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웨일즈가 영입한 알렉스 홀...문동주를 무너뜨렸던 그 타자?

알렉스 홀이 한국에 온다. 이 이름이 낯설지 않은 야구팬이라면, 아마 머릿속에 한 장면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2023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한국 대표팀의 ‘1선발’로 나선 문동주의 강속구를 받아쳐 담장을 넘기던 그 한 방. 경기 자체는 한국이 승부치기 끝에 3-2로 이겼지만, 그 홈런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저 타자, 공 빠른 투수 안 무서워하네.” “스윙이 단단하네.” 한 번의 장면이 선수의 얼굴을 만들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홀은 그때 한국 야구팬들에게 그렇게 각인됐다.

그런 홀이 KBO 1군이 아니라, 올해부터 퓨처스리그에 참가하는 신생팀 울산 웨일즈 유니폼을 입고 들어온다. 계약 규모는 총액 9만 달러. 숫자만 보면 요란한 영입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영입이 재밌는 건, 단순히 “외국인 타자가 들어왔다”가 아니라, 지금 한국 야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신생팀이 어떤 방식으로 팀의 색을 만들려 하는지까지 한꺼번에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홀의 프로필은 ‘요즘 야구가 좋아하는 스펙’에 가깝다. 1999년생, 180cm 92kg의 단단한 체격. 포수, 1루수, 외야수를 볼 수 있는 유틸리티. 우투양타 스위치히터. 이 조합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감독이 라인업 짤 때 머리 아픈 구석을 줄여주는 선수.” 특히 신생팀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이 그거다. 투수는 그렇다 쳐도, 야수는 포지션이 겹치고, 유망주는 경험이 부족하고, 주전급을 한꺼번에 모으기도 어렵다. 그때 유틸리티는 팀의 숨통을 틔운다. 한 자리를 메우는 선수가 아니라, 여러 자리를 ‘돌려막기’가 아니라 ‘운영’으로 바꿔주는 선수다.

물론 냉정하게 보면, 홀의 마이너리그 성적은 “즉시 1군 주전급”을 장담하기엔 애매한 편이다. 마이너 통산 252경기 타율 0.231, 19홈런, OPS 0.676. 화려한 숫자는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선을 바꿔야 한다. 울산 웨일즈는 지금 당장 1군 순위 경쟁을 하는 팀이 아니라, 퓨처스리그에서 팀의 뼈대를 만들고, 선수단을 정리하고, 향후 확장을 준비하는 단계다. 이런 팀에서 외국인 타자는 “리그를 씹어먹는 괴물”보다 “팀이 원하는 역할을 정확히 해주는 선수”가 더 필요할 때가 많다. 게다가 홀은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장타력과 ‘큰 무대에서도 주눅 없는 성향’이 확실한 타입이다.

국제대회 기록을 보면 홀의 장점이 더 선명해진다. 2023 WBC에서 일본 투수 다카하시 히로토를 상대로 홈런을 쳤고, 짧은 일정에서도 장타를 꾸준히 만들었다. 그리고 APBC에서 문동주의 공을 공략해 역전 솔로포를 만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홈런을 쳤다”가 아니라 “어떤 투수를 상대로 쳤느냐”다. 국제대회는 정보가 제한적이고, 타석에서 ‘처음 보는 공’이 훨씬 많다. 그 상황에서 자기 스윙을 끝까지 가져가는 선수는 생각보다 드물다. 특히 스위치히터는 편한 쪽 타석에서만 살아남는 경우가 많은데, 홀은 국제무대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 “상대가 누구든 때려보겠다”는 얼굴을 보여줬다. 신생팀이 데려오는 외국인 타자에게 가장 기대하는 성격이 바로 그거다. 팀이 연패를 하든, 관중이 적든, 환경이 낯설든, 타석에서 “난 내 일을 한다”는 표정을 유지해주는 사람.

이번 영입의 숨은 포인트는 ‘과정’에도 있다. 홀은 원래 아시아쿼터 제도를 통해 KBO 입성을 노렸다. 미야자키 교육리그와 마무리 캠프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고, 한때는 한국행이 사실상 무산되는 듯했다. 특히 두산이 아시아쿼터를 타자가 아닌 투수로 결정하면서, 홀 입장에서는 “문이 닫히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울산이 그 문을 다시 열었다. 이건 울산이 ‘모험’을 했다기보다, 필요가 명확했다는 뜻이다. 신생팀은 당장 성적보다 “팀의 형태”를 먼저 만들려고 한다. 그 형태를 만들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중심을 잡아주는 선수’를 한 명이라도 확보하는 것이다. 홀은 그 역할을 맡기에 적당한 카드다. 포지션이 다양하고, 타석에서 장타를 기대할 수 있고, 외국인 선수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중심타선에 세울 명분도 있다. 팀을 세우는 과정에서 외국인 선수는 종종 “연결고리”가 된다. 어린 선수들이 흔들릴 때, 라인업이 요동칠 때, 그래도 타선 한가운데에 이름을 박아둘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장밋빛만 이야기하면 칼럼이 아니다. 홀에게도, 울산에게도 리스크는 분명하다. 첫째, 퓨처스리그는 생각보다 ‘거칠다’. 공이 느리다고 만만한 게 아니라, 오히려 볼배합이 엉성해 타자가 스스로 리듬을 깨는 경우가 많다. 둘째, 포수까지 소화한다는 건 매력적이지만, 팀이 그를 어디까지 ‘멀티’로 쓸지는 별개의 문제다. 너무 많은 포지션을 맡기면 타격 리듬이 흔들릴 수 있다. 셋째, 홀은 WBC 호주 대표팀으로 출전이 유력하고, 3월 9일 한국과의 경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결국 울산 합류는 WBC 이후다. 신생팀 입장에서는 시즌 준비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외국인 타자가 자리를 비우는 셈이다. “합류하면 잘할 거야”라는 기대만으로 버티기엔, 초반 운영이 빡빡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입이 흥미로운 이유는, 홀이라는 선수가 한국 야구팬에게 ‘스토리’가 있는 타자이기 때문이다. 그냥 “호주에서 온 외국인 타자”가 아니라, 문동주를 상대로 홈런을 쳤던 그 선수다. 이 한 줄이 팬들의 상상을 계속 자극한다. 만약 홀의 스윙이 퓨처스리그에서 살아나면, 이야기는 금방 커진다. “그 홈런이 우연이 아니었네.” 반대로 적응에 실패하면? 그때는 또 다른 이야기로 남는다. “국제대회 장면 하나로 선수 인생이 바뀌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신생팀은 이렇게 서사를 먹고 큰다. 구단이 팀을 홍보할 때도, 팬이 팀을 기억할 때도, 결국 사람들은 선수의 이름과 장면을 붙여 기억한다.

울산 웨일즈 장원진 감독이 “팀 구성에 도움이 되고 타력 향상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 건 너무 교과서적인 멘트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확하다. 신생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운영’이다. 선수 한 명이 30홈런 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라인업이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을 세우는 일이다. 홀은 그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다. 포수 마스크를 쓸 수 있는 유틸리티라는 점은, 젊은 투수들을 데리고 리그를 치러야 하는 팀에게 특히 가치가 크다. 포수 수비가 ‘가능’한 수준인지, 실제로 ‘쓸 수 있는’ 수준인지는 와서 봐야겠지만, 선택지가 하나 늘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신생팀에게는 큰 자산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팬 입장에서는 이런 상상을 해볼 만하다. WBC에서 한국과 맞붙는 홀이 또 한 번 한국 투수의 공을 넘긴다면? 그 장면은 곧바로 울산 웨일즈의 홍보 영상이 될 것이다. 반대로 한국 투수가 홀을 깔끔하게 잡아낸다면? 울산 팬들은 “그래도 우리 선수다” 하며 묘한 기대를 품을 것이다. 야구는 이렇게, 승패와 상관없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스포츠다.

결국 알렉스 홀의 한국행은 “KBO의 변방”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끝이 꼭 변방에 머문다는 보장은 없다. 신생팀이 스타를 만들기도 하고, 스타가 팀을 키우기도 한다. 홀은 지금, 그 두 갈림길 사이에 서 있다. 문동주에게 홈런을 친 그 장면이 ‘단발’이었는지, 아니면 한국 무대에서도 통할 타격의 예고편이었는지. 답은 의외로 빨리 나올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다. 울산 웨일즈라는 이름이 아직 낯선 사람들에게, 알렉스 홀은 가장 쉬운 입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