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전륜구동 승용차 현대 포니 엑셀과 디자인

딱! 40년 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앞바퀴 굴림 방식의 승용차 ‘포니 엑셀(Pony Excel)’이 발표된 것이 1985년 2월이었으니, 2024년 2월인 지금을 기준으로 본다면 정확히 40년 전입니다. 그때 저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장차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던 때였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앞 바퀴 굴림 방식의 승용차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꼈던 기억도 함께 떠오릅니다.

 


 

전에 스텔라에 관한 글에서도 썼었지만,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신형 차가 나오면 광화문에 있던 현대자동차 전시장으로 달려가곤 했는데요, 고교 졸업을 며칠 앞둔 고3으로 거의 자유로운 신분(?) 이었던 데다가, 최초의 앞바퀴 굴림 승용차가 나왔다는 소식에 광화문으로 달려갔었습니다. 그날 제가 입고 갔던 점퍼의 색이 푸른색이었다는 것까지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시기에는 우리나라의 모든 승용차, 가장 작은 1,000cc급의 브리사(Brisa)부터, 최고급 승용차였던 6기통 엔진의 푸조(Peugeot) 604와 그라나다(Granada)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후륜구동 방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광화문의 외국잡지 골목에서 가끔 사서 보던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잡지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앞바퀴 굴림 방식의 승용차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봤던 때였기에, 앞바퀴로 차가 굴러간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가 나온 게 1976년이었고, 페이스 리프트 모델 포니2가 1982년에 나오고, 그 뒤로 ‘포니 엑셀’ 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신형 차는 포니와 포니2를 디자인한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 죠르제토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 1938~)의 디자인으로 나왔습니다.

 

포니 엑셀의 내/외장 디자인은 쥬지아로의 디자인 성향, 즉 직선인 듯한 곡선을 쓰고 모서리를 살리면서 무난하게 둥근 처리를 해서 양산에 무리가 없는, 유행을 한 발짝 반 정도 앞서가는 감각으로 사람들이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대중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빗물 받이가 차체 안쪽으로 들어가 외부에는 매끈한 차체 면을 가지면서 도어 섀시(sash)가 넓은 형태로 만들어진 풀 도어(full door)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그 당시에 첨단 감각의 디자인이 현실의 양산형 차량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포니 엑셀이 특이했던 것은 후드 경첩이 보통의 차들처럼 카울(cowl) 쪽에 있어서 마치 악어가 입을 벌리듯 열리지 않고, 그와는 반대로 후드를 앞 유리창 쪽에서 들어올려 여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반대 방향으로 열게 만들었을까 궁금했는데요, 다시 살펴보니 헤드램프와 후드 사이의 간격(overstroke)을 없애서 앞쪽을 더 날렵하게 만들려고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만, 후속 모델에서는 후드 경첩을 뒤에 달아서 헤드램프와 후드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는 설계로 바뀌었습니다.

 


 

포니 엑셀의 앞바퀴 굴림 파워트레인은 독자개발한 것은 아니었고, 그 시기에 현대자동차의 기술제휴 업체였던 미쯔비시의 소형 승용차 미라지(Mirage)의 앞바퀴 굴림 플랫폼을 들여온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은 어떤 파워 트레인이든 간에 독자적으로 개발해 낼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1967년에 설립돼서 20년도 채 지나지 않았던 그 시기에는 기술의 자립도가 충분치는 않았습니다. 이건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그 시기에 우리나라의 다른 자동차업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지만 기획에서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으로 이루어졌기에 1986년부터 ‘엑셀’ 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수출되기 시작했는데요, 지금은 현대자동차 브랜드는 글로벌 판매 순위로 3~4위 권에 드는 막강한 브랜드가 됐지만, 1986년에 미국에서 처음 판매를 시작했을 때 현대 브랜드를 아는 사람은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밖에는 없을 때였습니다.

 


 

현대의 영문 표기 ‘HYUNDAI’는 불어(佛語) 식 표기이지만, 미국 사람들은 일요일(Sunday)처럼 발음해서 ‘헌데이’ 라고 읽었다고 합니다. 브랜드 인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엑셀의 미국 판매 가격은 염가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기본형 모델이 4,995 달러에서부터 여서 그야말로 ‘중고차 값으로 살 수 있는 새 차’ 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다른 소형차 새 차 한 대 값으로 엑셀 새 차 두 대를 살 수 있다는 광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가격 덕분에 수출 첫 해에 무려 16만 8천대를 판매했다고 합니다. 물론 염가였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던 자동차 디자이너 ‘쥬지아로의 디자인’ 이라는 것도 효과가 컸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첫 미국 수출차로서 미국에서 엑셀의 품질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염가 차량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판매가 점점 줄기 시작했고, 1992년에 일어난 LA 폭동의 원인이 된 사건 영상 속에 엑셀이 나오는 등의 일이 겹치면서 판매가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기아자동차에 근무하던 저는 1992년도에 회사 일로 LA에 출장을 갔었는데요, 폐허로 변한 코리아타운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후속 모델로 뉴 엑셀이 나오지만 미국에서 평판이 좋아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미국에서 현대와 기아 차의 위상은 단지 싼 값에 타는 차는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품목이 반도체와 자동차인데요, 작년 2023년에는 자동차를 645억달러나 수출해서 반도체를 제치고 우리나라 제1의 수출품이 됐다고 합니다.

 


 

20세기 후반부터 고유모델을 개발해서 글로벌 상위권의 자동차산업을 일군 곳은 우리나라 이외에는 없습니다. 1980년대에 말레이시아, 1990년대에 터키(지금의 튀르키에)도 고유모델 자동차 개발을 시도했지만, 지속적인 발전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중국과 인도가 엄청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보다 큰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지만,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브랜드나 디자인의 모델은 갖고 있지 못합니다.

 


 

실제로 자동차산업은 기계공업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산업이 틀림없지만, 단지 기술이 좋다고 해서 좋은 차가 만들어지는 기계 제조업은 아닙니다. 좋은 차가 만들어지려면 그 나라의 여러 산업과 문화,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객관적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라는 미학의 관점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디자인을 해 낼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탈리아의 디자인이 높은 경쟁력을 가지는 건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최근에 나오는 일본 차들이 보여주는 어딘가 야릇한 감성의 디자인은 미학에서 공감의 중요성에 대한 방증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최초의 전륜구동 승용차의 기술 자체는 일본의 것을 참고로 했지만, 적어도 디자인에서는 보편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잘 아는 나라로부터 디자인 자체만이 아니라 디자인의 방법론을 익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한 페이지가 틀림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40년 전에 등장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앞바퀴 굴림 승용차 포니 엑셀은 우리나라가 오늘의 글로벌 자동차산업 국가로 도약하는 중요한 순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할 것입니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