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겪은 일
일본 진출 뒤 첫 시즌이었다(1998년). 개막 초반에는 3할대를 치며 괜찮았다. 6월 들자, 집중 견제의 표적이 됐다. 일본식 현미경 야구에 고전이 시작됐다. 그러나 조금씩 극복하고 있었다. 올스타 투표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달렸다. (타율 0.283, 10홈런, 18도루)
그러던 중이다. 정확하게는 6월 24일 경기다. 한신 타이거스의 선발은 가와지리 테츠로였다.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잠수함 투수다. 그의 몸쪽 싱커에 말려들었다. 배트가 나가다가 간신히 멈췄다. 하지만 투구가 오른쪽 팔꿈치를 강타했다.
“공이 맞고 멀리 튀어 나가야 하는데(그래야 충격이 분산되는데), 바로 아래로 툭 떨어지더라. ‘아차’ 싶었다. 동시에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병원에서 진단 결과는 걱정 그대로였다. 아내 얼굴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이종범)
팔꿈치 골절상이었다. (막판에 복귀했지만) 사실상 시즌 아웃이다. 그리고 힘겨운 2년을 보내야 했다. 본래 포지션(유격수)도 잃었다. 공격력도 함께 주눅이 들었다. 작고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화내는 일이 많아졌다. “1번 타자가 왜 그렇게 용기가 없냐.” 몸쪽 공에 자꾸 움츠러든다며 질책했다.
“어느 날인가 거울을 보는데, 정수리 옆이 훤하더라. 500원짜리 크기 ‘땜빵’이었다. 처음에는 1개, 곧 2개로 늘어났다. 창피해서 매직도 칠해보고, 화장실 청소하는 약(크레졸)도 발라봤다. 슬라이딩 때는 헬멧이 벗겨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원형 탈모증은 쉽게 낫지 않았다. “겨울이면 좋아졌다. 그런데 2월 캠프 때 주니치 유니폼을 입으면 또다시 도졌다.” 결국 광주로 돌아가서야 완치 판정을 받았다.
친한 선배가 겪은 일
3년 먼저 태평양을 건너간 선배의 일이다.
“첫 스프링캠프 때(2021년)다. 등번호가 세 자릿수 투수가 나오더라. 그런데 던지는 게 어마어마했다. 난생 처음 160km가 넘는 공을 봤다. 그것도 똑바로 오는 게 아니다. 이리저리 휘어지면 오더라. 엄청 당황스러웠다. ‘이건 뭔가 잘못됐는데…’,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 (김하성)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머리를 깎으러 갔는데, 미용하시는 분이 조심스럽게 얘기하시더라. ‘(원형 탈모) 알고 계시냐’고. 거울로 보여주시는데, 진짜 이만한 크기로 둥그렇게 머리가 빠졌더라. 엄청 크게. 그 무렵 몸무게도 10kg이나 줄었다.”
일본 출신의 또다른 도전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 출신의 가와사키 무네노리다. 그 역시 NPB 정상급 유격수다. 골든글러브를 2번이나 받았다. 2006년과 2009년 WBC의 주역이기도 하다.
2011년을 마치고 FA가 됐다. 그리고 돌연 미국행을 선언했다. “평생의 꿈이 있다. 이치로 상과 함께 야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1년짜리 마이너리그 계약(62만 5000달러)도 흔쾌히 OK 했다. 소프트뱅크 제시액의 1/20에 불과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로스터 진입조차 어려웠다. 마이너리그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가 끝내 토론토로 트레이드 됐다. 서툰 영어에, 통역도 없는 고단한 생활이었다. 하루는 아내가 깜짝 놀란다. “여보, 당신 뒷머리가 이상해요.” 500엔짜리 훤한 빈자리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슈퍼 캐치 이후 분노의 퍼포먼스
개막 후 딱 20경기까지다. 날짜로 따지면 지난달 21일(이하 한국시간)이다. 그날까지 봄이었다. 11경기 연속안타가 끝났다. 그 뒤로는 내리막길이다. 이후 13게임에서 부진하다. 53타수 동안 단타 10개(0.189)가 전부다. 0.289였던 시즌 타율은 0.244로 내려갔다. (6일 현재)
물론 아까운 타구도 꽤 있었다. 펜스 몇 발 앞에서 잡혀 애를 태웠다. 하나만 넘어갔어도 분위기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운의 소관으로 돌릴 수 없다. 공격력만 문제도 아니다. 수비에서도 아쉬움이 크다. 벌써 떨어트린 타구가 2개나 된다. 햇빛 핑계를 댈 수도 없는 일이다. 실책이 아닌 안타로 기록됐지만, 분명히 잡아야 할 공이었다.
특히 3일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레드삭스 전이 뇌리에 남는다. 4회 세단 라파엘라의 높이 뜬 플라이를 놓쳤다. 낙하지점을 못 찾아 2루타를 허용했다. 지난달 홈구장(오라클파크)에서 저지른 실수와 비슷하다.
다행히 조금 뒤 만회했다. 2사후 자렌 듀란의 라인드라이브에 몸을 날렸다. 안타성 타구를 멋지게 걷어낸 것이다. 실점을 막고, 이닝을 끝낸 슈퍼플레이다.
그리고 보여준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곧바로 일어나며 잔디를 힘껏 내리친다. 조금 전 자신의 실수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는 모습이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한 면책은 기대하기 어렵다. 데이터는 냉정하기 때문이다.
승리기여도에 나타난다. 팬그래프닷컴이 집계한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fWAR)은 5일까지 0.1이다. 공격 기여도(oWAR)가 약간이나마 플러스(0.3)지만, 수비 기여도(dWAR)는 마이너스(-0.1)에 그친다(5일 현재).
후배를 다독인 그의 얘기
바람의 손자는 ‘5+1 툴(Tool)’을 지향한다. ① 정확성이 뛰어나면서 ② 가끔 장타도 터트린다. ③ 빠른 발과 ④ 강한 어깨를 지녔다. ⑤ (장기적으로) 평균 이상의 중견수 임이 틀림없다. 여기에 플러스 원이 있다. ⑥ 수려한 외모다.
때문에 멋진 헤어 스타일은 소중하다. 원형 탈모 따위는 용납할 수 없다. 아버지, 절친 선배가 겪었던 일이 그에게 일어나선 안 된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202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때였다. 치열하고 극적인 승부 끝에 랜더스의 우승이 결정됐다. 그라운드는 온통 환호와 갈채로 뒤덮였다. 반면 패자의 덕아웃은 실망과 좌절만 남았다. 모두가 빠져나가 썰렁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여전히 떠나지 못한 두 개의 실루엣이 있다. 고개를 못 드는 누군가와 그 앞에 쪼그려 앉은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다. 김휘집과 이정후였다. 실책을 자책하는 후배를 리더(주장)는 이렇게 다독였다.
“(휘집아) 괜찮아. 우리 모두 열심히 했고, 멋있게 해냈어. 누가 네 자리에서 했어도 그런 실수를 했을 거야. 형들이 더 잘했으면 이겼을 텐데…. 우리 아직 젊잖아. 내년도 있고, 앞으로 계속 기회가 있을 거야. 다시 열심히 뛰면 돼.”
분명 멋지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얘기를 이정후가 자기 자신에게 해줘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