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길 한 번이 한 선수의 1년 계획을 통째로 흔들어버릴 때가 있다. 김하성에게 이번 겨울이 딱 그렇다. “오른손 가운데손가락 힘줄 파열, 수술, 회복 4~5개월”이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야구 팬들은 자연스럽게 달력을 먼저 펼쳤을 것이다. 4~5개월이면 숫자만 놓고는 길지 않아 보이지만, 메이저리그 시즌이라는 시간표에 올려놓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프링캠프는 이미 시작되고, 개막은 금방이며, 선수는 ‘몸을 만드는 기간’부터 놓치게 된다. 김하성 입장에선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첫 단추가 삐끗한 셈이다.

이번 부상이 더 아픈 이유는, 김하성이 2026시즌을 사실상 “반등과 재도전의 해”로 잡아놨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시즌 도중 탬파베이에서 애틀랜타로 옮긴 뒤 24경기에서 타율 0.253, 출루율 0.316, 장타율 0.368을 찍으며 분위기를 조금 돌려세웠고, 결국 애틀랜타와 1년 2000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은 겉으로는 ‘1년짜리’지만, 속뜻은 뚜렷했다. 올 시즌을 건강하게 치러서 가치를 올리고, 다음 시장에서 더 큰 계약을 노리겠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그 계산의 전제가 딱 하나였다. “건강.” 그 전제가 개막도 전에 깨져버렸다.
손가락 힘줄 부상은 특히 야구 선수에게 까다롭다. 타자는 손가락 하나로 배트를 잡고, 미세한 힘 조절로 공을 때린다. 유격수는 손가락으로 공을 잡아채고, 송구할 때도 손끝 힘과 감각이 들어간다. “가운데손가락”이라는 말이 괜히 신경 쓰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회복 기간이 4~5개월이라고 해도, 단순히 상처가 붙는 데 걸리는 시간과 실전에 들어갈 몸 상태는 다를 수 있다. 빨라야 5월 중순, 조금만 삐끗해도 6월까지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야구는 체력보다 ‘감각’이 늦게 오는 종목이다. 그리고 손가락 감각은 그 감각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축에 속한다.

애틀랜타는 당장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김하성이 빠지는 동안 주전 유격수는 마우리시오 듀본이 맡는다고 알려졌다. 듀본은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선수로 알려져 있고, 감독 입장에서는 “일단 메우는 카드”로 쓰기 좋은 자원이다. 하지만 ‘메운다’와 ‘대체한다’는 다르다. 김하성은 수비에서 범위를 넓혀주고, 공격에서는 한 방보다 출루와 주루, 상황 판단으로 점수를 만드는 타입이다. 이런 선수는 기록 한 줄로 대체가 쉽지 않다. 특히 시즌 초반은 팀이 아직 덜 굳은 시기라서, 수비에서 한 번 흔들리면 연쇄적으로 투수 운용까지 흔들릴 수 있다. 유격수 공백은 그만큼 무겁다.
더 큰 문제는 김하성에게 2026시즌 초반이 단순한 “결장 기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시즌은 그가 팀 내에서 역할을 단단히 굳히고, 다시 시장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창구였다. 그런데 시즌 초반이 사라지면 무엇이 줄어드나. 가장 먼저 “보여줄 기회”가 줄어든다. 그리고 기회가 줄어들면 협상에서 선수 쪽이 할 수 있는 말도 줄어든다. “올해는 이만큼 했다”라는 문장이 짧아지면, 구단은 더 편하게 말한다. “부상 이력도 있고, 샘플도 적고, 위험하니 조심하자.” 김하성이 원래 바라던 그림은 ‘풀타임에 가까운 시즌’이었다. 그런데 복귀가 5~6월이 되면, 풀타임은커녕 시즌 절반을 쫓아가는 모양새가 된다. 여기서부터는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 싸움이 된다.
한국 대표팀 입장에서도 타격은 크다. WBC가 3월에 열릴 예정이라면, 김하성은 사실상 출전이 어렵다. 대표팀은 늘 유격수 하나로 운영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대회에서 실책이 줄어드는 수비 안정감’, ‘빠른 공에 대응하는 타격 템포’, ‘경기 흐름을 읽는 경험치’ 같은 것들은 한 자리에서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기사들에서 대체 후보로 NC 다이노스 김주원이 거론되는 것도, 결국 대표팀이 지금 당장 믿고 맡길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주원은 젊고 에너지가 있지만, 국제대회는 또 다른 무대다. 상대는 더 빠르고, 분위기는 더 거칠다. 결국 대표팀은 “김하성이 있는 플랜”에서 “김하성이 없는 플랜”으로 완전히 갈아타야 한다. 이게 생각보다 큰 작업이다.

여기에 더 불안한 소식이 겹친다. 이데일리 보도 흐름에선 송성문도 옆구리 근육 부상으로 전치 4주 진단 이야기가 나왔다. 만약 이 부분까지 현실이 된다면, 대표팀 내야 구상은 더 급해진다. 물론 부상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국가대표는 ‘대체 가능성’이 낮은 포지션부터 흔들린다. 유격수가 그 대표다. 그래서 김하성의 부상은 애틀랜타만의 악재가 아니라, 한국 야구 전체의 고민을 한 번에 늘려버린다.
그렇다고 김하성이 “끝났다”는 식으로 말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중요한 건 복귀 이후다. 시즌 초반을 놓치면, 선수는 보통 두 가지 길로 간다. 하나는 서둘러 복귀를 당기다 다시 다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들여 확실히 고친 뒤 뒤늦게 폭발하는 길이다. 김하성에게 필요한 건 두 번째다. 특히 손가락은 애매하게 돌아오면 타격에서 공이 계속 밀리고, 수비에서도 송구가 늦는다. 그럼 성적표에 찍히는 건 “부진”이고, 그 부진은 곧바로 “가치 하락”으로 번역된다. 차라리 복귀가 조금 늦더라도, 돌아올 때는 확실히 돌아와야 한다. 김하성은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적응기를 버텼고, 최고의 시즌도 찍어봤다. 지금 필요한 건 조급함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자기 루틴을 지키는 냉정함이다.
애틀랜타도 비슷하다. 시즌 초반을 듀본으로 버티고, 김하성이 돌아오는 시점에 맞춰 내야 운영을 다시 짜야 한다. 중요한 건 “김하성이 돌아오면 모든 게 해결”이라는 기대를 팀이 하지 않는 것이다. 부상 복귀 선수에게 초반부터 모든 걸 요구하면, 돌아온 선수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김하성은 팀의 주전 유격수로 기대를 받고 있지만, 복귀 직후에는 타격보다 수비 안정부터 천천히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경기 감각은 시간이 만들고, 성적은 그 다음에 따라온다.

결국 이번 부상은 김하성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내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다시 올라갈 수 있나.” 김하성은 원래 화려함보다 꾸준함으로 증명해온 선수다. 수비에서 실수를 줄이고, 공격에서 한 번 더 살아나가고, 주루에서 한 베이스를 더 만들어내며 팀 승리를 쌓아왔다. 그 김하성이 다시 가장 김하성답게 돌아온다면, 5~6월의 복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다. 올해의 이야기가 ‘부상으로 무너졌다’로 끝날지, ‘부상에서 돌아와 뒤집었다’로 바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김하성은 지금, 가장 불편한 방식으로 자신의 시즌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설계가 성공하면, 이번 겨울의 빙판길은 “최악의 사고”가 아니라 “가장 큰 반전의 출발점”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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