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의 난폭함 : 사라진 기억과 빛의 흔적, 홍현조 작가

<안현정의 아트픽> 안현정 미술평론가(예술철학박사, 성균관대 박물관 학예실장)가 추천하는 작가입니다.

나는 예전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때에는 내 인생의 한 부분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몇 개 남아있는 작은 기억 중에는 천장에서부터 늘어져있는 필름들의 모습이 있다. 아빠는 집에서 직접 현상한 필름들을 줄줄이 널어놓고 말려두곤 했다. 반투명한 필름 위에 네거티브로 현상된 긴 필름들.

클라우드에 업데이트하는 것을 잊어버려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사진들이 많다. 핸드폰을 바꿀 때에는 대부분 기능이 정지되어 사용할 수 없게 돼버린 이후였으므로 데이터를 찾을 도리가 없었다. 물론 지금도 애플에 매달 돈을 지불하는 것을 멈추면 현재 가지고 있는 사진도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 따로 인쇄해서 보관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날아가 버릴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길을 다니다 보면 새삼스럽게 매일 보는 장소가 다시 보일 때가 있다. 원래 여기에 이런 게 있었나? 지금 공사하고 있는 이 자리 원래는 뭐였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부수고, 뒤엎고, 다시 만들고, 영원히 공사는 지속된다. 바뀐 건지 아니면 원래 이 모습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곳들을 지나친다. 아마 앞으로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가끔 구글 어스로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본다.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나의 시각이 될 수 없는 위성의 사진으로 건물을 찾으며 그때를 추억한다. 가끔은 로드뷰의 화살표를 따라가며 과거를 여행한다.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연도가 바뀌고, 미세하게 달라진 곳도 있고, 없던 게 생기기도 하고 있던 게 사라지기도 한다. 내가 걷지 못한 날들을 대신 걷는다.

영원히 남을 줄 알았던 사진에 기억마저 맡겨버려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기억에 마음을 다 맡겨버려서 이 낯선 풍경의 빛이 더 격렬하게 내 눈을 때린다. 언제든 잃어버릴 수 있는 이 미세하고 어두운 점들을 붙잡으려 애쓴다.

필름의 가장 어두운 부분은 가장 밝은 곳이다. 빛이 강할수록 더 깊은 자국을 남긴다. 화학 용액으로 그 보이지 않는 흉터를 꺼내 뒤집어야만 비로소 모양이 바로 보인다. 하지만 박제된 빛의 흔적은 그 자체로 원본이기도 하다. 흑과 백, 빛과 어둠의 교차, 미완결된 상과 그 불일치. 기억나지 않는 과거, 낯선 현재, 언제든 손상될 수 있는 미래의 충돌, 왜곡, 실체 없는 분자를 모독하는 음화(陰畫)의 난폭함.


N-2006-9-23

캔버스에 유화_91x116.8cm_2024

N-2007-8-11

캔버스에 유화_130.3x97cm_2024

N-2023-5-15

캔버스에 유화_130.3x97cm_2024

N-2024-10-2

캔버스에 유화_91x116.8cm

N-무한정 특별공급

캔버스에 유화_130.3x194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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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유화_45.5x45.5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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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유화_45.5x4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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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유화_45.5x45.5cm_2024

1100 cloud

캔버스에 점토, 아크릴, 핸드폰 부품_가변크기_2025

1100 cloud

상세

홍현조 작가


2025년 2월 개인전 BLACK&WHITE NEGATIVE VIOLENCE (GALLERY 9)
2024년 6월 단체전 새로운 출발전 (GALLERY 9)
2024년 2월 개인전 바다를 찾아서 (웃다리문화촌)
2023년 「평택형 청년예술인 지원사업」 선정
2023년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청년타임스 정수연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