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960점 유류품처럼 아직 묻혀있는 ‘이태원의 진실’

김가윤 기자 2024. 10. 2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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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2주기
희생자들의 존엄 지키기위해
유가족들은 2년 내내 거리에
유품 거둘 새도 없었던 걸까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현장인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한 시민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이날 오전 이곳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의 이름이 담긴 빌보드 작품이 공개됐다. 제막식에 참석한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이태원 참사를 되새기고 애도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많은 분이 꼭 한번 이 길에서 그날의 참사를 기억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공동취재사진
“유류품은 누군가가 존재하거나, 적어도 존재했으며 누군가로부터 사랑도 받았음을 말해주는 생생한 증거다.” (책 ‘유류품 이야기’, 로버트 젠슨)

2022년 10월29일로부터 2년이 흘렀다.

서울 용산경찰서 창고에는 참사 당일 이태원 거리에서 나온 960점의 재킷, 원피스, 구두, 부츠, 화장품, 스티커 사진 등이 2년째 ‘유류품’으로 남아 있다. 경찰청 유실물 통합포털에 실린 사진 속 유류품의 면면은 ‘존재하고 사랑받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과 관련된 것들이다. 흙이 묻고 해진 것이 많다. 일상이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한 참혹한 날을 증언한다. 경찰 관계자는 한겨레에 “유류품은 통상 6개월 보관하고 폐기하지만 이태원 유실물은 기한 없이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는 “별다른 대책은 없다”고 했다.

대책 없이 남겨진 물건을 두고 2년 동안 유가족의 삶은 주로 거리에 머물렀다. 서울시청 분향소에서, 국회에서, 법원에서, 대통령실에서 사과와 진상규명, 안전사회 건설을 요구하며 울고, 외치고, 삭발하고, 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실상 참사의 가장 큰 피해자인 그들 자신을 돌보는 일은 거의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어요.”(참사 희생자 오지민 어머니 김은미씨) 정부는 보듬고 위로하는 존재였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참사로 희생된 가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잊고 싸워야 할 대상이었다. 애도하지 못했고 2년 내내 아팠다.

한겨레는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유가족에게 ‘희생자의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알권리 보장, 참여, 보존, 애도와 추모를 통해 참사의 최대 피해자인 유가족을 지원하고 그들의 치유를 생각하지 못한 ‘반복된 실패’가 물건들에 얽혀 전해졌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오지민씨의 어머니 김은미씨가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오후 자택에서 딸이 참사 당일 들고 나갔던 가방을 안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잊힌 레이하네의 트렁크

이란인 희생자 레이하네 사다트 아타시의 옷을 담은 트렁크 가방은 아직 한국에 있다. 레이하네 가족은 딸의 주검을 인도받았지만 유품은 구하지 못했다. 지난 8월 중순 이란 테헤란 집을 찾은 레이하네의 친구에게 엄마가 말했다고 한다. “유품을 받아야 우리 딸 영혼이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와 레이하네 가족의 ‘유품 찾기’가 시작되고서야 정부가 외국인 희생자의 유품을 ‘잊어버렸던’ 실상이 드러났다. 그나마 참사 현장에서 수습돼 경찰이 관리하는 유류품과 달리, 희생자가 생전에 갖고 있던 ‘유품’은 유가족 각자 처리하도록 돼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었다. 참사 2주기를 한달여 앞둔 지난 9월 레이하네 가족 소식이 전해진 뒤에야 정부도 부랴부랴 파악한 내용이다. 외국인 희생자의 유품은 외교 물품이 아니어서 한국·이란 대사관 쪽도 처리가 어렵다, 행정안전부 산하 ‘10·29 참사 피해자 지원단’에도 관련 규정이 없다는 정부 설명이 이어졌다.

행안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제도적으로는 이미 초기에 장례 비용과 구호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절차가 종료된 상황이다. 그 이후 상황에 대해 확인하거나 관리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했다. 이어 “먼저 (유가족에게) 말을 꺼내면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으로 레이하네 가족을 인터뷰한 박희정 작가는 “피해자들은 정보에서 배제돼 있었고 후속 조처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외국인 희생자가 26명이나 될 정도로 많았던 만큼 이는 국가적인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수거됐지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유류품은 모두 960점이다. 때가 묻은 지갑, 모자, 구두 등은 그날의 아픔을 증언하고 있다. 경찰청 유실물 통합포털 갈무리

쓰레기봉투에 담긴 오지민의 니트

유품에 대한 ‘무신경’은 참사 초기 국내 희생자 가족 대부분도 겪은 일이다. 희생자 오지민의 어머니 김은미씨는 딸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집 거실에서 처음 본 파란색 쓰레기봉투를 잊지 못한다. 딸의 치마, 니트, 스타킹이 담겨 있었다. “그냥 쓰레기 담듯이 막 넣어서 휙 던지듯이 준 거예요.”

김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경황이 없었다. 정신이 없었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수습 과정에서 최소한의 정보도 듣지 못한 탓이다. 그는 “딸의 신발이 굉장히 지저분했는데 지금은 상황을 어렴풋이 알고 있으니까 이해가 가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했다. 다른 유가족과 연락해보고 싶었지만, 정부는 유가족의 ‘모일 권리’를 보장하는 정보 또한 제공하지 않았다.

참사 당시 선포된 ‘국가애도기간’조차 오히려 참사 피해자를 배제하는 모습으로 이뤄졌다. 최성용 성공회대 연구원(국제문화연구학과 박사 수료)은 지난 25일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마주하는 질문들’ 포럼에서 “참사 대신 사고라 명명하고, 희생자의 영정 사진과 위패가 없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정부의 애도는 다분히 형식적이었고 그 내용이 텅 비어 있었다”며 “참사 피해자의 존재를 없애고 침묵시켰다”고 했다.

찾을 수 없는 서수빈의 신발

“나는 못 할 것 같아요. 고통스러워서.” 희생자 서수빈의 어머니 박태월씨는 아직 유류품 수백점이 용산경찰서 창고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지난 24일 한겨레와 만나 처음 전해 들었다. 아직 찾지 못한 딸의 신발이 있을 가능성에 오히려 몸서리치며 두려워했다. “보면 미칠 것 같아요. 죽을 것 같아요.”

“딸의 흔적이라서 쓰다 남은 생리대도 못 버리겠는” 그리움과, 딸의 새로운 흔적인 신발을 보는 게 “죽을 만큼 두려운” 공포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박씨는 참사 2년을 맞았다. 10월 내내 몸이 아팠다. “1주기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어요. 책임자가 죗값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힘들게 해요.”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설립이 늦어진 탓에, 수사와 재판은 지난 2년간 ‘진실 규명’의 사실상 전부였다.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검사와 피고인의 공방인 형사 재판에 ‘제3자’인 유가족은 참여하지 못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는 특조위에 지난 2일 1호 진상규명 조사 신청서를 제출하며, “피해자 지원 체계 및 내용의 문제점”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유가협은 지난 2년 “알권리, 모일 권리, 참여할 권리가 모두 침해됐다”고 했다. 왜 숱한 사회적 참사를 겪고도 국가는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연대를 통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법을 깨치지 못했는지, 2024년 10월29일을 맞은 유가족은 아직 길 위에서 묻고 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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