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들] 디지털 포렌식과 방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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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혐의로 수사기관의 연락을 받은 피의자가 마주하는 거대한 벽은 바로 압수수색입니다.
따라서 디지털 성범죄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패는 바로 '디지털 포렌식 참여권'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혐의로 수사기관의 연락을 받았다면, 나의 가장 사적인 영역인 디지털 기기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냉철하게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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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혐의로 수사기관의 연락을 받은 피의자가 마주하는 거대한 벽은 바로 압수수색입니다. 예고 없이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평소 분신처럼 사용하던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가져가는 순간, 대부분의 피의자는 극심한 공황 상태에 빠집니다. 당혹감과 두려움에 휩싸인 피의자들은 수사관의 요구대로 기기의 비밀번호를 선뜻 알려주거나, "나는 숨길 것이 없으니 다 확인해 보라"며 기기를 통째로 내어주곤 하죠. 그러나 필자가 형사법 전문 변호사로서 수많은 현장을 지켜본 결과, 이런 행위는 스스로 방어권을 포기하는 가장 위험한 선택입니다.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압수수색의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기재된 '범죄 혐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데이터만을 선별하여 가져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디지털 데이터 분석의 편의와 수사의 효율성을 명분으로 휴대전화의 데이터를 통째로 복제(이미징)해가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수사기관의 서버로 옮겨진 내 휴대폰 데이터 안에는 이번 사건과 무관한 사적인 대화, 민감한 개인 정보, 심지어는 별개의 범죄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사기관이 자료를 훑어보다가 다른 범죄 혐의점을 포착한다면, 곧바로 별건 수사로 이어집니다. 피의자 입장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려다 열 개의 사건에 휘말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셈이 되는 거죠.
따라서 디지털 성범죄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패는 바로 '디지털 포렌식 참여권'입니다. 이 참여권은 수사기관이 압수한 매체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고 선별하는 과정에 피의자와 변호인이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보장된 권리입니다.
실제 포렌식 현장에서는 키워드 검색 등을 통해 데이터를 선별하는데, 이때 변호인은 수사관이 영장 범위 밖의 키워드를 입력하거나 관련 없는 기간의 데이터를 추출하려 할 때 즉각적으로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이 파일은 이번 혐의와 관계가 없으므로 압수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인 것이지요. 최근 대법원은 이러한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거나 영장 범위를 벗어나 획득한 증거에 대해 '위법수집증거 배제 법칙'을 적용하여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유죄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라 할지라도, 절차적으로 정당성을 잃었다면 법정에서는 '없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많은 피의자가 "나는 당당하니까 다 보여줘도 상관없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형사 절차는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철저히 법리와 절차의 영역입니다. 수사기관이 정해진 선을 넘지 않도록 견제하는 것은 피의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변호인의 핵심 책무입니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는 증거의 인위적 조작이나 맥락 왜곡의 가능성이 존재하니 초기 압수수색 단계에서부터 전문가의 조력을 통해 수사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재판의 성패를 가릅니다.
압수수색 영장이 제시되는 순간부터 포렌식 추출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모든 과정에서 절차적 적법성을 따져 묻는 것. 내 스마트폰이 나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지 않도록 방어권의 벽을 높이는 것. 그것이 형사 재판에서 피의자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시작해야 할 첫 번째 단추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혐의로 수사기관의 연락을 받았다면, 나의 가장 사적인 영역인 디지털 기기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냉철하게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정다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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