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Report] 서울디자인고등학교 박근서

항상 엔진을 켜둘께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 둘게’라는 가사가 있다. 빠른 페이스로 열심히 달리다가도 발걸음을 우뚝 멈춰 버리면 페이스를 잃어버리기 마련이고, 다음 걸음을 내딛기 힘들 수밖에 없다. 엔진이 완전히 꺼진 차는 시동을 걸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반대로 꾸준히 열을 품어 온 엔진은 출발 신호와 동시에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시동을 꺼뜨리지 않은 시간은 결국엔 결정적인 차이를 선물한다. 그리고 박근서가 긴 시간 달군 엔진은 이제야 그 진가를 보인다. 좋은 엔진을 달고 레이스에 참여한 만큼, 그 도착지는 화려한 시상대이길 기원해 본다.

Photographer Seul Lee Editor Hahyun Son Location Seoul Design High School

박근서

출생 2008년 1월 14일
신체조건 188cm 95kg
출신교 경기 백마초 - 서울 홍은중 – 충암고 - 서울디자인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반가워요! <더그아웃 매거진>과는 첫 만남인데, 본지를 접해 본 적이 있나요? (6월 29일 인터뷰)
친구들이 나온 인터뷰는 자주 봤어요. 인스타그램에서 (하)현승이도 봤고, 경남고 이호민, 박보승이 같이 한 인터뷰도 봤어요. 제일 최근에는 삼성 라이온즈 배찬승 선수도 봤고요.

서울디자인고 선수가 출연한 건 2020년 이용준(NC 다이노스) 이후 처음인데, 처음 섭외 소식을 듣고 어땠어요?
설렘도 있었고, 빨리 촬영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 코치님을 통해서 연락을 받았거든요. “<더그아웃 매거진>에서 인터뷰 잡혔다. 준비하고 있어라”라고 해 주셔서 알게 됐어요.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에게도 촬영 소식을 알렸어요?
학교 친구들에게 말했는데, 같이 기뻐해 주고 축하해 줬어요. 동시에 자기 얘기도 많이 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가족들도 좋은 자리니까, 잘하고 오라고 응원해 줬습니다. (촬영할 때 친구들이 놀리던데요?) 투수 중에 오동훈, 강지완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둘이 가장 열심히 놀려요. 아까 멀리서 ‘대두’라고 놀리던 친구들은 야수 친구들인데, 만약 걔네까지 있었다면 더 심했을 거예요. (질색)

#대기만성

2024년 충암고에 입학했다가 일찍이 MCL(Medial Collateral Ligament, 팔꿈치 내측측부인대) 수술을 받았어요. 이후 디자인고로 전학을 결정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코치님의 영향도 컸고, 홍은중에서 함께 야구하던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익숙한 얼굴들 옆에서 재밌게 야구할 수 있겠다 싶어서 왔죠. 김지훈, 이은섭, 한지호 같은 친구들도 있고 한 학년 위 선배 박이안 형도 있었어요. 다들 좋은 학교라고, 오면 야구 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줘서 도움이 됐습니다.

전학을 오니 중학교 동창들이 잘 챙겨 주던가요?
그럼요. 전학 온 이후로 후회한 적도 없고, 여기 와서 즐거운 일만 있었어요. 특히 지훈이와는 거의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오래 봐서 그런지 여기서도 지훈이 덕에 잘 적응할 수 있었어요. 밥도 같이 먹고, 말도 걸어 줬고요. 무엇보다 좋은 친구들을 소개해 주면서 빨리 적응하도록 도와줬죠.

2025년에는 연습 경기에만 출전하며 구속을 15km/h 가량 끌어올렸어요. 이 시기엔 어떻게 운동했는지 궁금해요.
솔직히 작년부터 시합을 뛰고 싶은 마음이 컸고, 욕심도 많았어요. 근데 코치님이랑 감독님 모두 지금은 경기에 나가는 게 아니라, 몸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리셨죠. 그래서 동계 훈련부터 이번 시즌 시작할 때까지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먹는 것도 신경 쓰면서 몸집도 키웠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속도 늘고 준비가 됐습니다. (정식 경기를 지켜볼 때의 기분은 어땠어요?) 빨리 마운드에 서고 싶었죠. 얼른 공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는데. 감독님과 코치님이 충분히 시간을 갖자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셔서 기다릴 수 있었어요.

올해 주말 리그에서 정식 경기에 오랜만에 복귀한 소감은 어땠나요?
수술 이후에 치르는 첫 정식 게임이었는데, 아픈 곳도 없고 그냥 ‘수술이 잘 끝났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긴장도 딱히 안 했고요. 1년 이상을 시합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2026 신세계 이마트배 고교야구대회(이하 이마트배)를 마친 후 한 스카우트는 ‘이름값 상관없이 대회에서 가장 좋았던 선수는 디자인고 박근서’라는 평을 했어요.
기사에서 읽어 본 적 있어요. 이마트배에서 긴 이닝을 던지면서 삼진도 많이 잡았고, 전체적인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들을 좋게 봐 주셨다고 생각해요.

이마트배 직후 “아직은 KBO리그에 먼저 가고 싶지만, 메이저리그도 0%는 아닌 것 같다”라는 말도 했어요.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메이저리그 진출도 약간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고, 한국에 남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엄)준상이나, 현승이, (김)지우 같은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빠르게 결정하고 자기 길을 선택한 거니까요. 그래도 아직은 한국에 남고 싶은 마음이 8 대 2 정도로 더 커요.

슬라이더를 커터 느낌으로 던지는 등 변화구를 연구 중이라고 했는데, 완성도나 진행 상황은 어떤가요?
연습 게임에서 자주 던져 보면서 연마하는 중이에요. 문동욱 투수 코치님이 노하우나 경험을 잘 전수해 주시는 덕에 수월하게 잘 연습하고 있습니다. 실전에서도 새 구종을 한 번씩 써 보고 있어요.

#MVP

한화 이글스배 고교‧대학 올스타전 이후로 일상에서도 달라진 게 있나요?
주변 친구들이나 선생님을 포함해서, 조금씩 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생겼어요. SNS에도 언급되다 보니 알아보는 친구들이 늘어났고요. 사인해 달라고 하신 선생님도 계시고, 응원의 말을 건네시는 분도 많아요. 감사한 마음이죠.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늘었어요?) 어느 정도 오르긴 했는데, 150명 정도? 조금 올랐어요.

올스타로 발탁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어땠나요?
기대하고 있진 않았는데, 굉장히 들떴죠. 그동안 저는 거의 서울에서만 야구하다 보니, 지방 학교 친구들은 자주 만나 보지 못했거든요. 새로운 친구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어요.

선발 투수 하현승을 제외하고는 혼자 2이닝을 소화했어요. 멀티 이닝은 예정된 거였나요?
아뇨. 원래 현승이를 제외하고는 1이닝씩만 막는 거였는데, 예상보다 첫 이닝에서 잘 막아서, 올스타 감독으로 오셨던 덕수고 정윤진 감독님이 한 이닝 더 해 보자고 제안해 주셨어요. (남들보다 한 이닝 더 던진다는 부담감은 없었어요?) 부담은 없었는데, 감사한 마음에 더 잘해야겠다 싶었죠.

그 자리에서 새롭게 가까워진 친구에 대해서도 들어 보고 싶어요.
일단 현승이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만나서 조금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왼손잡이다 보니까 마산고의 이윤성이나, 대구고 이현민 같은 친구들의 운동 방식도 궁금했고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가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누구랑 제일 친해졌어요?) 방금 말했던 현민이요. 휘문고 포수인 유제민이랑도 가까워졌고요. 제 MBTI가 ESFP거든요? 사실 처음에는 좀 긴장했는데, 운동하면서 얘기하다 보니까 괜찮아져서 말을 걸려고 열심히 노력했죠.

가서 만난 친구들과 요즘도 연락하고 있어요?
원래도 준상이, 지우랑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지금은 현승이랑도 종종 연락하고 있어요. 제민이랑도 대화를 자주 하고, 충암고 김지율이랑은 원래 친한 사이여서 제일 많이 얘기를 나눠요.

올해 고교‧대학 올스타전의 MVP로 선정됐어요. 받기 전에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나요?
MVP는 상상도 못 했죠. 7, 8회 정도부터 현승이랑 우수투수상 얘기만 했거든요. 현승이는 제가 받을 것 같다고 했지만, 저는 현승이가 받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진짜 그렇게 됐더라고요. 더 잘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MVP를 시상할 때 제 이름이 불려서 깜짝 놀랐죠. (팀원들이나 가족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다들 엄청나게 놀랐어요. 저 아니면 준상이가 되겠다고 얘기했었는데, 진짜 제가 뽑히니까 놀라면서 축하해 줬죠. 현승이가 우수투수상을 받고 내려와서, 저 보고 “네가 받을 상인데 내가 받아서 미안하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었거든요. 근데 제가 MVP를 받고 나니까, 본인이 미안할 필요가 없었다면서 장난을 치더라고요. (웃음)

MVP 부상은 어떻게 했어요?
아이패드를 받았는데, 저는 필요 없어서 동생한테 줬어요. 중학교 3학년 남동생이 있는데, 서울디자인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동도중학교에서 야구를 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안 받겠다고 하더니, 제가 필요 없다고 주니까 지금은 잘 쓰고 있는 듯합니다.

올스타전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남은 시즌 목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청소년 대표팀에 뽑히고 싶어요. 제일 중요한 거는 다치지 않는 것이지만요. 나중에 프로에 가서 더 좋은 선수가 되고 싶어서 아프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드래프트에 관한 구체적인 목표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전체 2번으로 지명되고 싶습니다.

#해명할 게 있는데요…

롤 모델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 나스르 FC)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메호대전(메시-호날두 대전)’은 어떻게 생각해요?
잠시만요. 사실, 이때 롤 모델이 삼성 라이온즈 배찬승 선수라고 이야기하고 나서, 또 좋아하는 선수가 있냐는 질문에 호날두의 자기 관리 능력을 배우고 싶다고 대답한 거였거든요. 근데 롤 모델이 호날두라고 말한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이 자리를 빌려서 정정하겠습니다. (머쓱) 호날두를 본받고 싶은 이유는 축구 실력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멈추지 않는 자기 관리나 경기 외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들 때문이었거든요. 그래서 (리오넬) 메시와 호날두 중 골라야 한다면 축구로는 메시를 고르겠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수들이 있어요?
프로 무대에 가서는 한화 이글스 류현진 선배를 꼭 뵙고 싶어요. 오랫동안 야구를 해 오셨잖아요. 길게 선수 생활을 이어 올 수 있는 비결이나 루틴, 이닝을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경기 운영 능력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어요.

야구는 어떻게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축구반에 들어가 있었는데, 가족끼리 미국 여행을 가서 당시 최지만 선수(현 울산 웨일즈)가 있던 LA 에인절스 경기를 보게 된 거예요. 그 이후로 야구에 푹 빠져서 진로를 바꿨어요. (부모님 반응은 어땠어요?) 사실 아빠는 제가 야구하기를 더 원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야구를 보여 주신 건데, 제가 딱 걸려들었죠. 그리고 엄마는 제가 좋아하는 걸 시키고 싶어 하셔서요. 항상 하고 싶은 걸 하고 즐겁게 살라고 하세요. 딱히 반대는 없었던 듯해요.

동생도 비슷한 시기에 야구를 시작했어요?
제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제가 시합에 나갈 때마다 따라오더니 자기도 야구를 하고 싶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렇게 초등학생 때부터 같이하게 됐습니다.

고교 진학 후 팔꿈치 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재활을 버텨 낸 마음가짐이 궁금해요.
솔직히 재활 기간에 힘들었어요. ‘다시 공을 잘 던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었고요. 그럴 때마다 재활 센터 코치님을 포함해서 주변 분들이 너라면 할 수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해 주셔서, 큰 힘이 됐어요.

서울디자인고 진학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학교의 매력을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일단 코치님들도 엄격해야 할 땐 엄격하지만, 다른 때는 친구 같은 분위기로 훈련해서 좋아요. 학교에 야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이 의외로 잘 없는데, 여기는 훈련하기에 최적인 시설들이 교내에도 많고요. 그리고 다 같이 모여서 운동하는 분위기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단합력 하나로 이마트배에서도 16강이라는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하나 고른다면 무엇인가요?
이마트배 2회전에서 북일고를 상대로 치렀던 경기요. 그때 저는 투구 수 제한으로 시합에 출전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도 열심히 응원하고, 파이팅을 외치면서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죠. 그렇게 뭉쳐서 하나가 되니까 이길 수 있더라고요. 경기는 못 나갔지만, 그때 간절하게 경기를 지켜본 게 기억나요.

이마트배 16강 진출에 감격해서 운 친구는 없었어요?
경기 결과 때문에 울었던 친구는 없고, 지훈이가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서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경기장에서 끝나고 어머니를 껴안고 울던데, 그 장면이 너무 기억에 남아요. (공개해도 되는 거예요?) 지훈이는 괜찮을 거예요. (뻔뻔)

앞으로 어떤 선배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한데요?
친구 같은 선배로 기억되고 싶어요. 저한테 거리낌없이 다가와서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고, 짓궂게 장난도 칠 수 있는 선배로 남고 싶네요. (지금은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노력 중이죠.

배찬승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응원하는 팀도 삼성인가요?
맞아요.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었어요. 연고 지역은 아니지만, 예전부터 삼성 야구가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수도권에 원정 경기를 오면 한 번씩은 보러 갔던 듯해요. 배찬승 선수 말고도 육선엽 형이 제 초등학교 선배예요. 초등학생 때 육선엽 형처럼 되고 싶다는 다짐을 많이 했었는데, 그래서 형도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관심 있게 지켜볼 야구팬들에게 인사하며 마무리할게요.
프로 무대에 가서도 잘하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계속 응원해 주시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6년 184호 (8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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