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60세까지 책 3권 쓰는 일에 몰두···저의 일상 달라지지 않길”

정혜진 기자 2024. 10. 1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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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발표 후 첫 공식 행보로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 참석
“카페인·여행도 끊은 삶이지만
글쓰며 보낸 시간 생생히 느껴“
국내외 문화계는 축제 분위기에
CGV 동명 원작 영화 재상영
주간 베스트셀러 1~10위 줄세우기
영국선 제주4·3 아카이브 전시도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서울경제]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60세라고 합니다. 한 달 뒤에 만 54세가 되는 저에게는 아직 6년이 남았습니다. 앞으로 6년 동안 지금 마음속에 있는 책 3권을 쓰는 일에 열중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발표된 한강이 공식 행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달 10일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이후 일주일 만에 처음이다. 다만 한강은 한참을 기다린 취재진과는 거리를 둔 채 수상 소감으로 갈음했다.

한강은 17일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타워에서 진행된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수상자로 참석했다. 이날 그는 검정 블라우스에 위아래 검정색 정장을 택했다. 허리의 벨트도 검정색으로 포인트 컬러조차 생략한 수수한 차림이었다. 시상식은 한강 측의 요청으로 비공개로 진행된 가운데 한강은 아이파크타워 정문을 통해 입장하는 대신 우회로를 택했다. 시상식을 마치고 퇴장하던 때도 별도의 출입문으로 이동해 취재진과는 마주하지 않았다. 시상식장에는 포니정재단 관계자 소수만 참석했고 100여 명에 달하는 취재진은 1층 로비에서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한강의 가느다랗지만 정확한 문장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마음속에 쓰고 싶은 3편의 소설이 있다고 언급한 그는 “(그 책들을 쓰고 나면) 또 다른 쓰고 싶은 책 3편이 생각나서 상상 속의 책들을 생각하다가 제대로 죽지도 못할 것 같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쓰는 과정에서 참혹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어 “제 일상의 삶이 이전과 달라지지 않기를 믿고 바란다”며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며 균형을 잡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일상은 최근 건강을 위해 커피와 카페인이 들어간 차를 일체 끊고 좋아하는 여행도 삭제된 삶이다. 그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면서도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친구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한강 작가가 17일 서울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수상자로 참석해 기념 촬영 도중에 미소를 짓고 있다.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부인 박영자(왼쪽부터) 씨, 한강, 포니정재단 이사장인 정몽규 HDC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1994년 1월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올해 30주년을 맞은 그는 “지난 30년간 성실히 살아내려 애썼던 현실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한 줌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짧게 느껴지는 반면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은 마치 30년의 곱절은 되는 듯 길게, 전류가 흐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며 소설이 자신의 숙명임을 밝혔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금까지의 삶보다는 앞으로 미래의 쓰는 삶을 주로 언급했다. 그는 “지금은 올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보고 있다”면서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을 완성하는 시점을 스스로 예측하면 늘 틀리고는 했다”며 말을 아꼈다. 이어 내년부터는 마음속 3권의 책을 쓰는 데 전력을 다해 독자들과 책으로 만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포니정재단은 고(故) 정세영 HDC그룹 명예회장을 기려 2005년 설립돼 장학 사업을 중심으로 인문학 분야 지원 등을 전개하고 있다. 포니정재단이 공식 행보의 첫 무대가 된 것은 ‘선약’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노벨문학상 발표 전인 지난달 19일 포니정 혁신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했고 작가도 참석 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이날 정몽규 포니정재단 이사장 겸 HDC 회장 명의로 수여된 상패에는 “깊은 주제 의식과 살아 있는 문장으로 삶의 아름다움 역설적으로 드러냈다”며 “세계 본질을 탐구하는 귀하의 문학 여정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17일 서울의 한 CGV에 한강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재개봉한 가운데 시민들이 영화를 예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을 내 일처럼 기뻐하는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그는 “그토록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줬던 지난 며칠이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다”며 “제 개인적 사정에 대해 걱정해주신 분들도 있었다. 세심히 살펴주신 마음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국내외 문화계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축하 행사를 잇달아 열며 축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나섰다. 멀티플렉스 CGV는 한강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채식주의자’와 ‘흉터’를 이날부터 재개봉했다. CGV 측은 “한강의 수상 소식을 접하고 영화 관객들에게도 작가의 동명 소설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재해석됐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영국에서는 한강의 소설 속 배경이 된 제주 4·3 사건의 기록물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한 전시가 막을 올렸다. 이날 런던 브런즈윅 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진실과 화해의 기록, 제주 4·3 아카이브’ 전시 개막식과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제주 4·3 기록의 중요성과 의미를 짚는다.

이날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공개한 10월 3주째(10~16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는 한강의 책이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차지하는 전무후무할 ‘줄 세우기’ 진기록을 보였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가 각각 1~3위였다. 예스24 측은 “한 명의 작가가 10위까지 모두 차지한 것은 첫 사례”라고 전했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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