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걸작 '아사코' 하마구치 류스케의 서늘한 시선이 다시 스크린에 펼쳐진다

영화 '아사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오는 10월 21일 극장 재개봉을 확정했다.
개봉 당시 주연 배우들의 사생활 스캔들로 거센 파장을 겪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교한 연출과 미학적 성취가 재조명받으며 거장의 초기 걸작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작품이다.
'아사코'(원제: 자나 깨나·寝ても覚めても)는 개봉 이후 주연 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카라타 에리카의 실제 불륜 논란이 불거지며 작품 외적인 이슈로 오랜 시간 입길에 올랐다.
그러나 현실의 스캔들이 던진 소음 속에서도 작품 자체가 지닌 독보적인 서사적 흡인력과 영화적 완성도는 가려지지 않았다.
영화는 첫사랑 '바쿠'가 홀연히 사라진 뒤, 2년 후 그와 이목구비가 똑같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평범한 회사원 '료헤이'를 만난 주인공 '아사코'의 사랑과 선택을 다룬다.
시바사키 도모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멜로드라마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단순한 삼각 로맨스를 넘어 인물의 불가해한 감정선과 관계의 심연을 서늘할 정도로 정밀하게 담아내며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는 쾌거를 이뤘다.

'아사코'는 국내외 영화계와 시네필 사이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연출 세계를 압축한 명작으로 꾸준히 회자되어 왔다.
봉준호 감독은 이 작품을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 등과 나란히 '21세기 최고의 영화 TOP 9' 중 한 편으로 꼽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비평계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일본의 저명한 영화학자 하스미 시게히코는 "21세기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롱숏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작품과 함께 일본 영화는 제3의 황금기에 확실히 발을 들여놓았다"고 평했다.
국내 평단에서도 이동진 평론가가 "모든 것은 두 번 반복된다. 그렇다면 두 번째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평과 함께 별점 4.5점을 부여했고, 정성일 평론가 또한 2018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으며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독창적인 시네아스트의 출현을 주목했다.
'아사코'가 단순한 청춘 로맨스물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지점은 '외모가 똑같은 두 남자를 사랑하는 여성'이라는 멜로드라마의 통속적 클리셰를 인간 실존과 윤리의 문제로 전복시키는 방식에 있다.
영화 속 바쿠와 료헤이는 1인 2역을 맡은 히가시데 마사히로의 신체를 공유하지만, 바쿠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신기루이자 '꿈(환상)'의 영역에 있다면, 료헤이는 일상의 책임을 묵묵히 짊어지는 '현실'의 표상이다.
아사코가 료헤이에게서 바쿠의 유령을 쫓는 동안 카메라는 인물의 미묘한 시선 처리와 침묵, 그리고 프레임의 공간감을 통해 '타인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우리는 상대방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투영한 이미지의 환영을 소비하는 것인가.

더불어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 서사에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거대한 균열을 슬며시 개입시킨다. 지진이라는 재난은 평온해 보이던 도시와 일상을 단숨에 뒤흔들며, 인물들이 지탱해 오던 삶의 약속과 감정의 토대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후반부 아사코가 보여주는 돌발적이고 비윤리적으로까지 보이는 선택 역시, 재난 이후 불확실한 삶의 공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불가해한 충동과 맞닿아 있다.
결말부, 비가 그친 뒤 더러워진 강물을 나란히 내려다보며 료헤이는 "더러운 강이야"라고 말하고, 아사코는 "그래도 아름다워"라고 답한다. 배신과 상처로 얼룩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관계, 즉 오염된 현실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면서도 그 위에서 삶을 지속하겠다는 이들의 태도는 통속적 낭만주의를 넘어선 냉정하고도 단단한 윤리적 결단을 보여준다.

이후 '드라이브 마이 카'(칸 각본상,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와 '우연과 상상'(베를린 은곰상),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베니스 은곰상) 등을 연이어 내놓으며 세계적 거장으로 도약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아사코'는 상업 영화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작가주의를 온전히 증명해 낸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스크린을 통해 인물의 사소한 시선과 침묵, 일상의 미세한 진동을 온전히 체감할 수 있는 '아사코'는 오는 10월 21일 전국 극장에서 다시 관객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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