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으면 끈적끈적한 막걸리 병의 비밀
아이보리빛에 톡 쏘는 맛과 달달한 향이 감도는 막걸리. 요즘처럼 강추위가 몰아칠 때 바삭바삭한 파전에다 막걸리 한잔 들어가면 움츠러들었던 몸이 금방 펴질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선 막걸리 먹으면 다음날 머리 아프다, 앉아서 마실 땐 괜찮은데 일어서면 취한다 호불호가 갈리긴 해도 어쨌든 맛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막걸리 살 때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뜯지도 않은 새 제품인데 병이 끈적끈적하거나 뚜껑 주변에 뭐가 묻어있는 경우가 종종 보여서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유튜브 댓글로 “막걸리는 분명 뚜껑도 새 건데 왜 새어 나오는 건지 취재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뜯지도 않은 막걸리 병이 끈적끈적한 건, 막걸리 자체와 막걸리병의 특성, 그리고 유통 과정상의 이유 때문이다.
양조장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막걸리는 대체로 쌀 같은 곡류와 물, 그리고 누룩으로 만든다. 누룩은 술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곰팡이 덩어리다. 쌀을 물에 불린 뒤 찐 다음 누룩을 넣으면 누룩 속에 든 효소가 화학 반응을 일으켜 쌀 속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분해하고, 이 포도당을 누룩 속 미생물인 효모가 먹으면서 유산균이 만들어지며 술이 발효되고 탄산이 발생한다.
문제는 이 탄산이다. 보통 막걸리 병을 유심히 보면 ‘생막걸리’라고 붙어있는 걸 많이 볼 수 있는데, 여기서의 ‘생’이란 말은 효모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효모가 술 속에 계속 살아 있다 보니 처음 양조장에서 나와 소비자에게 유통되는 과정에서 발효가 점점 진행되고 탄산이 올라오게 된다. 그래서 막걸리는 유리병에도 많이 담기는 소주, 맥주와 달리 대부분 플라스틱병을 쓴다고 한다.
H막걸리 관계자
“(막걸리)병을 유리병이 아닌 플라스틱 병으로 하는 게 이게 팽창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홀쭉 하다가 약간 이렇게 불룩해질 수도 있거든요”
물론 간혹 병에 담긴 막걸리도 종종 보이는데, 이런 막걸리는 대부분 저온 숙성 등의 살균 과정을 거친 살균막걸리거나 완전 발효 상태에서 유통하는 제품이고, 대다수의 생막걸리들은 플라스틱병에 담는다.
뚜껑에도 비밀이 있는데 겉으로 보기엔 잘 안보이는 숨구멍이 있기 때문에 막걸리병이 똑바로 서 있지 않을경우 술이 밖으로 흘러나올 수 있다. 사실 막걸리 뚜껑은 뒤집어 보면 일반적인 페트병 뚜껑과 달리 이렇게 하얀 부직포가 덧대어져 있다.
서울탁주 관계자
“(막걸리병 뚜껑은) 기존 일반 페트 뚜껑이랑 거의 같은 구조라고 보시면 되는데, 거기에 저희는 부직포를 붙여가지고 틈새를 조금 만든거라고 보시면 돼요. (병뚜껑과 병 사이에) 공간을 더 만드는 거죠. 완전히 닫히지가 않는 거죠”
즉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탄산 때문에 완전히 밀폐하지 않도록 설계했다는 얘기다. 술이 새지 않도록 완전히 밀폐할 수는 없는 걸까?
S막걸리 관계자
“그거를 완전히 밀봉해버리면은 탄산은 계속 압이 생성되니까 탄산 때문에 이제 병이 계속 팽창되다가 ‘펑’ 하고 터질 수가 있는 거죠. 유통 과정에서도…”
가뜩이나 막걸리 섞는답시고 흔들고나서 바로 뚜껑 열었다가는 대폭발을 경험하는 판에 멀쩡하던 막걸리병이 이동중에 터지면...그 주변은 아수라장이 될거다.
이런 막걸리의 특성을 감안해 아주 조심조심 다루면 되겠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못하다. 막걸리병을 유심히 보면, ‘세워서 보관하세요’ 같은 문구를 붙여놓지만, 유통 과정에서 이게 잘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도 샐 수 있다고 한다.
남도희 한국막걸리협회 사무국장
“(막걸리) 이송 중에 옮기는 과정에서 후발효가 이뤄지거나 (병이) 누워지거나 하면 이 막걸리들이 조금씩 넘쳐 나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유통 과정에서 막 들거나 확 놓거나 이러면서 거기서 (병이) 뉘어지거나 흔들리거나 이럴 때 (막걸리가 새는 현상이) 발생될 수 있는 요소들이 커요”
간혹가다 막걸리를 냉장고나 차 트렁크 같은데 눕힌 채로 보관했다가 낭패를 봤다는 것도 다 이런 특성을 모르다가 생긴 비극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불상사를 피하려면 막걸리를 되도록 서늘하게 해서 발효 속도를 늦추고 병은 똑바로 세워서 보관해야 한다.
참 까다로운 녀석인데, 그래도 이런 끈적함쯤이야 막걸리 먹다보면 잊혀지게 마련. 오늘 저녁엔 시원한 막걸리나 한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