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패' 시카고 화이트삭스, 올해도 꼴찌 예약?

1941년 조 디마지오는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달성했다. 지금도 깨지지 않은 메이저리그 최고 기록이다. 당시 미국인들의 안부 인사가 "오늘도 디마지오가 안타를 치겠죠?"였다. 디마지오의 안타는, 미국인들의 일상이었다.

지난해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하루가 멀다하고 졌다. 7/11일부터 8/6일까지 21연패 구간을 비롯해 14연패(5/23~6/7일)와 12연패(8/24~9/4일) 구간도 있었다. 5연패 이상 7차례, 3연패 이상 12차례를 남긴 팀은 1900년 이후 처음이었다.

디마지오의 상황을 빗대면 "오늘도 화이트삭스가 지겠죠?"가 흔한 질문이었다. 결국 화이트삭스는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역대 최다패 기록을 떠안았다.

메이저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다패

121 - 시카고 화이트삭스 (2024)
120 - 뉴욕 메츠 (1962)
119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03)
117 -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 (1916)


화이트삭스 이전 120패를 당한 1962년 메츠는 창단 첫 시즌이었다. 보통 첫 시즌은 전력이 완성되기 전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메츠의 120패 시즌은 정상 참작이 됐다.

화이트삭스 스프링캠프 구장 (화이트삭스 SNS)

하지만 창단 후 124번째 시즌이었던 화이트삭스는 아무리 리빌딩 중이라고 해도 그 선을 넘었다. 메이저리그에 있어선 안 되는 팀이었고, 메이저리그에 나와서는 안 되는 기록이었다. <디애슬레틱>은 화이트삭스의 121패는 구단주의 간섭, 미덥지 않은 리더십, 부상과 최신 통계 분석의 오용 등에서 비롯된 총체적 난국이라고 진단했다.

겨울
화이트삭스는 시즌 내내 겨울이었다. 춥고, 고독했다. 역대급 흑역사를 남긴 화이트삭스는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다. 설상가상 1981년부터 화이트삭스를 소유한 제리 라인스도프 구단주는 팀 매각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내우외환이었다.

그 와중에 할 일은 했다. 지난 시즌 중 페드로 그리폴 감독이 경질된 화이트삭스는 그래디 사이즈모어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감독 경험이 전무했던 사이즈모어는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폴의 승률은 .239(28승89패) 사이즈모어의 승률은 .289(13승32패)였다. 누가 더 나은지 가리는 게 의미가 없었다.

앞서 화이트삭스는 기존에 인연이 있는 인물들을 감독 자리에 앉혔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아는 사람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뼈저리게 실패한 화이트삭스는 후보자들을 더 광범위하게 모았다. 60명에서 20명, 20명에서 5명으로 줄였다. 화이트삭스가 장고 끝에 데리고 온 인물은 윌 베나블, 텍사스 부감독 출신이었다.

윌 베나블 감독 (기자회견 캡쳐)

베나블도 감독 경험이 없다. 하지만 '준비된 감독'이라는 평가였다. 2016년 선수 생활을 은퇴한 뒤 시카고 컵스 프런트에 입문, 2018-19년 컵스 1루 코치를 거쳐 2020년에는 컵스 3루 코치를 수행했다. 2021-22년은 보스턴으로 팀을 옮겨 감독의 오른팔격인 벤치 코치를 맡았고, 그 다음 시즌부터 텍사스 부감독으로 활약했다. 7년간 꾸준히 현장에서 호흡한 부분, 또 그 공로를 인정 받아 차근차근 지위를 높인 부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베나블은 수재였다. 아이비리그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대학에서 야구와 농구를 모두 소화할 정도로 운동에도 재능이 있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두 차례나 지명된 베나블은 메이저리그 커리어도 9시즌을 이어갔다.

크리스 게츠 단장이 주목한 베나블의 능력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베나블은 상대방의 입장을 잘 헤아렸다. 선수와 코치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심정을 잘 이해했다. 조 매든과 알렉스 코라, 브루스 보치 같은 명장들을 보좌하면서 갈고닦은 역량도 기대됐다. 게츠 단장은 베나블에 대해 "자신의 명석함을 구태여 과시하지 않은 점도 인상깊었다(although he may be the smartest guy in the room, he doesn’t need to kind of show off and let everyone know that he is the smartest guy in the room)"고 말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베나블이 밝힌 야구관은 이상적이지만, 화이트삭스가 처한 현실에 직면했을 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감독은 옆에서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의 차이가 분명한 직책이다. 유연하게 소신을 지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희망
보통 새로운 감독이 오면 구단에서는 '부임 선물'을 준다. 새 감독의 시즌 구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들을 보강한다. 하지만 화이트삭스는 현재를 위한 투자가 시기상조였다. 좌완 마틴 페레스(1년 500만)와 한화 출신 마이크 터크먼(1년 195만) 등을 데려왔지만, 화이트삭스가 FA 시장에 쓴 돈은 총 2000만 달러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화이트삭스는 선수를 정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팔고 싶어했던 1선발 좌완 개럿 크로셰를 보스턴으로 넘겼다.

6월 '이달의 투수'로 선정된 개럿 크로셰 (화이트삭스 SNS)

크로셰는 지난해 화이트삭스의 유일한 위로였다. 선발 전환 첫 시즌에 32경기 6승12패 평균자책점 3.58을 기록했다. 규정이닝은 진입하지 못했지만, 146이닝 동안 삼진 209개를 잡아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크로셰보다 적은 이닝으로 200삼진 고지를 밟은 투수는 2022년 스펜서 스트라이더가 유일하다(131.2이닝 202삼진).

2024 화이트삭스 승리기여도 (팬그래프)

4.7 - 개럿 크로셰 (투수)
2.6 - 에릭 페디 (투수)
1.3 - 크리스 플렉센 (투수)
1.1 - 조나단 캐논 (투수)
1.0 - 폴 디용 (야수)


지난해 크로셰는 화이트삭스에서 절대적인 선수였다. 화이트삭스 전체 승리기여도 1위였고, 투수진 승리기여도의 48%에 해당하는 4.7을 혼자서 올렸다.

문제는 크로셰와 화이트삭스의 속도가 너무나 달랐다는 점이다. 121패를 당한 화이트삭스는 전면 리빌딩에 돌입해 새 판을 짜야했다. 내후년에 FA가 되는 크로셰는 좋은 활약이 예상되지만, 화이트삭스에게 있어서는 사치품이었다. 이에 가치가 고점일 때 트레이드를 하는 건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크로셰를 주고 받아온 유망주들도 만족스러웠다. 포수 카일 틸과 외야수 브레이든 몽고메리, 내야수 체이스 마이드로스, 그리고 우완 위켈먼 곤살레스가 화이트삭스로 넘어왔다. 이 가운데 틸과 몽고메리는 보스턴 팀 내 4위와 5위 유망주였다. 마이드로스도 13위 유망주, 곤살레스도 투수 중에선 5번째로 순위가 높았다. 물론 유망주는 터지기 전까지 유망주일 뿐이지만, 화이트삭스가 최선을 다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화이트삭스 팜 랭킹 순위 (베이스볼아메리카)

2021 - 20위
2022 - 30위
2023 - 28위
2024 - 18위
2025 - 4위


덕분에 화이트삭스는 유망주들을 중심으로 하는 팜 랭킹이 수직 상승했다. 지난 시즌부터 트레이드를 통해 적극적으로 팜을 키운 것이 빛을 발휘했다. 지난 시즌 개막 이전 팜 랭킹은 18위에 그쳤는데, 지난 시즌 개막 중반 8위로 오르더니, 올해는 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1위 보스턴, 2위 디트로이트, 3위 다저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표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당장 메이저리그 전력을 높여줄 선수는 많지 않다. 올해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시즌 성적을 예상하는 기관은 대표적으로 두 곳이다. <베이스볼프로스펙터스>가 제공하는 'PECOTA'는 2000년대 초반 네이트 실버가 고안한 예측 시스템이다. <팬그래프>는 자체 시스템 'ZiPS'와 'Steamer'를 활용한다. 두 곳 모두 올해도 화이트삭스의 험난한 시즌을 예고했다. <베이스볼프로스펙터스>는 101패, <팬그래프>는 99패를 내다봤다.

2025 화이트삭스 예상 라인업

1. 마이크 터크먼 (RF)
2. 루이스 로버트 주니어 (CF)
3. 조시 로하스 (2B)
4. 앤드류 본 (1B)
5. 레닌 소사 (DH)
6. 조이 갈로 (LF)
7. 미겔 바르가스 (3B)
8. 콜슨 몽고메리 (SS)
9. 코리 리 (C)

2025 화이트삭스 예상 선발진

1. 마틴 페레스 (좌)
2. 조나단 캐논 (우)
3. 데이비스 마틴 (우)
4. 션 버크 (우)
5. 브라이스 윌슨 (우)


힘든 여건에서 노력했지만, 다른 팀들에 비하면 불안요소가 다분하다. 터크먼과 로하스, 갈로 등은 우승에 도전하는 컨텐더 팀 주전으로는 부족하다. 작년보다 반등하려면 전력상 '상수'가 있어야 하는데, 화이트삭스 라인업은 '변수'가 가득하다. 최상의 시나리오들이 나온다면 반전을 연출할 수 있지만, 이는 막연한 희망고문이다.

작년부터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의 경쟁력이 올라온 것도 화이트삭스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는 화이트삭스의 희생(?)에 힘입어 세 팀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지구 선두 클리블랜드는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8승을 거뒀고, 디트로이트는 10승, 캔자스시티는 무려 12승을 챙겼다. 참고로 시즌 막판 추락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미네소타도 화이트삭스와의 맞대결 성적은 12승1패였다.

이 먹이사슬은 올해도 계속 될 가능성이 높다. 화이트삭스를 제외한 나머지 네 팀은 동상이몽이다. 모두가 지구 우승을 꿈꾸고 있다. 그러면 이겨야 할 팀은 확실하게 이겨야 한다. 화이트삭스로선 네 팀의 치열한 싸움에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 유력하다.

심지어 화이트삭스는 팀 내 최고 선수인 루이스 로버트 주니어도 트레이드를 추진하고 있다. 크로셰와 마찬가지로 로버트 주니어 역시 화이트삭스의 현재 상황과 맞지 않다. 지난해 부상 때문에 부진했던 로버트 주니어가 부활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넘길 것이다. 그리고 로버트 주니어가 빠진 화이트삭스는 전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우승은 언감생심이다. 포스트시즌 진출도 불가능하다. 3년 전처럼 5할 승률을 사수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힘들다. 현실적인 목표는 3년 연속 100패는 피하는 것이다.

올해도 쉽지 않다. 베나블 감독이 첫 해 순조로운 적응기를 보내면서, 유망주들이 잘 성장해줘야 한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다. 동이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그 새벽이 올해는 지나가길 바라야 한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