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이 남편 부의금을 그대로 돌려보냈길래.." 봉투 속 편지를 읽고 울었다

장례식에서 받은 부의금은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돈입니다. 그런데 사돈댁에서 받은 부의금이 그대로 되돌아온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서운함이 먼저 밀려오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남편의 장례 뒤 사돈에게서 부의금 봉투를 돌려받은 한 아내가 그 안에 든 편지를 읽고 알게 된 30년 전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목포 수산시장의 부부

전남 목포에 사는 양순옥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그녀는 남편 김영철 씨와 함께 목포 수산시장에서 40년 동안 건어물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새벽마다 경매장에 나가 생선을 받아 오고 하루 종일 손님을 맞는 고된 생활이었습니다.남편 영철 씨는 말수가 적었지만 정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시장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누구보다 먼저 찾아가 도왔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거나 입 밖에 내는 법이 없었습니다.부부에게는 딸 은영 씨가 하나 있었습니다. 딸은 8년 전 여수 출신의 최민혁 씨와 결혼했습니다. 사돈인 최병수 씨는 여수에서 큰 수산물 유통 회사를 운영하는 분이었습니다.순옥 씨는 처음에 사돈댁과 형편 차이가 많이 나서 마음이 쓰였습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주눅이 들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돈 병수 씨는 남편을 보자마자 깊이 고개를 숙이며 각별하게 대했습니다.순옥 씨가 나중에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사돈어른이 왜 그렇게 당신한테 깍듯해요? 원래 아는 사이예요?" 남편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같은 바닥 사람이니 그렇겠지. 신경 쓰지 마."

갑작스러운 이별

올해 초봄, 남편 영철 씨가 새벽 경매장에 나갔다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일흔둘, 너무 이른 이별이었습니다.장례식장에는 시장 상인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남편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와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순옥 씨는 그제야 남편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마음을 베풀며 살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사돈 병수 씨도 여수에서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그는 영정 앞에 한참 동안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모습이 사돈 사이라기보다 가족을 잃은 사람 같았습니다.병수 씨는 부의금으로 두툼한 봉투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순옥 씨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사부인, 제가 형님께 갚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는데 이렇게 보내 드리게 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순옥 씨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장례가 끝나고 순옥 씨는 텅 빈 가게에 앉아 남편의 빈자리를 실감했습니다. 40년 동안 함께 셔터를 올리고 내리던 사람이 이제 없었습니다.

돌아온 부의금 봉투

장례를 치르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여수에서 등기 우편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보낸 사람은 사돈 최병수 씨였습니다. 봉투를 열어 본 순옥 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장례식 때 사돈이 건넨 부의금 봉투가 그대로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순간 서운함이 밀려왔습니다. 사돈댁에서 부의금을 돌려보내는 것은 무슨 뜻일까 싶었습니다. 혹시 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사돈댁과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그런데 부의금 봉투 아래에 또 다른 봉투가 하나 더 들어 있었습니다. 두툼한 편지와 함께 통장 한 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통장은 순옥 씨 이름으로 새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순옥 씨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습니다. 사돈의 정갈한 글씨가 여러 장에 걸쳐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편지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사부인, 30년 동안 형님과 약속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제야 드립니다."순옥 씨는 가게 의자에 앉아 천천히 편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한 줄 한 줄 읽을수록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편지에 적힌 30년 전 이야기

편지에 따르면 30년 전, 병수 씨는 여수에서 작은 배 한 척으로 고기를 잡던 젊은 어부였습니다. 어느 해 태풍으로 배가 크게 부서졌고, 수리비가 없어 생계가 막막해졌습니다. 은행도, 친척도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았습니다.그때 목포 수산시장에서 거래하던 영철 씨가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영철 씨는 아무 말 없이 병수 씨를 찾아와 봉투를 건넸습니다. 그 안에는 당시 영철 씨 가게의 1년 매출에 가까운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자는 필요 없네. 배 고쳐서 다시 일어서게.""형님은 차용증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약속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일을 아무에게도, 특히 사부인께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요. 사부인이 그 돈 때문에 고생하신 걸 아시면 마음 아파하실 거라고요."순옥 씨는 그제야 30년 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해 남편은 가게 물건을 들여올 돈이 없다며 한동안 빚을 지고 장사를 했습니다. 순옥 씨는 남편이 장사를 잘못해서 그런 줄로만 알고 원망도 많이 했었습니다.편지는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그 돈으로 배를 고쳐 다시 일어섰고, 지금의 회사를 일굴 수 있었습니다. 몇 번이나 갚으려 했지만 형님은 끝내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들과 은영이가 만난 것은 정말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사돈의 마지막 부탁

편지의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형님을 다시 뵀을 때 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형님은 눈짓으로 저를 말리셨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고 하셨습니다.""이제 형님이 떠나셨으니 그 약속을 지킬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부의금은 받을 수 없습니다. 형님께 받은 은혜에 비하면 너무 작은 돈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통장에 넣은 돈은 형님께 30년 동안 갚지 못한 빚입니다. 사부인의 남은 날들을 위해 써 주십시오."통장에는 순옥 씨가 평생 만져 보지 못한 큰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순옥 씨는 통장을 가슴에 안은 채 텅 빈 가게에서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30년 전 남편을 원망했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장사 수완이 없다고, 남 좋은 일만 한다고 잔소리했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남편은 그 모든 원망을 묵묵히 들으면서도 끝까지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그날 밤 순옥 씨는 남편의 영정 사진 앞에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보, 당신 참 바보 같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나는 그런 당신이랑 40년을 살아서 행복했어요."

다시 여는 가게 셔터

며칠 뒤 순옥 씨는 여수로 사돈을 찾아갔습니다. 사돈 병수 씨는 순옥 씨를 보자마자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순옥 씨는 사돈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사돈어른, 그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평생 그 사람을 반밖에 몰랐네요."순옥 씨는 통장을 사돈에게 돌려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병수 씨는 끝내 받지 않았습니다. "이건 형님 돈입니다. 형님이 지키려던 사부인의 노후에 쓰여야 합니다." 결국 순옥 씨는 그 돈의 일부로 남편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목포 수산시장 상인 자녀들 가운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장학금이었습니다. 첫 장학금 수여식 날, 시장 상인들이 모두 모여 박수를 쳤습니다. 단상에 걸린 남편의 사진 속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순옥 씨는 다시 건어물 가게 셔터를 올렸습니다. 이제는 딸과 사위가 주말마다 내려와 일을 돕습니다. 사위는 장인어른이 아버지를 살린 은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가게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거듭니다.순옥 씨는 가게 계산대 옆에 남편의 사진과 사돈의 편지를 나란히 걸어 두었습니다. 손님들이 사연을 물으면 그녀는 웃으며 말합니다. "우리 영감이 30년 전에 심어 둔 정이 이렇게 돌아왔어요. 사람한테 베푼 건 결국 다 돌아오더라고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가족의 모습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묵묵히 베풀며 살아온 사람의 진심은 결국 언젠가 누군가를 통해 돌아옵니다.오늘은 곁에 있는 가족에게 그동안 미처 묻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번 청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대화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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