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 = 썸머퀸

ㅣ Writer. 오드

몇 달 전, ‘사실 레드벨벳의 계절은 겨울이야’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한 적이 있다. 썸머퀸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여름을 대표하는 곡을 여럿 보유한 레드벨벳이라 상대적으로 가려진 겨울 노래들을 발굴하고자 함이었다. 레드벨벳의 겨울을 실컷 이야기해서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여름이 다 지나 쌀쌀해진 이 시점에 레드벨벳의 여름도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익히 유명한 레드벨벳의 여름 역시 덜 알려진 레드벨벳의 겨울만큼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레드벨벳의 여름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썸머송의 성격부터 언급해야겠다. 기존 썸머송은 계절의 유행을 타고 잠깐 빠르게 소비됐다 사라지는 음악으로 치부됐다. 노래가 좋고 말고의 여부를 떠나 노골적으로 시즌 특수만 노린 곡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름마다 컴백하여 꾸준하게 호평받는 그룹도 봤지만, 반대로 무리하게 썸머송을 발매하다가 그룹 색을 잃고 실패한 그룹을 여럿 목도해왔다.

레드벨벳은 이러한 한계를 탈피해 썸머송의 범주를 꾸준히 넓혀온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청량한 멜로디에 시원시원한 사운드를 적절히 배치해 더위를 날리는 데 일조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름이라는 계절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치환하는 와중에 레드벨벳의 색인 묘한 으스스함까지 더해냈다. 레드벨벳이 컴백하는 해에는 필자가 사계절 중 제일 싫어하는 여름을 기다리게 할 정도니 레드벨벳이 그려 내는 여름은 다르다고 보장한다.

그래서 레드벨벳이 썸머퀸인 이유를 썸머송 히트곡 개수로만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다. 레드벨벳만큼 여름에 진심인 그룹은 없다. 레드벨벳이 썸머송을 처음 발매할 때만 해도 썸머송은 이미 일정한 이미지에 국한되어갔다. 혜성처럼 등장한 레드벨벳의 썸머송은 ‘시원함’, ‘발랄함’ 정도로 다소 납작하게 표현되던 썸머송의 층위를 그들의 방식으로 풍부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썸머송의 중점이자 가장 큰 매력인 시원함을 필두로 하되 사운드적으로나 비주얼적으로 레드벨벳의 컨셉츄얼함을 잃지 않는 것이 레드벨벳표 썸머송이라 할 수 있겠다. 레드벨벳의 등장으로 지루하던 썸머송 콘셉트가 신선해진 것이다. 썸머송의 수치적 성공을 놓고 볼 때 레드벨벳보다 좋은 성적을 낸 그룹은 있겠지만, 썸머송이라는 장르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레드벨벳이 여름에 진심이라는 점은 앨범 발매 방식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레드벨벳은 여름을 주제로 한 앨범을 미니 앨범으로 넘버링하지 않고 썸머 미니 앨범으로 따로 분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 발매한 타이틀 〈Surfin’ Boy〉가 수록된 앨범 《Velvet Summer》는 썸머 미니 앨범에 해당하고, 여름에 컴백했으나 썸머송과는 무관한 앨범 《Queendom》은 6번째 미니 앨범으로 분류했다. 참으로 정교한 분리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남들과는 다르게 여름 전용 디스코그래피를 차곡차곡 쌓고 있는 레드벨벳. 지금부터 하나씩 레드벨벳의 썸머 미니 앨범에 대해서 살펴보자.


ⓒ melon

‘레드벨벳 = 썸머퀸’이라는 공식의 출발점은 단연코 〈빨간 맛〉이 수록된 썸머 미니 앨범 《The Red Summer》다. 《The Red Summer》는 제목부터 뜨거운 여름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포부가 느껴진다. 타이틀 〈빨간 맛〉은 여름이라는 계절을 맛이라는 감각적 심상으로 변형해 아직도 여름하면 자동으로 이열치열 〈빨간 맛〉을 떠오르게 한다. 여름을 귀로 맛보게 만든 것이다. 뜨거운 태양과 푸른 바다처럼 익숙한 이미지 대신, 여름을 맞아 잘 익어 달콤한 과일의 맛과 톡톡 튀는 과즙을 청각적으로 느끼도록 한 게 제대로 먹혔다. 〈빨간 맛〉은 레드벨벳의 이름에 붙은 ‘레드’라는 색을 계절의 언어로 활용한 영리한 곡이었다. 타이틀뿐 아니라 밝고 희망찬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감성적인 멜로디 한 스푼 담은 〈You Better Know〉, 여름에 최적인 트로피컬 하우스 〈Zoo〉 등 수록곡들도 큰 사랑을 받으며 레드벨벳은 단번에 썸머퀸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 melon

이듬해 〈빨간 맛〉의 성공 이후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던 두 번째 썸머 미니 앨범 《Summer Magic》의 타이틀 〈Power Up〉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후렴구와 직관적인 메시지로 여름의 흥을 극대화했다. 레드벨벳에게 처음으로 주간 1위라는 좋은 성과를 가져다줄 정도였다. 다만 썸머퀸의 입지를 굳힌 앨범이라는 성과와는 별개로 아쉬움이 남는다. 〈빨간 맛〉이 여름을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면, 〈Power Up〉은 익히 검증된 썸머송의 공식을 재활용하는 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새로움은 잠시 내려놓고, 안전함에 기댄 티가 역력했다. 한마디로 아는 맛이었다. 실제로 차트에서 〈빨간 맛〉은 2년이나 차트인 했지만, 〈Power Up〉은 그해 여름이 끝나고 빠르게 차트 밖으로 나갔다. 레드벨벳만의 낯선 썸머송을 기대했던 리스너에게 과하게 안전한 선택으로 느껴졌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앨범 자체는 여름에 잘 어울리는 다양한 곡으로 구성되어 있어 레드벨벳의 장기가 살아나니 꼭 들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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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음파음파〉는 레드벨벳 팬이라면 정말 안타까워할 애증의 곡이다. 바로 두 달 전 발매된 〈짐살라빔〉 속 주술을 외는 듯한 훅에 대한 불호가 우세한 가운데, 희한하게 발라드가 압도적으로 리스너의 사랑을 받은 2019년 여름에 등장해 주목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음파음파〉는 〈Power Up〉에 대한 피드백을 반영해 나온 곡이라 더 안타깝다. 〈Power Up〉의 중독성은 가져온 채 〈빨간 맛〉의 특이한 사운드와 비슷한 구성으로 향수를 되살렸다. 가사와 안무에서는 자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상대를 놀리는 듯 음산한 느낌 역시 놓지 않았다. 한편, 〈음파음파〉가 수록된 앨범 《‘The Reve Festival’ Day 2》는 여름 앨범보다는 연작 앨범의 성격을 띠고 있어 따로 수록곡을 언급하지는 않고 넘어가겠다.

ⓒ melon

마지막으로 최근에 발매한 썸머 미니 앨범은 올해 8월 3일에 발매됐다. 레드벨벳이 그들의 주무기인 썸머송을 들고 약 2년 만에 완전체로 돌아온 것이다. 앨범명은 《Velvet Summer》로 여름 앨범으로는 거의 처음으로 벨벳을 중심으로 앨범을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레드벨벳의 팬이라면 구미가 왕창 당길 수밖에 없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레드벨벳이 레드와 벨벳의 기준을 구분하지 않고 레드와 벨벳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음악을 가져왔는데, 레드와 벨벳의 상반된 콘셉트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아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었다. 이번 앨범 역시 여름 앨범이다 보니 완벽한 벨벳 앨범은 아니라 진한 농도의 벨벳 음악을 기다려 온 리스너에게는 아쉬웠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목마름은 해소하기 충분했다. 하우스를 기반으로 보사노바와 레게 리듬을 차용한 〈Surfin’ Boy〉, 새로운 음악적 시도가 돋보인 〈Hot Girls Cold Vibe〉, 헨리 맨시니의 〈Lujon〉을 샘플링해 자동으로 스산한 여름밤 물가가 떠오르는 〈Orchestra〉, 한여름 밤의 캠프파이어 속 한 장면 〈Hula Hoop〉, 제목 그대로 하와이에 와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Hawaii〉까지. 이번 앨범은 특히나 여름과 연관된 장소가 눈앞에 그려지는 효과가 톡톡했다. 특히 레드벨벳이라는 그룹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멤버 조이가 〈Surfin’ Boy〉, 〈Hawaii〉 단독 작사를 맡으며 소중한 사람과의 여름을 추억하고, 언제든 함께 하는 여름을 그릴 수 있다는 상징성을 부여했다. 어느덧 데뷔 12주년을 맞이한 레드벨벳 팬에게 최고로 감동적인 작사였다. 이 덕분에 8월에 데뷔해 썸머퀸으로 군림한 레드벨벳과 팬에게 여름은 완전하고도 아름다운 계절로 기억될 테다.

ⓒ melon

제철을 맞아 당도가 제대로 오른 달콤한 맛으로 시작해 장마철 무덥고 습한 여름에 떠나는 여행을 지나 여름을 완전하고 아름다운 계절로 둔갑시킨 것까지. 레드벨벳의 여름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남아 있는 계절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드벨벳은 썸머퀸의 칭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케이팝 걸그룹이다.


* 이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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