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쌀 가공식품 열풍

세 가지 색 꿀떡에 우유를 부어서 먹는 ‘꿀떡 시리얼’(ggultteok cereal)이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다. 한 해외 인플루언서가 레시피를 공유하며 시작된 꿀떡 시리얼 열풍은 K푸드의 높아진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2023년 미국 내 ‘냉동김밥’ 열풍에 이어 꿀떡 시리얼이 인기몰이 하면서 쌀 가공식품이 글로벌 식품 시장의 주류로 부상하는 중이다. 쌀 가공식품 수출에도 탄력이 붙었다. KATI 농식품수출정보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대미 쌀 가공식품 수출액은 1억6984만 달러로, 2023년(1억1345만 달러)보다 49.7% 급증했다.
◇ 쌀이 미국 소비자 입맛 사로잡은 비결

대미 쌀 가공식품 수출액 증가 배경으로 현지 소비자의 쌀 가공식품에 대한 인식 변화를 꼽을 수 있다. 과거 한인의 전유물로 소비됐던 쌀이 이제 현지인 사이에서 ‘건강식’으로 각광받으며 소비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변화는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2024년 10월 발간한 ‘미국 쌀가공식품 수출 현황분석 및 확대방안’에 따르면 2023년 전체 쌀 가공식품 수출 중 대미 수출 비중은 56.1% 다. 2024년 1월부터 7월까지 대미 수출 비중은 전체의 60.2%에 이른다. 미국이 국내 쌀 가공식품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aT는 미국 내 쌀 가공식품 수요 증가 배경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확산된 ‘건강식 선호 현상’을 꼽았다. 2024년 8월 aT가 미국 국적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쌀 가공식품을 생각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로 ‘건강하다’(74.2%·중복 집계 기준)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단백질, 섬유질, 비타민 같은 영양소가 풍부하고 글루텐을 함유하지 않아 소화가 잘 되는 쌀의 특성 때문에 밀을 주식으로 삼는 미국 소비자 사이에서 ‘쌀은 건강한 식품’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조리 및 저장이 간편한 식품 수요 증가도 쌀 가공식품 열풍에 한 몫 했다. 효율성울 추구하는 현대인의 생활양식에 맞춰 간편하게 조리하거나 데우면 섭취가 가능한 즉석밥, 냉동김밥 등이 식사대용품으로 부상한 것이다. 미국 최대 한인마트인 H마트를 비롯해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트레이더 조스, 코스트코 같은 주요 마트에서 냉동이나 레토르트 형태의 김밥, 김치주먹밥, 볶음밥 등이 판매되고 있다. 즉석밥도 품종, 풍미에 따라 다양화되는 추세다. 올해 5월 누계 대미 즉섭밥 수출액은 3075만 달러로 쌀 가공식품 전체 수출액(6214만 달러)의 49.5%에 이른다.

간식인 떡류도 대세로 부상했다. K드라마, K팝 등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커진 덕이다. 2019년 BTS(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떡볶이를 먹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해외에서 떡볶이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바 있다. 2024년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영어사전에 ‘떡볶이(tteokbokki)’를 신규 단어로 등재하기도 했다.
떡볶이 열풍을 꿀떡 시리얼이 이어받으면서 떡이 수출 효자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2025년 5월 누계 대미 떡류 수출액은 1887만3000달러로 전체 쌀 가공식품 수출액의 30.4%를 차지한다. 수출액도 전년 동기간 대비 44.6%나 증가했다.
눈에 띄는 건 쌀과자의 약진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이노바마켓인사이트(Innova Market Insights)은 2024년 공개한 리포트에서 “바삭하게 구운 쌀 스낵, 미니 쌀 케이크의 인기 등으로 최근 5년간 미국 시장에서 쌀 기반의 스낵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쌀 스낵 열풍에 따라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땅콩버터, 애플시나몬 등을 곁들인 제품이 출시된 가운데 한국 쌀과자는 담백하고 칼로리가 낮은 건강 간식으로 포지셔닝했다. 쌀 스낵 중에서도 K스낵을 찾는 손길이 이어지면서 올해 5월 누계 대미 쌀 과자 수출액은 전년 동기간 대비 34.4% 증가한 96만 달러를 기록했다.
◇ 농협, 현지맞춤형 쌀 가공식품으로 승부수

대미 쌀 가공식품 수출 열풍의 일등공신은 단연 농협이다. 2024년 농협은 91만8000달러치의 쌀 가공식품을 미국에 수출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가파른 성장세다. 2022년 농협의 대미 쌀 가공시품 수출액은 39만 달러로, 2년 만에 수출액이 2.35배 늘었다. 농협 관계자는 “K푸드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사적인 노력이 성과로 발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호탄을 쏘아 올린 건 식혜다. 식혜는 최근 3년간 쌀 가공식품 수출 증가율 1위를 기록한 수출 효자 상품이다. 이에 동밀양농협은 미주 수출을 염두에 두고 ‘생강식혜’를 개발했다. 외국인들이 식혜 속 밥알을 이물질로 인식해 거부감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밥알과 전분을 없앴다. 포장용기도 기존 500mL, 2L에서 외국인에게 익숙한 용량인 1.5L로 바꿨다. 농협은 지난해 식혜 18만4000달러를 미국에 수출했다.
가공밥(25만3000달러), 쌀과자(23만9000달러), 떡류(19만6000달러) 등도 미국 시장에서 인기다. 정남농협은 2018년부터 떡국떡과 떡볶이떡을 수출했다. 첫 수출 당시 미국 최대 중국계 마트인 GW마켓 납품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탄력을 받은 농협은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쌀 가공식품을 꾸준히 연구·개발해 왔다. 농협경제지주의 식품 자회사인 농협식품과 지역농협에서 개발한 쌀 가공식품 수만 500개를 넘는다. 청원생명쌀조공법인의 쌀과자 쌀이요 팝 시리즈와 발아현미누룽지칩, 우리양파칩 등이 대표적이다.

농협은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현지 맞춤형 쌀 가공식품의 리뉴얼과 신제품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청원생명쌀조공법인은 쌀과자 ‘쌀이요’를 기존의 25g에서 88g으로 확대 출시한다. 쌀이요 시리즈의 신제품 ‘쌀이요 구운양파맛 오리지널’도 시제품 생산을 완료한 상태다. 청원생명쌀조공법인 관계자는 “큰 사이즈의 스낵과, 시즈닝을 좋아하는 현지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수출상품 다각화를 위한 절차도 진행 중이다. 동밀양농협의 쌀 음료 ‘해브어라이스데이’는 수출상품 후보가 됐다. 해브어라이스데이는 국산 쌀에 우리 쌀과 동·식물성 단백질, 필수아미노산 등 함유된 음료다. 현재 현지 유통을 위한 표기사항, 원재료 검토 등의 절차를 진행 중이다.
농협 관계자는 “미국 소비자들의 입맛과 소비 패턴을 세밀하게 분석해, 제품의 중량, 용기, 맛, 성분까지 현지화 전략을 강화할 방침”이라며 “앞으로도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쌀 가공식품의 건강식 이미지를 널리 알리고, K푸드 대표주자로서 위상을 높여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현지 소비자와의 접점 확대, K푸드 위상 제고에 주력

농협은 수출 성장세에 속도를 내기 위해 유통 채널 다각화에 주력하고 있다. 2023년 H마트와 농식품 판로 확대를 위한 수출 협력 업무협약(MOU)을 맺은 데 이어, 지난 4월 시카고푸드(Chicago Food)와 MOU를 체결했다. 지난 5월 브라이언 권 H마트 사장과 만나 농식품 수출 협력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현지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하는 자리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농협은 쌀 가공식품을 현지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소개하기 위해 H마트와 쌀 가공식품 시식행사를 열고, ‘한국농협 특판전’을 진행했다. 갤러리아 마켓 등에서 열린 ‘농협 쌀 가공식품 특별전’에서는 인절미 과자, 약과, 식혜, 냉동 김밥 등 다양한 제품을 현지 소비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채널도 공략 대상이다. 2022년 농협은 미국 최대 전자 상거래 플랫폼인 아마존에 공식 브랜드 스토어를 열었다. 국내산 쌀뿐만 아니라 쌀 튀김가루, 현미누룽지 등의 쌀 가공식품도 아마존 브랜드 스토어에서 판매되고 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현지 유통사와의 협력은 단순한 수출을 넘어 K푸드를 세계에 알리는 출발점”이라며 “앞으로도 전방위적 노력을 통해 한국 농식품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가겠다”고 강조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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