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지구, ‘총알배송’ 좋아하는 당신이 만들었다 [책&생각]

한겨레 2024. 9. 2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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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쓰레기 경제 전문가
‘쓰레기’ 키워드로 문명사 조망
쓰레기의 역사는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쓰레기를 떠넘기는 역사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재활용품을 찾고 있다. 흐름출판 제공

쓰레기의 세계사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l 흐름출판 l 2만6000원

명절이 두려운 사람은 산더미 같은 전을 부쳐야 하는 며느리만은 아니다.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쓰레기장 일꾼들도 마찬가지다. 지자체들은 추석과 설날 시즌마다 평소보다 2∼3배 이상으로 쏟아지는 쓰레기와 전쟁을 벌여야 한다.

쓰레기는 경쟁적으로 쏟아내지만, 처리는 경쟁적으로 서로에게 미룬다. 쓰레기 처리시설을 만들 때마다 님비현상이 발목을 잡는다. 이는 국내에만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근래 몇년 사이 국제사회에서도 쓰레기를 둘러싼 분쟁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캐나다, 미국, 호주 등 선진국이 ‘수출’이라는 명목으로 필리핀 등 동남아에 재활용 폐기물을 떠넘겼는데, 동남아 국가들이 ‘재활용이 안 되는 진짜 쓰레기만 들어 있다’며 이를 반송하는 사태가 국제면을 크게 장식하기도 했다.

‘쓰레기의 세계사’는 쓰레기를 키워드로 들춰본 세계사이자 문명사이다. 독일의 역사가이자 쓰레기 경제 전문가가 썼다.

쓰레기와 인간은 가깝고도 오래된 관계를 맺어왔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쓰레기가 만들어졌고,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인간이 존재했다. 네안데르탈인도 쓸모없다고 여기는 물건은 내버렸고, 고대 로마는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으며, 13세기 이집트는 골목의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주기적으로 대청소했고, 17∼18세기의 런던과 파리는 쓰레기를 도시 밖으로 내다 버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과거의 쓰레기는 요즘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전근대 사회에선 쓸 수 있는 자원도, 그래서 버릴 자원도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활용과 재사용은 일상다반사였다. 구리와 유리 조각이 실린 난파선은 로마제국 시기에도 재활용을 위한 장거리 무역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중세와 근대 초기 난파선을 살펴보면, 배는 다른 배에서 떼어낸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만들어져 있다. 근대에는 자투리 천을 재활용해서 종이를 만들었는데, 종이 수요가 늘어나면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천을 구하는 상인들이 있었고, 런던과 파리에는 중고 의류와 직물을 받는 환전소도 있었다. 뼈, 유리, 금속은 갈고, 가열하고, 녹여서 다시 쓰는 게 당연했다.

귀족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하루 먹고사는 절대빈곤의 시기였기 때문에 무언가 새것을 산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18세기까지 노동계층은 새 옷을 사는 일도 없었다. 대부분 중고시장에서 옷을 사 입었으며, 아이들은 어른 옷을 줄여서 입었다. 귀족층도 드물지 않게 재활용에 참여했다. 원하는 옷을 다 살 수 없었던 귀족 부인들은 드레스에서 금실을 뽑아내 팔거나 재활용했고, 가진 물건의 중고거래를 통해 번 돈으로 새로운 유행템을 구매했다.

이렇듯 전근대사회는 ‘제로 웨이스트’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땐 동물과 인간의 배설물도 아낌없이 비료로 활용되었다. 농부들은 도시의 배설물을 가져간 뒤 그걸로 키운 식량을 도시에 공급했다.

역사가 라인홀트 라이트는 쓰레기와 재활용의 상관관계를 간단한 법칙으로 일반화했다. 물건이 재활용될지 여부는 자본과 노동비용의 상대성에 달려 있다고. 노동력은 풍부하고 저렴한 데 반해 원자재와 물건이 귀하고 비싸다면 사람들은 재활용하게 된다. 반면, 물건값이 노동 비용보다 저렴해질수록 재활용의 가치는 줄어든다. 이 변곡점이 ‘산업혁명’이다. 저렴한 대량생산의 물꼬를 튼 산업혁명은 재활용하는 것보다 새것을 만들어내는 것의 비용을 낮추기 시작했다.

급속한 도시화 역시 쓰레기 문제를 심화시켰다. 1901년 인도에서 인구가 10만명이 넘는 도시는 25개에 불과했으나 2011년에는 500개를 넘어섰다. 뭄바이의 인구는 현재 3000만명에 달한다. 도시화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개와 돼지 등 가축들을 도시에서 쫓아냄으로써, 쓰레기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저자는 쓰레기가 감당할 수 없게 폭증한 시기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질임금이 상승하면서 시작된 대량소비 때부터라고 본다. 1950년대부터 사람들은 절약과 검소함보다 소비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명이 짧은 제품을 사서 짧게 쓰고 버리는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슈퍼마켓이라는 새로운 유통 시스템의 등장도 대량소비에 불을 붙였다. 슈퍼마켓은 1920년대에 미국에 도입됐고 1950년대부터 유럽으로 확산됐다. 소비자는 물건에 대해 판매자와 대화나 흥정을 하면서 물건을 고르는 대신, 선반에 진열된 수십, 수백가지 상품들의 가격표와 정보를 빠르게 훑어보면서 ‘싹쓸이’ 할 수 있게 됐다.

세계은행 연구에 따르면, 2016년 가정에서 버린 쓰레기양은 20억1천만톤이다. 우리가 매일 내놓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에펠탑 100여개 무게에 달한다. 상황은 더 악화돼 2050년에는 가정용 쓰레기가 34억톤에 이를 전망이다. 책은 쓰레기 처리의 역사도 깊이 있게 다룬다. 이는 부자가 가난한 이에게, 도시가 도시 외곽으로,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로 쓰레기를 떠넘긴 역사임을 폭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덜 쓰고 아껴 쓰고 더 재활용하고 재사용하면 될까? 저자는 그런 해결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관점이다. 현대의 많은 쓰레기는 수많은 재화를 대량생산하고,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얻는 이득의 부산물이다. 시간과 노동을 덜어주고 일상을 편리하게 해주는 대가가 쓰레기이다. 오늘 주문한 물건을 내일 택배로 받고, 24시간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의 산물이다.

이에 따라 쓰레기를 줄인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을 비싸고, 느리고,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곤층에는 더욱 힘든 일이다. 책은 그래서, 과거의 방법으로는 오늘날의 쓰레기를 감소시킬 수 없음을 무섭게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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