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조명은 어떻게 그림자가 안 생길까?
의학 드라마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수술실에서 의사들이 “라이트 좀 다시 맞춰주세요” 하는 장면을 한 번쯤 본 적 있을 거다. 아니면, 수술대에 올라서 직접 이 조명을 봤을 수는,,,,없겠구나, 이 때쯤엔 의식이 없어서. 아무튼 의학 드라마에는 빠지지 않는 소품인, 수술실의 이 거대한 라이트들에 특별한 비밀이 있다는데, 유튜브 댓글로 “수술실 조명은 그림자가 안 생긴다던데 어떻게 그림자가 안 생길 수 있는건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이거 그냥 배우들 멋져 보이라고 많이 달아놓은 촬영용 조명,,은 당연히 아니고, 알고보니 특별한 이름을 가진 수술실 특수조명이다. 이름은 ‘무영등’인데, ‘없을 무, 그림자 영, 등불 등’을 써서 ‘그림자가 없는 등’이라는 뜻이다.
그림자가 안 생기는 조명이라니 그런 게 가능해? 싶은데, 그도 그럴 게 살면서 그림자 때문에 불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 왜 우리 어릴 때 엄마가 귀를 파줄 때면, 어두워서 잘 안 보여~ 하면서 대충 파다 만 적, 또는 잠자리에 들기 전 작은 등만 켜놓고 책을 읽을 때 그림자가 져서 글자가 잘 안 보인 적 다들 있지 않은가? 그림자가 없는 건 귀신밖에 더 있나 했는데 수술실에도 있었다니!
수술실은 정교하고 조심스러운 작업을 행하는 곳인 만큼, 무영등은 기본 중의 기본이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기기이다. 간을 절제해야 하는데 그림자 때문에 안 보여서 실수로 심장을 절제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
자, 그럼 대체 어떻게 그림자가 안 지는 걸까? 그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여러 방향에서 빛을 한 곳에 쏴서 서로의 그림자를 상쇄시키는 거다. 자, 간단하게 실험을 하나 해 보자. 휴대전화로 플래시 라이트를 켜고 그 아래에 손바닥을 대면 당연히 그림자가 진다.
그런데 옆에 라이트 하나를 더 켜면 아까보다 그림자가 희미해지고, 하나를 더 켜면 훨씬 더 희미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무영등에는 엄청 많은 조명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빛을 쏘게끔 설계되어 있는데, 이걸 광학 설계라고 하고, 이를 통해 의료진의 머리 또는 여러 의료 기구가 조명 아래를 왔다 갔다 해도, 그림자가 거의 생기지 않는 거다.
이런 무영등이 쓰이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였는데, 그때는 할로겐램프를 주로 썼다. 하지만, 할로겐램프에는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발열. 열이 심하게 나서, 장시간 수술이라도 할라치면 수술실 온도가 치솟아, 환자의 피부 조직이 마르고 혈액이 응고돼 수술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었다.
두 번째, 이게 좀 더 치명적인 듯싶은데, 색상 왜곡이다. 모든 빛에는 색온도라는 게 있는데, 이 값이 낮아질수록 붉은색을, 높아질수록 푸른색을 띤다. 할로겐램프는 이게 대략 3,000K대로 낮아서, 우리 눈에는 노랗게 보인다는 게 문제다.
[무영등 제조업체 ‘덴티스’ 관계자]
“노란 환경에서 빛을 때리고 있으니까 원색을 못 본다는 얘기잖아요. 인체 조직이 다 빨개요. 연조직, 경조직, 피 때문에도 다 빨갛고 그 조직들이 전부 다 빨간색으로 나오잖아요. 색상 왜곡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보니까 시력의 부담이 좀 더 가중될 수 있잖아요”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할로겐 조명이 단점은 많아도, 조명이나 전기가 없던 때보다는 훨씬 나아진 거긴 하다. 그때는 자연광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게 수술실을 남동쪽에 짓거나 천장에 창문을 냈고, 때에 따라 촛불도 활용했다고.
아무튼, 진짜 혁신은 할로겐램프의 단점을 모두 해결한 LED가 세상에 나오면서 이뤄졌다. 지금은 대부분의 병원에서 LED 무영등을 쓰고 있고, 할로겐 무영등은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고. 그런데 이렇게 대중적으로 보급된 지는 불과 10년 조금 넘었다고 한다.
[무영등 제조업체 ‘덴티스’ 관계자]
“초반 이슈는 LED가 좋은 건 알았지만 쉽게 이거를 바꿀 수 있는 단계가 못 됐어요 워낙 비싸가지고. 할로겐 무영등이 만약에 200~300만 원 했잖아요? LED 수술 등은 천만 원이 훨씬 넘어가요 요즘은 이제 LED가 많이 저렴해졌거든요 여러 가지 업체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또 최근에는 스마트 센서를 장착해 무영 효과를 더 극대화하고, 반사판을 활용해 눈부심을 최소화한 제품도 나온다고 하는데… 현대 의학과 더불어 꾸준히 발전해 온 무영등. 그러고 보면 촛불 켜고 수술받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아 다행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