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망신당하고도..." 르망 도전한다는 중국차에 조롱 쏟아지는 이유

천관산 등반 실패 대참사 이후 한 달 만의 선언
2030년 르망 24시 본선 진출 목표, ACO와 협약
토요타, 제네시스 향한 야심에 쏟아지는 냉소

중국 자동차 브랜드 체리자동차(Chery)가 모터스포츠의 정점이라 불리는 '르망 24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 장엄한 출사표를 바라보는 전 세계 팬들의 시선은 경외심보다는 실소에 가깝다. 불과 한 달 전, 전 세계적인 망신을 당했던 '천문산 대참사'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1월 12일, 체리자동차는 2018년 랜드로버가 성공했던 장가계 천문산의 999개 계단(천국의 계단) 등정에 도전했다가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사진 출처 = 페이스북 'EXEED Global'

당시 체리의 신형 하이브리드 SUV '풀윈 X3L'은 등반 도중 안전 로프가 바퀴에 감기며 동력이 차단되었고, 제어력을 잃고 뒤로 미끄러져 유적지 난간을 파손시키는 사고를 냈다. 랜드로버의 성공 사례를 어설프게 흉내 내려다 브랜드 이미지는커녕 기술력의 한계만 노출하며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그런 체리자동차가 사고의 여진이 가시기도 전인 12월 15일, 르망 24시 주최 측인 ACO와 손을 잡고 2030년 본선 진출을 선언하자 업계에서는 "망신을 잊기 위한 무리한 국면 전환용 카드"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체리의 르망 출사표: '로드 오브 르망' 5개년 로드맵
사진 출처 = '체리'

체리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엑시드(Exeed)'가 발표한 '로드 오브 르망(Road of Le Mans)' 계획은 꽤 구체적인 3단계 전략을 담고 있다. 우선 1단계로 중국 내 로컬 내구 레이스 시리즈인 '엑시드 유니파이드 레이스'를 창설해 기술력을 검증하고, 본사가 위치한 안후이성 우후시에 ACO 인증 르망급 서킷을 건설해 양산차 기술의 '이동식 실험실'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전문 드라이버와 기술진을 발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팀 운영의 기초 체력을 다지겠다는 계획이다.

사진 출처 = '24 Heures du Mans'

이어지는 2단계에서는 르망 24시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아시아 르망 시리즈(ALMS)'에 참전한다. 현재 가장 유력한 출전 클래스는 LMGT3로 거론된다. 이는 연간 2,500대 이상의 양산차 생산 조건만 충족하면 진입 장벽이 낮고, 자사의 양산차 디자인과 기술력을 직접적으로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리는 이 단계에서 실전 데이터와 인증 점수를 확보한 뒤, 마지막 3단계인 2030년에 이르러 공식 팩토리 팀인 '엑시드 르망 팀'을 창단해 본선 무대에 오르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사진 출처 = 유튜브 'fidevlog'

단순히 차 한 대를 내보내는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서킷 건설부터 드라이버 육성까지 아우르는 거대 프로젝트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레이싱은 자본만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계단조차 제대로 오르지 못해 안전 로프에 의지하다 사고를 낸 브랜드가 24시간 동안 극한의 속도로 달리는 내구 레이스의 가혹한 환경을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30년 르망, 한중일 동북아 삼파전의 성지 될까?
사진 출처 = X 'TGR Fans'
사진 출처 = '제네시스'

체리의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30년 르망 24시는 한중일 제조사들이 자존심을 걸고 맞붙는 역사적인 대회가 될 전망이다. 최근 페라리에게 밀리긴 했지만, 여전히 내구레이스의 다크호스로 군림 중인 일본의 '토요타 가주 레이싱'과, 2026년부터 하이퍼카 클래스에 본격 합류하는 한국의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이 이미 전열을 가다듬고 있기 때문이다. 토요타는 전용 레이스카인 GR010를 더욱 개선, 제네시스는 오레카 섀시 기반의 LMDh 머신 GMR-001을 앞세워 이미 최정상급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다.

사진 출처 = '토요타'

특히 LMGT3 클래스에서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토요타는 2026년부터 차세대 슈퍼카 GR GT를 기반으로 한 GR GT3 레이싱카를 배치할 예정이며, 2030년에 이르러서는 기술적 완성도가 극에 달할 것이다. 제네시스 역시 GT 콘셉트를 통해 보여준 비전에 따라서 하이퍼카 프로그램과 함께 고성능 마그마 브랜드를 앞세운 GT3 진출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에 체리의 엑시드가 합류하게 되면, 동북아 3개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양산차 기반의 기술력을 두고 격돌하는 'GT3 삼국지'가 성사된다. 이는 모터스포츠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볼거리지만, 체리 입장에서는 기술적 격차를 낱낱이 공개해야 하는 독배가 될 수도 있다.

사진 출처 = '제네시스'

체리는 이번 도전을 통해 자사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기술력을 입증하고, 저가형 브랜드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수십 년간 르망에서 내공을 쌓아온 토요타와, 치밀한 준비 끝에 최상위 종목인 하이퍼카부터 공략하는 현대차그룹의 제네시스 사이에서 체리가 유의미한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2030년 본선에서 경쟁 브랜드에 크게 뒤처지거나 중도 탈락할 경우, 체리는 '계단 사고'에 이어 '서킷 망신'이라는 더 큰 치명상을 입게 될 위험이 크다.

조롱과 우려 섞인 글로벌 여론
사진 출처 = 유튜브 'Fuel2Dream'

체리의 발표 직후, 레딧(Reddit)을 비롯한 글로벌 커뮤니티에서는 비웃음 섞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계단 오르다 난간 들이받은 게 엊그제인데, 이제는 르망 트랙 난간을 들이받으러 가냐?", "랜드로버가 7년 전에 성공한 것도 못 하면서 모터스포츠의 정점을 논하는 게 코미디"라는 조롱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계단 등반 당시 안전장치가 바퀴에 감기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한 것을 두고, 르망의 악명 높은 뮬산 직선 구간에서 차량이 폭발하는 것 아니냐는 안전성 우려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중국 내부 여론조차 싸늘하다. 웨이보(Weibo) 등 현지 소셜 미디어에서는 "천문산 사고로 이미 국격을 훼손했는데, 르망에 나가서 또 한 번 중국 자동차의 이미지를 깎아 먹지 않을까 걱정된다"라는 자국민들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신성한 관광지를 훼손하고도 사과 대신 르망 도전이라는 거창한 계획으로 여론을 호도하려 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실력은 랜드로버 발끝도 못 미치는데 허풍만은 페라리급"이라는 자국 내 비판은 체리가 직면한 가장 아픈 지점이다.

사진 출처 = '24 Heures du Mans'

전문가들은 체리가 오레카(Oreca)나 달라라(Dallara) 같은 전문 섀시 제조사의 힘을 빌려 '굴러가는 차'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르망이 요구하는 신뢰성과 레이스 운영 능력은 단기간에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체리자동차는 2030년 본선 무대에 서기 전까지, 아시아 르망 시리즈 등 하위 리그에서 실제 성적으로 자신들의 기술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브랜드"라는 오명을 씻어낼지, 아니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더 큰 망신을 당할지는 앞으로의 5년에 달려 있다.

사진 출처 = 페이스북 'EV Thailand'

체리자동차의 르망 도전은 무모한 허풍일까, 아니면 브랜드 도약을 위한 대담한 결단일까? 분명한 것은 르망 24시는 단순한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하고 정직한 무대라는 점이다. 999개의 계단 앞에서 멈춰 섰던 기술력이 24시간 동안 수천 킬로미터를 주행해야 하는 서킷 위에서 어떤 결과를 낼지는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다.

2030년, 토요타와 제네시스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체리가 과연 '동북아 삼파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트랙 위의 불청객으로 남을지 전 세계 자동차 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도전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라는 비판을 실력으로 잠재우지 못한다면, 체리의 르망 도전기는 자동차 역사상 가장 비싼 '코미디'로 기록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