네슬레의 커피 브랜드 '네스카페'를 비롯해 네스퀵, 핫쵸코, 레모네이드, 펫케어 제품 등의 제조·유통·마케팅·판매를 담당해왔다.
토마스 카소 네슬레코리아 대표는 "네슬레와 롯데는 전반적인 글로벌 우선순위, 국내 시장 상황, 양사의 공통된 역량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합작법인 운영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안정적인 운영과 변화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12년 만의 합작법인 철수 결정은 롯데네슬레가 국내 믹스커피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커피믹스 시장 3위였던 네슬레는 롯데그룹의 유통망과 영업력을 활용해 점유율을 확대하려 했고, 4위인 롯데는 네슬레의 제품력을 이용해 커피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려 했다. 이를 위해 롯데푸드는 롯데칠성의 원두커피사업 부문을 넘겨받아 본격적으로 커피사업에 나섰다.
그러나 롯데네슬레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내 믹스커피 시장 점유율은 동서식품(89.9%), 남양유업(6.2%)에 이어 롯데네슬레가 1.5%로 3위에 머물렀다. 이는 네슬레가 합작법인 설립 전인 2012년 기록(5.1%)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매출 또한 2020년 2441억원, 2021년 2323억 원, 2022년 2703억 원, 2023년 2400억원 등으로 정체됐다. 영업이익 역시 2022년 51억원에서 2023년 40억원으로 감소하며 성장세가 둔화됐다.
선지급한 로열티의 행방은
롯데네슬레 합작법인이 예상보다 일찍 철수하면서 스위스 본사에 기술도입료로 지급한 로열티 정산 여부도 주목되고 있다. 2014년 롯데네슬레는 향후 30년간 지급할 기술도입료의 절반인 408억원을 미리 내줬고, 이는 매년 약 13억6000만원씩 비용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법인이 조기 청산되면서 아직 비용으로 반영되지 않은 금액이 남아 있다. 만약 이를 돌려받지 못하면 롯데네슬레는 미사용 로열티의 일부를 손실로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롯데네슬레가 이 금액을 받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고 보고 있다. 네슬레 본사가 계약조건에 따라 선급금을 받아 반환 의무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계약서에 사업중단 시 미인식 잔액을 반환하는 조항이 있다면 법적 절차를 통해 회수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본사에 브랜드 로열티를 지급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수년치를 한꺼번에 선납하는 사례는 드물다”며 “롯데가 30년치의 절반을 미리 납부한 것은 장기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한 일로 보이지만, 예상보다 이른 철수로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롯데웰푸드 관계자는 "법인 청산에는 내년까지 시간이 남은 만큼 선급 기술사용료에 대해 네슬레 본사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