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호황인 뜻밖의 업종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2번 출구. 멀리 커다란 테크노마트 건물 위로 현수막이 보이는데, 다름아닌 경찰서다. 어, 우리가 아는 경찰서는 이런 모양인데, 경찰서가 여기에 있다고? 경찰서가 거대 쇼핑몰에 입주해있는 희안한 상황이라는 건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왜 경찰서가 들어와있는 건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일단 네이버 지도를 믿고 구로경찰서를 찾아가다보면, 이게 뭐지? 나 지금 경찰서 가는 건데? 혼란스러운 기분에 빠지게 되는데, 그럴 때쯤 적절하게 안내표시가 나타난다. 화살표를 따라 가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짠~, 아쉽게도 여기서부터는 비공개여서, 왱구님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지만, 경찰서 좀 드나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내부는 다른 경찰서랑 거의 비슷했다.
그럴 만한 게 2022년 이사할 때 옛날 구로경찰서에 있는 걸 구내식당까지 그대로 복사하듯이 옮겨왔다고 한다. 그러면 왜 하고많은 건물 두고 쇼핑몰 안에 경찰서가 입주를 했느냐. 결론부터 얘기하면 서울의 높은 임대료, 그리고 신도림 테크노마트의 몰락, 두 가지가 합쳐진 결과물이 ‘테크노마트 경찰서’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구로서는 새 청사를 짓는 동안 임시 청사가 필요했는데 구로구 안에서는 통으로 빌릴만한 적당한 가격대의 빈 건물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옆동네 금천구까지 뒤졌는데, 하마터면 구로경찰서가 금천구에 생길 뻔했던 것.
구로서 관계자
"관내에 저희 경찰서가 입주할 수 있는 단독 건물이, 그런 여유 있는 공간이 있는 게 없고, 있다고 해도 비용이 저희가 감당할 수 없는”
사정은 서울의 다른 경찰서도 비슷해서, 역시 새 청사를 지어야 했던 종암경찰서의 경우 찜질방이었던 건물에 임시청사를 마련했고, 종로경찰서는 과거 면세점이었던 건물을 1층부터 6층까지 통째로 빌렸다.
이거 꽤나 이상한 조합이긴 한데, 뜻밖에 직원들 만족도는 높다고 한다.
구로서 관계자
"1호선 2호선이 다 통하잖아요. 그리고 또 버스도 환승하기도 좋고 그래가지고 (임시청사) 구조가 수평적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각 과별 협업이라든가 아니면 업무상 협조를 구할 때 굉장히 이동이 편리한 구조로 돼 있습니다.”
테크노마트 고객들 반응도 나쁘지 않은 게, 주차장에 경찰차도 많고, 제복 입은 경찰이 수시로 드나드니까 안전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찰서를 방문하는 민원인들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특히 주차 문제가 완벽히 해결돼서 한때 구로경찰서는 민원인이 40%가 급증하는 이례적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구로서 관계자
"(구청사는) 민원인들 주차 차량으로 가득 차 있어서 청사 방호관이 항상 주차 관리를 했었어야 되는데 여기는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습니다만 거의 1000대 단위 이상 공간이 확보돼 있는 곳이어서”
그렇게 다들 좋아하면 그냥 계속 이 건물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경찰이 공개하지 않아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부동산업자 추정에 따르면, 만약 월세 계약을 했다면 한층을 쓰는 비용이 관리비까지 포함해 월 2억원에 육박할 거라고 한다.
그러면 신도림 테크노마트는 어쩌다 경찰서에 층을 통째로 내줄 정도로 텅텅 비게 된 걸까. 1, 2호선 더블역세권인데다 거주 인구도 이렇게 많은데 말이다. 층에 따라선 구역 절반 가까이가 공실인 곳도 있고 부동산 경매에 나와있는 매물도 많다.
테크노마트 상인
“뭐 얘기할 게 있어요 다 죽을 맛인데 얘기 하나마나지. 장사 접으면 새로 장사할 사람이 있어야 들어올 거 아니에요. 안 들어오거든, 한 번 나가면”
2018년엔 CGV마저 나가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한다. 이후로 젊은 손님은 길 건너편에 있는 디큐브시티나 문래동 쪽으로 대부분 뺏겼다.
테크노마트 고객
“저희 나이대는 여기 쇼핑할 일이 아예 없고, 올라가 보시면 아실 텐데 다 (옷이) 할머니들 거밖에 없어요”
이 와중에 전자제품 소비패턴의 변화는 치명적이었다. 사실 이게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데, 전자제품을 온라인에서 사는 게 보편화되면서 전자제품을 주력으로 했던 테크노마트가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신도림 테크노마트는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스마트폰 성지’로 명성을 날렸지만 소위 ‘단통법’이 시행된 뒤에는 그것마저 옛말이 됐다. 일부 휴대폰 상인들의 과도한 호객행위도 영향을 줘서, 정신 바짝 안차리면 사기 당한다는 식의 불신이 커지면서 이미지가 추락했다.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경찰서가 들어섰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첫 반응이 “사기 당하면 신고하기 편하겠다”는 거였는데, 이런 조롱이 나온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근데 이제 내년 말에 구로경찰서 새 청사가 다 지어지면, ‘큰손’ 구로경찰서도 신도림 테크노마트를 떠날 계획이라고 한다.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고, 시내 상권들 다 죽는다고 난리인데, 신도림 테크노마트든 다른 곳이든, 고객들 많고 잘나갈 때 초심 잃지 말고 조금만 더 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도 취재를 의뢰하고 싶다면 댓글로 의뢰하시라. 지금은 “전철 선로로 탱크가 지나가는 걸 본적이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 중이다. 구독하고 알림 설정하면 조만간 취재 결과가 올라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