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악화에 제주공항서 발묶였던 4만명… “새벽 2시부터 줄 서서 표 샀어요”

김포공항=채민석 기자 2023. 1. 2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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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내선 항공편 466편 전편 결항
제주도에 ‘힌남노’의 세기와 비슷한 초속 25m 강풍 불기도
공항 측 “임시편 증편 통해 승객 수송에 최선 다할 것”

“일단 버스부터 잡아!”

설 연휴 다음날인 25일 오전 10시. 평소라면 한산했을 평일 오전이지만 김포공항은 제주에서 도착한 승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출입문으로 승객들이 쉴새 없이 들어오는 가운데 항공기 도착시간이 나오는 전광판에는 ‘지연’을 안내하는 문구가 보였다.

제주도에서 산 기념품을 손에 든 승객들의 얼굴에는 연휴를 즐기고 온 행복감보다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은 출입문을 나오자마자 버스 티켓과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정신없이 공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25일 오전 김포공항 도착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승객들 옆에 항공기 도착 '지연'을 알리는 문구가 표시돼 있다./채민석 기자

지난 24일 오전 6시부터 제주 전 지역에 대설과 한파주의보, 강풍경보가 발효돼 당일 출발 예정이었던 국내선 466편이 전편 결항됐다. 당시 제주공항의 순간 최대풍속은 초속 25m 이상이었다. 초속 25m는 시속으로 환산하면 90㎞ 수준으로, 지난해 9월 한반도에 상륙했던 태풍 ‘힌남노’의 세기와 비슷하다.

연휴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려던 관광객 4만여명은 기상 악화로 꼼짝없이 제주도에 하루 동안 갇혀있었다. 일부 승객들은 배편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이날 여객선도 풍랑특보로 인해 전편 결항됐다. 하루가 지나 김포공항에 도착한 승객들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공항을 떠나는 차편부터 알아봐야 했다.

당초 24일 오후 7시에 비행기를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결항으로 25일 오전 9시 비행기로 서울에 올라왔다는 정모(58)씨는 “24일 오후 7시부터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줄을 서 겨우 표를 구했다”며 “원래 대구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을 예매했었지만, 출근 문제로 급하게 김포공항행 비행기표를 구해 올라왔다. 이제 서울역으로 가 KTX를 타고 대구로 내려가야 한다. 가족 중 몇 명은 아직 제주에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김모(29)씨도 “24일 저녁 비행기를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결항이 됐다. 항공사 측에서는 24일 오전 탑승 예정이었던 관광객들을 우선으로 배정해주고 저녁 탑승 예정 관광객들은 후순위로 대체편을 배정해준다고 했다”며 “일정이 급해 취소표를 구하려고 25일 새벽 2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해 오전 7시쯤에 대기 5번으로 항공권을 구할 수 있었다. 결국 예상치 못하게 휴가를 하루 더 쓰게 됐다”고 말했다.

반대로 붐비는 연휴를 피해 뒤늦은 여행을 가려던 승객들도 마찬가지로 피해를 봤다. 지난 24일 김포공항에서 출발 예정이었던 직장인 박모(30)씨는 “여행사 위탁판매로 구매한 탓에 위탁판매사 직원들이 연휴라고 연락을 받지 않아 문의도 하지 못했다”며 “하루가 지나서야 뒤늦게 연락이 와 티켓을 환불받았다. 하지만 연휴 때 당직을 자처하며 휴가를 뒤늦게 가겠다는 계획은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제주공항에는 출발을 하지 못한 관광객들이 다수 남아있다. 25일 제주지방항공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부터 기상 상황이 완화돼 여객기들이 순차적으로 승객을 수송하고 있다. 오후 1시 기준 증편된 제주공항 발 국내선 여객기 40편(9000여석)을 비롯해 534편의 여객기가 동원됐지만 아직 발이 묶인 승객 중 절반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4일과 25일에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 등장한 제주발 항공권 구매글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항공권을 판매하거나 구매하겠다는 글들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지난 24일과 25일 당근마켓 등에는 웃돈을 줄테니 항공권을 판매해달라는 글이나, 정상가보다 10~20% 높은 가격에 판매하겠다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항공권은 개인 간 거래가 불가하며, 항공사 약관에도 ‘항공권은 명의자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고 명시돼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탑승 시 항공권과 인적 사항을 철저히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타인에게 양도를 할 수 없다”며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구매한 항공권으로는 실제 탑승이 불가능할 수 있으니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갔다가 지난 24일 귀가 예정이었지만, 25일 오전 10시가 돼서야 김포공항에 도착했다는 직장인 안석진(32)씨는 제주공항을 ‘전쟁터’라고 묘사했다. 안씨는 “결항 안내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관광객들이 항공편을 알아보겠다고 공항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부랴부랴 따라갔지만, 이미 공항은 관광객들로 꽉 차 있었다”며 “줄이 너무 길어 안내가 안 되다 보니 현장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공항공사 측은 승객 수송을 위해 이날 김포공항 야간 이착륙 허가 시간을 오는 26일 오전 1시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제주공항 관계자는 “25일 중 임시 항공편을 통해 70~80%의 결항 관련 승객을 수송할 예정이다”며 “통상 항공편 재개 당일에 승객을 모두 수송해왔다. 임시편 증편을 동원해 승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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