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태스킹, ‘유능함’보다 ‘정신적 과부하’에 가깝다
- 주의력이 분산되면 더 많은 시간적, 정신적 비용 소요
-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는 ‘순차 처리’가 더 나아
일상에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위 ‘멀티 태스킹’이라 불리는 상황이다. 어떤 사람은 멀티 태스킹을 능숙하게 해내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도무지 적응하지 못하기도 한다. 마치 타고난 것처럼 말이다.
멀티 태스킹을 잘 해내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멀티 태스킹은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것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존재한다.
실제로, 멀티 태스킹은 대개 집중력을 분산할 것을 요구한다.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집중력을 옮겨야 하는 ‘작업 전환’으로 인해 더 많은 시간적, 정신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 작업에 있어 충분한 숙고를 할 수 없게 되며,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없게 하는 원인이 된다. 즉, 결과물의 질이 떨어지거나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이 갑자기 몰려들 때, 가급적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미국 대중심리학 매체인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게재된 연구 사례 및 관련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해본다.
팬데믹이 남긴 학업 성취 저하
미국 노스웨스트 평가협회(Northwest Evaluation Association, NWEA)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학업 성취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팬데믹 이후 학업 성취도를 지속적으로 측정해왔으나,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의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NWEA에서는 약 670만 곳의 공립학교에서 3학년부터 8학년(한국 기준 초등학교 3학년~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시험 성적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팬데믹 기간을 겪었던 학생들은 팬데믹 이전 같은 학년을 마쳤던 학생들에 비해 학업 성취도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수준까지 성취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약 4개월~4.5개월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NWEA는 학업 성취도 저하의 원인 중 하나로 팬데믹 기간 동안의 ‘온라인 수업’을 지목했다. 감염병의 급격한 확산을 막으면서도 교육을 지속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당시 실제 수업과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것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멀티 태스킹에 대한 진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대니얼 샥터는 이러한 학업 부진의 심리적 원인으로 ‘부주의’를 꼽았다. 즉, 집중하지 못함으로써 정보(수업 내용)를 온전하게 받아들이거나 처리(기억)하는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대면 수업과 온라인 수업이 환경 측면에서 가장 다른 점은 ‘멀티 태스킹’이다. 즉, 수업 중 ‘딴짓’을 하기 용이한 환경이라는 의미다. 교실에서 수업을 할 때는 딴짓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또한, 딴짓이 적발되면 즉각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은 그렇지 않다. 교사 입장에서 화면 속 학생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고, 딴짓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더라도 통제에 한계가 있다. 학생들은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놓이게 되고, 자연스레 집중력을 잃기 쉬워진다.
두 가지 이상의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때, 우리 뇌는 인지 부하가 증가해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 시간 동안에는 어떤 정보를 획득하더라도 더 잘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하나의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집중력을 옮기는 ‘작업 전환’ 과정 역시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 소모를 유발하며, 이로 인해 전체 시간 대비 작업 효율성이 떨어지기 쉽다.
즉,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이라는 환경 속에서 ‘수업과 딴짓’의 멀티 태스킹을 할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레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중과 주의 분산 -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1999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실시했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유명하다. 실험 참여자들에게 각기 3명씩으로 구성된 두 팀이 공을 주고 받는 영상을 보여준다. 둘 중 한 팀을 지정해, 그 팀원(3명) 사이에서만 총 몇 번의 패스가 이루어졌는지를 세어보라고 지시했다.
빠른 속도로 공을 주고받는 가운데, 고릴라 슈트를 입은 사람이 화면 한가운데로 서서히 걸어 들어와 카메라를 향해 섰다. 그는 손으로 가슴을 몇 차례 두드린 다음, 약 9초 후에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영상이 끝난 다음, 참여자들은 지시받은 ‘패스 횟수’를 상당히 정확도 높게 헤아려 보고했다. 그러나 ‘영상에서 이상한 것을 보지 못했느냐’라고 물었을 때, 거의 절반이 ‘보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보다 직접적으로 ‘영상에서 고릴라를 보았느냐’라고 묻고, 보지 못했다고 답한 사람들에게 영상을 되감아 다시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신이 고릴라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무주의 맹시 실험'이라 불리는 이 실험은 ‘집중과 주의 분산’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한 가지 작업에 집중할 때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른 정보를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원리를 조금 비틀어보자.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면서 다른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면? 얼굴은 카메라 화면을 보고 있더라도 학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거나 매우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주의 분산의 원인, 스마트폰
현대의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는 중, 화면 속에 얼굴을 비추면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이다. 즉, 게임에 ‘주의가 집중’돼 있는 상황이라면, 수업 내용은 ‘부주의’ 상태에서 인지될 수밖에 없다.
오하이오 대학교 연구팀은 학생들로 하여금 비디오 강의를 시청하게 하고, 배운 내용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다. 강의 중 스마트폰을 사용한 학생들에 비해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62% 더 많은 정보를 적었으며, 보다 자세한 내용과 맥락을 기억했으며, 객관식 시험에서도 더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는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대학생들 역시 팬데믹 기간 동안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던 사례가 많았다. 같은 맥락에서, 학업에만 적용되는 내용도 아니다. 팬데믹 기간에는 직장인들 역시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흔했다. 즉, 학업이든 업무든 관계 없이 ‘집중력이 분산되기 더 용이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의미다.
물론 성인들은 학생들과 달리 스스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거나, 억지로라도 발휘해야만 하는 상황일 때가 많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집중력이 분산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스마트폰이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본질은 다르지 않다.
정신건강 면에서 ‘순차적 처리’가 더 나아
이러한 연구들은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폐해를 지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눈여겨 봐야할 것은 ‘멀티 태스킹’이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학업 성적이 저하됨에 있어 핵심적인 요인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환경’일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은 그러한 환경을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요인일 뿐이다. 교사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환경에서 학생들의 주의를 분산하는 요인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학업 외에 업무나 일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인들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이 밀려드는 상황을 자주 겪는다. 그러한 현실 자체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을 동시에 처리하려고 애쓰는 비효율적인 일이며, 오히려 뇌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는 일이다.
멀티 태스킹은 인지 부하를 증가시켜 한 가지 일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여러 일을 오가는 동안 ‘작업 전환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시간도 더 걸리고 에너지 소모량도 많아지게 만든다.
이와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작업 내용에 대한 장기 기억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며, 나중에 다시 떠올리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전반적인 수행능력은 물론 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여러 일이 몰려들 때 하나씩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당장 보기에 시간이 더 걸리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진정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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