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는 어떻게 중남미까지 사로잡았나…멕시코의 'BTS 열광'이 뜻하는 것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2026. 5. 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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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멕시코 대통령궁을 찾아 발코니에서 인사하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방탄소년단(BTS)이 정확하게 보여주듯이, 최근 멕시코와 미국 내 히스패닉 거주 지역에서 목격되는 K팝 열풍은 한류의 외연이 지리적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라틴아메리카와 미국 내 스페인어권은 전통적으로 영미권 주류 문화의 영향력 아래 있으면서도, 동시에 독자적 언어와 강한 결속력을 유지해온 시장이다.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정반대편에 위치한 이들이 한국어 콘텐츠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문화인류학적 관점의 분석이 필요하다.

음악적 관점에서 볼 때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권의 문화적 자양분인 레게톤(Reggaeton)과 살사(Salsa)는 직설적 리듬과 강렬한 에너지가 특징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한국의 대중음악이 지향하는 '흥'의 정서가 이들의 '피에스타(Fiesta)' 문화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주파수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언어와 인종은 다르지만, 비트를 수용하고 신체적으로 반응하는 ‘음감(Musical sense)’의 기저가 동질적일 때 문화적 장벽은 비약적으로 낮아진다. 지리적 거리는 멀지만 정서적 거리는 이미 동기화돼 있었다는 게 이번 현상의 핵심이다. K팝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정교한 멜로디 라인은 라틴권 대중의 음악적 DNA를 자극하는 최적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공명은 단순히 청각적인 즐거움을 넘어 시각적 서사와 퍼포먼스의 완성도를 통해 더욱 증폭된다. 라틴 문화 특유의 열정적 표현 방식이 K팝의 군무와 강렬한 시각 효과라는 '언어'를 통해 변주될 때, 현지 대중은 이를 자신들의 문화를 가장 현대적으로 계승한 세련된 장르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정교하게 설계된 문화적 알고리즘이 서로 다른 토양에서 어떻게 유사한 꽃을 피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비즈니스 구조적 측면에서 멕시코와 미국 내 스페인어권 시장은 오랫동안 글로벌 팝 시장의 변두리로 취급받아온 경향이 있다. 이러한 '소외된 시장'의 대중에게, 역시 주류 서구권 시장의 비주류(Underdog)에서 출발해 정점에 올라선 한국 아티스트들의 서사는 강력한 동질감을 부여한다. 자국 언어가 아닌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는 행위는 단순히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을 넘어, 주류 문화가 채워주지 못했던 문화적 갈증을 비주류 간 연대를 통해 해소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연대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직접 소통이라는 한류 특유의 문법과 결합해 공고한 팬덤 공동체를 형성한다. 영미권 대형 자본이 주도하는 일방향적 공급 체계와 달리,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보여주는 쌍방향적 교감과 진정성 있는 서사는 라틴권 대중에게 심리적 위안과 승리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결국 한류는 특정 국가의 문화를 넘어, 전 세계 소외된 감성들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문화적 플랫폼이자 정서적 연대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류의 지리적 확장이 사실상 지구 전역을 포괄하게 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점령'이 아니라 '안착'이다. 일시적 공연 수익이나 반짝 유행에 안주하는 방식으로는 이 거대한 시장을 지속시킬 수 없다. 현지의 음악적 자산인 레게나 살사의 문법을 한류의 제작 시스템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할 것인지, 그리고 이들의 문화적 토양에 어떻게 한국식 플랫폼을 깊이 뿌리내릴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확장이 끝난 지점에서 비로소 진정한 비즈니스의 질적 성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의 군중을 동시에 흥분시키는 힘은 결국 '보편적 감성의 설계'에서 나온다. 멕시코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확인한 것은 한국인이 가진 특유의 역동성이 전 지구적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자부심이라는 감정적 단계를 지나, 이 현상을 어떻게 표준화된 시스템으로 정착시킬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지리적 경계가 사라진 무대 위에서 한류는 이제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룰을 재정의하는 '설계자'의 위치에 서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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