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침묵하는 과학, 외면당한 책임

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2025. 7. 1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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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대통령이 참석한 졸업식장에서 학생이 강압적으로 끌려나간 사건에 대해 해당 대학의 교수회는 입장문을 준비했고, 계엄 사태를 맞아 많은 과학자는 시국성명에 동참했다. 지난달에는 기초과학자 2229명이 국회에서 절박한 심정을 담아 연구생태계 복원을 새 정부에 촉구했다. 이런 행위는 정치적 중립성을 논하는 범위를 벗어난 문제다.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에 안주하며,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잘못을 나부터도 통렬하게 반성한다. 인류의 역사에는 수많은 혁명이 있었다. 대부분은 거리에서 벌어졌지만, 어떤 혁명은 실험실 안에서 조용히 일어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이 민주주의의 초석이었다면, 상대성 이론은 세계관 자체를 뒤흔들었다. 과학은 때때로 정치보다 더 급진적이다.

정치란 통치를 위한 권력의 획득과 행사로 정의되지만, 정치학자 이스턴은 ‘가치의 권위적 배분’으로 설명했고, 철학자 푸코는 사회 전반에 작용하는 ‘관계의 구조’로 보았다. 생물의 세계에서는 더 자명하다. 암세포의 성장, 면역세포와 병원균의 대결, 생식행위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는 끊임없이 정치적인 선택과 경쟁을 겪는다. 진화는 곧 생명체의 정치사라고 볼 수 있으며, 인간의 의사결정 역시 정치적 본능을 반영한다. 그 속에서 과학자들도 함께 협력하거나 경쟁하며, 이론의 정립과 연구비 배분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적 행위에 참여한다. 과학은 끊임없는 검증과 합의를 통해 더 나은 설명에 도달하려는 과정이며, 하나의 결과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항상 정치적 가치 판단의 여지를 품고 있다.

생물학자 르원틴은 과학이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는 것을 비판하며,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1972년 발표한 논문은 유전자 변이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인종 간’에는 유전학적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담았다. 17개의 유전자만을 분석한 그의 데이터는 제한적이지만, 인종차별을 부정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자신의 데이터를 해석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과학은 궁극적으로 정량적인 결과를 추구하기에 사회가 원하는 딱 떨어지는 답을 주기 힘들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과학이 피해자의 편에 설 수 있었음에도, 지나친 신중함이 오히려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한 사례도 있었다. 역학조사와 독성 연구를 통해 전문가들은 유해성에 대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봤지만, 재판부나 정책결정자들은 더 확실한 인과관계를 요구했다. 이런 수준의 확신은 신앙이지 과학이 아니다.

우리가 소비하고 활용하는 거의 모든 자원은 과학기술의 손을 거친다. 이런 이유로 과학기술을 누가 선점하느냐는 정치 권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제모을루는 기술 발전의 혜택이 소수의 특권층에 집중되어 온 역사를 비판한 바 있다. 특히, 의생명 기술은 ‘시간’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자원을 인간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어떤 이는 100년을 살지만, 누군가는 꽃피우기도 전에 삶을 마감하고, 또 누군가는 평생을 질병 속에서 살아간다. 장수를 연구하면 많은 사람의 건강수명을 30세 정도 늘릴 수 있지만, 희귀 유전병을 연구하면 한 아이의 생명을 70년 이상 확장할 수도 있다. 정치와 자본은 다수가 겪는 질병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지게 만든다. 기술의 가능성은 때때로 소수자들의 고통 앞에서 침묵한다.

연구 분야의 선택은 과학자가 내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결정이다.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결정이 옳았는지는 명쾌하게 답하기 어렵다. 올바른 이론을 세우는 일은 과학의 몫이지만, 그 이론의 활용에 관한 판단은 사회 전체의 몫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을 미덕처럼 여기며, 사회적 약자가 과학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순간에도 종종 침묵한다. 과학자 스스로가 가치 판단과 자원의 배분이라는 본질적인 정치 과정을 외면한 것이다. 이는 사회적 차별과 피해에 눈을 감는 결과로 이어진다.


만약 그것이 우리가 바라던 과학의 모습이 아니라면,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보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정치적일 필요가 있겠다. 그것이 바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오늘날 과학자에게 요구되는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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