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자전거 타고 다니며 동네 사람들 관찰하고 다닌다는 톱스타 

(Feel터뷰!) 넷플릭스 '살인자o난감'의 이희준 배우를 만나다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o난감]의 이희준 배우와 2월 16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살인자o난감]은 넷플릭스 중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든 독특한 포지션을 얻게 된 시리즈다. 2년 전 촬영한 작품임에도 이희준은 당시를 떠올리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변했다.

“8화 전편을 보면서 감독님의 연출에 놀랐다. 이탕의 못 박는 행동과 왕따 당하면서 맞는 시퀀스가 합쳐지는 쾌감이 상당했다. 왜 우식이가 현장에서 불안에 떨었나 이해했다. 저도 마지막 공장 장면 때, 형광등이 불안하게 깜박이는 장면이 있었다. 조명팀이 수동으로 적당한 템포로 적당한 때 누르는 거였는데, ‘왜 이렇게 예민하지?’ 이랬었다. 젊은 시절로 바뀔 때 깜박 거리며 장면 전활 할 의도였다. 지금에서야 신경 쓴 이유를 알겠다”며 연출자로서 영감받았던 순간을 곱씹었다.

이희준은 강박,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한 남자의 사투를 그린 <병훈의 하루>(2018)를 연출한 감독이기도하다. 친한 배우들이 10만 원씩 개런티 받고 사비 2,500만 원 들여 만든 영화다. 생일날 가장 밝은 옷을 사러 북적이는 인파를 뚫고 상점으로 향한다. 안쓰럽게도 정신과 의사가 낸 숙제를 성실히 실천하려는 병훈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 직접 본인이 출연해 필사의 연기를 펼쳤다.

인터뷰 말미, 본인의 공황장애를 고백하기도 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때 발병했다. 심해서 연기를 그만두려고 했다. 여전히 존재하지만 괜찮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갑자기 찾아오면 ‘잘 하고 싶었구나’ 하면서 천천히 받아주는 태도로 바뀌었다”라며 지금은 인정하는 쪽으로 선회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3월에 촬영 시작하는 단편 <직사각형, 삼각형>을 홍보했다. “가족수다난동극이고 대략 4천만 원 정도 예상한다. 덩치 큰 옆집 아저씨가 필요했는데, <황야>의 허명행 감독님이 대본도 안 보고 출연해 주기로 했다. 촬영은 [살인자o난감]의 촬영감독님이 맡아 주시기로 했다. 영화제 출품도 가능하면 해볼 예정이다. 참 극단 ‘간다’의 연극<그때도 오늘>도 올린다”라며 연출 의지를 불태웠다.

늘 바쁘게 사는 것 같았다.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게 편하다며 “한 3년 동안 제가 안 나와서 쉬는 줄 아신다. 계속 일했는데 작품이 묶여 있다가 한 번에 나오는 중이다. 곧 영화 <핸섬 가이즈>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좀비랜드>, <이블 데드>, <검은 사제들>을 합친 영화다. 4월에는 [지배종]이, 현재는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을 촬영 중이다”라고 귀띔했다.

어떤 역할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얼굴의 이희준은 단 한 번도 본인 연기가 좋다고 생각한 적 없다고 했다. 작품을 모니터링하면 단점만 보이고 아쉬움만 남는다고 했다. 이번에도 송촌을 연기하는 40대 배우의 인위적인 노력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아예 선언했었다. 노인을 연기하는 게 아닌 정말 노인이 된 이희준. 그 예민한 지점을 찾아가는 길이 험난하겠지만, 그것도 배우로서 축복이겠다고 생각했다.


-이창희 감독은 <남산의 부장들>을 보고 ‘뭐든 다 할 거라라고 생각했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노인을 구축하기 위한 외모, 성격, 전사 빌드업이 쉽지 않았겠다.

“이번 작품은 캐스팅 이유를 묻지 않았는데, <남산의 부장들> 때는 우민호 감독님께 물어봤다. <마약왕>에서 송강호와 대면하는 장면을 봤다며, 기세에 안 눌리고 붙어서 좋았다더라. 이번에는 이병헌과 붙어서 안 눌릴 사람을 찾았다고 했었다. 결국 기싸움이다. 배우의 기세는 연기로 커버하기 힘들다.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서 원작을 찾아봤더니 여백이 많아서 연출로 채우기 어려워 보였다. 일단 작품을 결정하면 관심부터 생긴다. 가방을 사고 싶으면 그때부터 가방만 보이는 것처럼, 소스로 삼을 소재만 눈에 보인다. 시간 내서 그걸 채집하려 다니는 거다. 늦은 밤이라도 갑자기 영감받으면 뛰쳐나간다. 찾는 유형의 사람이 있을 것 같은 동네를 몇 시간이고 돌아다닌다. 어슬렁거리길 좋아한다. 연극 무대 설 때도 돈 없어도 종점까지 버스나 지하철 타고 하루 종일 관찰했다. 메모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정보 수집하는 게 취미였다.

제 성격이 또, 실체를 봐야 이해되는 까닭에 60대 할아버지를 찾아다녔다. 주로 익선동 뒤편, 어르신들이 많은 곳에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다가 해질녘에 돌아왔다. 어르신의 태도, 말투, 취해서 화내 때 목소리 톤을 연구했다. 노인 다큐도 많이 보면서 사냥하듯이 소스를 채워갔다”

-원작의 송촌은 얼굴 상처도 심하고 머리도 훨씬 짧은 비주얼이다. 원작 비주얼에서 벗어난건가.

“원작은 더 짧은 머리였다. 너무 혐오스러워서 스포츠 스타일로 마무리했다. 흉터도 몇 번 테스트해 봤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분장도 센데 너무 과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무서운 행동을 할 법한 할아버지라는 설정을 줄곧 유지했다”

-젊은 경찰 송촌과 뒤틀린 노년 송촌 사이 생략된 시간을 연기로 채워 넣었다.

“교통사고를 크게 겪어도 사람이 변한다. 송촌이 얼마나 많은 교통사고를 겪었을지, 비뚤어지고 진화했을지 연민이 생겨났다. 성실한 경찰이던 송촌이 그렇게 된 이유는 아버지보다 더 믿었던 선배 경찰 때문이다. 살인자의 자식이라며 진급 누락에 영향을 준 진실을 알고부터다. 믿고 따르던 선배가 저의 나쁜 이야기를 퍼트리면 어떻겠나. 누군가를 통해 들어도 기분 나쁜데 면전에서 그런 말을 들으면 상심이 클 거라면서 송촌 서사를 만들어 갔다”

-송촌은 이탕을 만나려고 집착하는지 궁금했다. 마치 배트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도발하는 조커 같다.

“복합적인 감정이다. 노빈이 능력자 이탕으로 갈아타자 배신감이 큰 거다. 마치 바람난 연인에게 추궁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노빈을 붙잡아 두고 ‘지키고 싶을 만큼 중요하냐’고 묻는다.

이탕 이전에 노빈이 지켜주고픈 존재는 송촌이었다. 그 서사가 다방에서 눈물 흘리는 장면으로 짧게 지나간다. 그게 송촌이 살아 있어야 할 가치, 즉 유능함이었다. 송촌은 평생 더러운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해왔다는 자부심이 크다. 그런데 갑자기 초능력처럼 이 일을 빈틈없이 해낼 수 있는 녀석이 등장하니 질투 날 수밖에.. 나보다 더 깔끔하게 일 잘하고 연봉도 높은 사람을 죽이고 싶고 비결도 알아내고 싶었을 거다.

실제 우식이는 현장에서 재미있고 겸손했지만 송촌으로서 이탕을 만나 고대하는 시간이 찾아오니 여러 감정이 들었다. ‘네가 얼마나 대단하냐?’고 물어보고 싶은 거다. 솔직한 심정은 자존심이 구겨졌다. 완전히 숙이고 들어갔는데도 영업 비밀을 캐낼 수 없었다. 나름대로 이 정도면 많이 굽힌 건데도 뒤에서 칼을 찌르니까 만감이 교차하는 상황이다”

-결국 노빈과의 전사, 난감과 난감 아버지와 전사를 거쳐 성인이 된 난감을 만난다. 송촌은 대치 상황에서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감독님이 배우의 의견을 물어봐서 각색에 반영되었다. 직접 써오라고는 안 했는데 석구가 자기 대사를 써왔더라. (웃음) 곁눈질로 읽어 보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저한테는 증오하는 형사의 아들을 형사로 만났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지 물어보더라. ‘이러면 안 되지,,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데, 너 같은 형사 아들이 또 형사가 돼?’라면서 식물인간인 장형사 아버지를 잡고 때리는 장면이 있었다. 직접적으로 가해하는 장면은 편집되었지만 그게 송촌의 속마음이지 싶다.

드디어 난감을 만났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을 거다. 어릴 때 예뻐한 아이라 (나름) 반가웠겠지.. 살인자 아들은 살인자가 되었는데, 형사 아들은 형사라니 열받을 만하다. 굴레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웃은 건 아니었을까”

-이야기를 들으니 편집된 부분이 많아 아쉬웠겠다. 감독이 배우 의견을 자주 묻고 반영하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편집본 말고 아이디어 내서 반영된 게 있을까?

“5화쯤 제가 동물 병원에서 혼자 손가락 치료하면서 몸에 주사도 놓는다. 그때 참을성에 관해 고양이 앞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애정 한다. 그 씬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 연기할지 구상하고 있었는데 빼자는 거다. 절대 안 된다고, 이 장면이 왜 좋은지 열변을 토했다. 송촌은 그동안 말할 상대가 없어서 혼잣말을 습관처럼 해왔고, 외로움이 발현되는 매력적인 장면이라고 적극 설득했다. 그게 첫 촬영이었는데 감독님도 찍고 보니 괜찮았는지, 그대로 갔다. 감독님 의견대로 뺐으면 정말 아쉬웠을 거다. (웃음)”

-7화에서 도망 다니다가 약도 없고 자포자기하듯 손톱 뽑으면서 우는 듯 웃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거울을 통한 웃음에 조커가 연상되기도 한다.

“사실은 제가 더 과한 의견을 냈었다. 조커가 살인하자마자 뛰어서 화장실 가잖냐. 무용처럼 추는 장면이 생각났다. 저도 너무 좋아서 할아버지 춤을 슬프게 (덩실덩실) 추자는 의견을 냈는데.. 정말 잘할 수 있었는데.. (웃음) 반영되지 않았다. 좀 더 과격해지는 건 대부분 제 아이디어다. 깨진 거울은 카메라 감독님 의견이다. 과한 의견은 사라지고 좋은 의견이 채택되어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송촌은 뒤틀린 자신만의 정의관이 있다. 앞서 그를 이해할 수 없어 노력했다고 했지만 짠한 감정도 들었다고 말한 만큼 동의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사회의 법이 좀 더 촘촘해져야겠다. 법망을 피해가는 사람이 많아서 사적 복수를 소재 삼는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송촌은 뽑아도 계속 나오는 잡초의 깊은 뿌리를 찾아내는 태도를 갖추었다. 오물을 뒤집어쓴 청소부, 질긴 잡초를 뽑아야 하는 게 소명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죽여 마땅한지 헷갈릴 때 모아 둔 반성문을 보면서 간신히 신념을 붙잡고 있다. 그게 행동의 명분이다. 자기가 쓰레기들보다 우월하다고 믿지는 않는다”

-콜라텍 격투 장면과 자동차 탈출 장면이 예사롭지 않았다. 액션 장면이 어려웠을 것 같다.

“제가 또 무용 공연도 했던 만큼 실감 나게 하는 몸 쓰는 액션을 좋아한다. 경찰차 탈출할 때 할아버지가 입을 법한 속옷이 보였으면 했는데 의도하던 장면이다.

콜라텍 촬영은 2개월 정도부터 무술팀과 연습해서 만들어갔다. 60대 할아버지가 할 법한 액션이 아니니까. 민첩한 액션, 발차기 같은 것도 다 빼고 수정했다. 대신 한 번도 시도 된 적 없는 ‘공포탄 액션’이 추가되었다. 해외는 바로 실탄 아닌가. 우리나라는 공포탄이 있으니까 그걸 활용해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견이었다. 그만큼 공들였고 자부심 생기는 액션 장면이었다.

살면서 주먹다짐을 자주 한 노인의 화를 담아 핏기가 사라진 하얀 얼굴을 보여준다. 아드레날린을 즐기는 노인처럼 보이도록 애썼다. 그런데 감독님이 가까이 잡아주지 않았다. (웃음) 얼굴은 잘 안 보이는데 이런 일을 겪어오면 어떤 표정일지 보여주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갑자기 등장한 괴물 신인 노재원과 과거 인연으로 재회했다고 들었다. 쓰레기 하상민과 대치하는 장면에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달라.

“2년 전 서울독립영화제 독백 페스티벌 심사위원을 했었다. 그때 1등이 노재원이었다. 형식적인 말로 수상하면서 ‘현장에서 만나요’ 했는데 정말 6개월 만에 만난 거다. 너무 빨라서 놀랐고, 촬영 때는 더 놀랐다. 서로 때리는 장면은 생략되고 (맞아서) 아파하는 장면만 연기하면 되었는데 갑자기 자기 배를 막 때리더라. 열심히 하려는 태도가 예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살인자o난감] 송촌이나 <남산의 부장들> 곽상천, <황야>의 양기수 등 빌런부터 <1987>의 윤상삼 기자, <오! 문희>의 아들 두원 등 선역과 악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일상 연기부터 연극적인 캐릭터 연기 둘 다 잘하는 배우는 흔치 않다.

“변신처럼 보이지만 묵혀 둔 작품이 하나씩 공개되면서 만들어진 이미지다. 어떤 역할을 맡으면 그 인물만 생각하고 관심 가지면서 준비한다. 한마디로 역할에 젖어 드는 편이다. 송촌이 말을 건다고 믿고 송촌의 입장에서, 송촌을 이해하는, 저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 봤다. 끊임없이 인물의 자료와 시나리오, 영감 준 자료도 모아두고 있다.

악역에서 빠져나올 때는 명상으로 멘탈 관리하며 조절하려고 노력 중이다. 악역일 때는 얼굴이 다르더라. <1987> 할 때는 기자의 눈이었었고, [살인자o난감] 할 때는 아들이 찍어준 사진을 보니 살인자의 눈빛이라 무서웠다. (웃음) <부당거래> 때는 9번 NG를 내고 온 날 집에 가서 한숨도 못 잤다. 잘하고 싶고 완벽하고 싶은 욕심으로 괴롭혔다. 이제는 그런 욕심은 내려놓았다. 욕심 내봐야 안 된다는 걸 아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배우란 캐릭터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희준에게 ‘송촌’은 어떤 역할로 남을 것 같나.

“지금까지 거친 배역 모두 소중했다. 독립영화, 단편, 드라마 모두 온 마음 다해서 연기했다. 송촌도 그중 하나다. 특히 상상해 보지 못한 제 모습을 보고 제안해 주셨을 때 황당하면서도 감사하다. 한 번도 꿈꿔 본 적 없는 65세를 맡겨주어서 의아해하면서 신기했다. 분명히 제작자의 반대가 있었을 텐데 위험성을 감수하셨을 거다. 이번 기회에 감사하다는 말을 다시 드리고 싶다”

글: 장혜령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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