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의 워치메이커’ 까르띠에… 시간의 흐름을 빚어내다
둥근 다이얼 위에서 시간은 영원처럼 회전하고, 직각의 탱크 위에서는 군악처럼 행진하며, 비대칭의 크래쉬 위에서는 어딘가로 흘러내리듯 유영한다. ‘시간’이라는 물리적 질량은 같아도, 흐름의 속도는 개인의 ‘감각’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상대성을 ‘형태’로 빚어냈다. 까르띠에가 한 세기 넘게 ‘형태의 워치메이커(Watchmaker of Shapes)’이자 ‘공예의 대가(Master of Crafts)’ 라는 칭호를 누려온 이유를 확연하게 공언한 장면, 바로 지난 4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026 워치스&원더스’ 현장이다. 올해 까르띠에의 라인업은 단순히 풍성한 수준을 넘어, 최근 수년 사이 가장 폭넓고 야심 찬 컬렉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장에서는 하루 종일 설명을 들어도 모자랄 정도로 꽉찬 라인업과 세상의 모든 형태는 다 모아놓은 듯한 벽면 아트로 현장을 압도했다. 이 방대한 제품들을 살펴보면서 이 책을 다시 한번 꺼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 시절부터 시간을 바라보며 한줄 씩 줄쳐서 읽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저자가 14년 간에 달해 흘러가는 시간과 사투하며 잠재태를 끌어내 ‘영원의 시간’을 역설했듯, 까르띠에는 170년여에 걸친 시계 제작의 여정을 형태로 재구축하고 변주하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무한성을 유한한 틀 위에서 구현해내고 있었다.

◇까르띠에 프리베-크래쉬 스켈레톤
컬렉터를 위한 연례 한정 라인 ‘까르띠에 프리베(Cartier Privé)’가 10번째 컬렉션 런칭을 기념하여 하나가 아닌 세 개의 형태를 동시에 부활시켰다. 그 중에서도 올해 까르띠에를 정의할 단 한 점을 꼽으라면, 이견 없이 크래쉬 스켈레톤이다. 럭셔리 전문 매체 롭 리포트 등 다수의 외신이 “가장 큰 관심을 받을 작품”, “올해 까르띠에의 해를 규정할 모델”로 지목했고, 일부 매체는 워치스&원더스 2026 전체의 ‘에디터스 픽’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번 스켈레톤 버전이 특별한 이유는 ‘오픈워크’를 넘어선 ‘설계 철학’에 있다. 신규 수동 와인딩 무브먼트 칼리버 1967 MC는 142개의 부품으로 압축돼 크래쉬 특유의 일그러진 케이스 안에 맞춰졌다. 디자인 매체 월페이퍼는 “프리베 시리즈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야심 찬 작품”이라고 꼽았다. 핵심은 스켈레톤화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무브먼트의 ‘조직 원리’로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다이얼이 사라진 자리에서 무브먼트의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까르띠에는 이 브리지들을 로마 숫자 모양으로 깎아냈다. 이는 까르띠에가 특허받은 시그니처 기법이다. 그러나 2026년의 새로움은 그 다음에 있다. 글로벌 시계 전문 매체 워치 타임은 “모든 브리지는 전통 기법으로 완전히 손으로 망치질되어 마무리되었으며, 한 피스당 약 두 시간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브먼트의 메커니즘이 그 자체로 시각적 표현이 된다. 150피스 한정.
◇까르띠에 프리베-탱크 노말
1차 세계대전 탱크에서 영감을 받은 오리지널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193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탱크의 무한궤도에서 영감을 받은, 폭이 넓은 측면 레일(브랑카르)이라는 탱크 최초의 디자인 언어를 정직하게 계승한다. 특히 7링크 플래티넘 브레이슬릿으로 1930년대 당시 모델을 더욱 환기시킨다. 새틴 마감의 표면과 폴리시드 처리된 브랑카르 엣지의 대비가 절제된 호화로움을 만들어낸다. 무브먼트는 컴플리케이션 없는 수동 와인딩으로, 실버 오팔린 다이얼에 버건디 마킹, 블루드 스틸 핸즈, 그리고 프리베 플래티넘의 시그니처인 루비 카보숑 크라운이 더해졌다. 워치 가이즈는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럭셔리(pure understated luxury)로 표현했다. .
◇까르띠에 프리베-똑뛰 크로노그래프 모노푸셔
해외 유명 시계 전문 팟캐스트 ‘OT:팟캐스트’ 진행자이자 시계 전문 칼럼니스트인 앤디 그린과 펠릭스 숄츠가 “올해 프리베 라인업의 숨은 보석(sleeper)”이라 부른 제품, 바로 똑뛰 크로노그래프 모노푸셔다. ‘거북이’란 뜻의 똑뛰(tortue) 형상 제품으로, 크래쉬의 강렬함에 가려졌지만, 컴플리케이션과 무브먼트의 완성도 때문에 진지한 애호가일수록 더 깊이 평가하는 모델이다.
이 시계는 1998년 컬렉션 프리베 까르띠에 파리(CPCP) 레퍼런스를 재해석한다. 비드(구슬) 형태의 아워 마커와 거대한 로마 숫자 ‘XII’로 대표되는 이 다이얼은 똑뛰 시리즈에서 가장 우아한 실행으로 손꼽혀 온 사랑받는 디자인이다. 이번에는 실버 오팔린 바탕에 레드/버건디 마킹으로 옮겨졌다.
기술적 정점은 매뉴팩처 1928 MC 캘리버다. 두께가 단 4.3mm에 불과해 까르띠에가 만드는 가장 얇은 크로노그래프로 꼽힌다. 그 결과 케이스 전체 두께가 10.2mm에 그친다. 모노푸셔 메커니즘은 크라운에 통합된 단 하나의 버튼으로 시작·정지·리셋을 모두 처리한다.
◇산토스 뒤몽
1904년 루이 까르띠에가 비행가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을 위해 만든, 최초의 손목시계 중 하나에서 출발한 이 모델이 수년 만에 가장 큰 변화를 맞았다. 바로 브레이슬릿이다. 1920년대 주문 제작(메이드 투 메저) 브레이슬릿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메탈 브레이슬릿을 얻었다. 15열 394개의 링크로 구성되며 링크 한 개의 두께가 1.15mm에 불과해, 마치 ‘제2의 피부’처럼 손목을 부드럽게 감싼다. 글로벌 시계전문 매체 ‘더 아워마커스’는 “브레이슬릿이 풍성했던 올해 시즌 가운데서도 ‘최고의 브레이슬릿 중 하나’”라고 평했다.

라인업은 LM(라지 모델) 3종이다. 옐로우 골드 + 실버 사틴 다이얼, 플래티넘 + 실버 사틴 다이얼,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옐로우 골드 + 흑요석(obsidian) 다이얼이다.

멕시코산 화산석을 0.3mm 두께로 잘라낸 흑요석 다이얼은 유리에 비할 만큼 섬세해 가공 난도가 높다. 돌 내부에 갇힌 미세한 공기 방울들이 빛에 따라 무지갯빛으로 반사되는 구조. 모든 다이얼이 유일무이하다. 산토스 뒤몽이 비행기로 하늘을 정복하던 시간의 새벽에, 까르띠에는 이제 가장 오래된 지구의 기억, 즉 마그마가 식어 빛이 된 광물 위에 시간을 새긴 것이다. 무브먼트는 수동 와인딩 칼리버 430 MC다.
◇로드스터
화제성만 놓고 보면 올해 가장 큰 헤드라인 중 하나는 로드스터의 부활이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생산된 뒤 약 14년간 정규 라인업에서 사라졌던 이 자동차 영감의 모델이 돌아왔다. 현장에서, 특히 북미 지역 중심으로 로드스터에 대한 질문과 관심이 쏟아졌다.

토노(tonneau·큰 통) 형태의 케이스, 케이스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통합형 크라운, 사파이어 크리스털 위에서 날짜를 확대해주는 헤드라이트 모양의 디테일 등 로드스터의 핵심 DNA는 그대로 유지됐다. 동시에 케이스는 더 매끈하고 인체공학적으로 다듬어졌는데, 외신에 따르면 100명 이상의 장인이 디자인 재구성에 참여했다고 한다. 베젤에는 4개의 리벳이 새로 더해졌고, 브레이슬릿은 짧아진 링크와 함께 손쉬운 교체가 가능한 퀵스위치 시스템을 채택했다.

출시 라인업은 두 가지 사이즈(미디엄·라지)와 세 가지 메탈(스틸, 스틸-골드 투톤, 골드) 조합으로 총 7개 레퍼런스에 이른다. 대부분 동심원 패턴의 화이트 다이얼에 로마 숫자를 담았으며, 라지 스틸 모델은 다크 블루 다이얼과 매칭 러버 스트랩을 제공한다. 무브먼트는 셀프 와인딩 칼리버, 방수는 100m다.
◇베누아 끌루 드 파리
여성 컬렉터라면 환호할 수 밖에 없는 베누아가 새로운 표면 처리를 얻었다. 2023년 도입된 뱅글-브레이슬릿 버전을 기반으로, 까르띠에가 1920년대 초부터 사용해 온 끌루 드 파리(Clou de Paris) 모티프를 시계 전체에 입혔다.

타원형 케이스부터 다이얼, 브레이슬릿 길이 전체에 걸쳐 손으로 폴리시한 수많은 작은 피라미드가 촘촘히 박힌다. 베누아 특유의 유려한 곡선과, 각지고 기하학적인 끌루 드 파리 모티프가 만들어내는 대비가 이 작품의 정수다. 형태의 균일함을 유지하기 위해 골드를 특수한 방식으로 성형했고, 푸시버튼이 케이스의 곡선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비율을 재조정했다. 까르띠에의 주얼리 헤리티지에 충실하게, 전체가 손으로 폴리시되어 광채를 드러낸다.
◇미스트 드 까르띠에
올해 라인업에서 가장 주얼리에 가까운 작품은 미스트 드 까르띠에다. 19세기 여성들이 은밀하게 시계를 보았던 것에 한발 더 나아가, 조형성을 전면에 내세워 주얼리이자 시계로 생각을 전환한다. 실제 착용해보니 클래스프(잠금장치)가 없는 주얼리 워치로, 구슬을 꿴 듯한 탄성 구조로 손목을 감싼다. 롭 리포트는 “1930년대 초 까르띠에 하이주얼리 디렉터인 쟌느 투상의 디렉션 하에 만들어진 주얼리 워치들에 경의를 표하며,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조각적 형태를 가진다”고 평했다.

오닉스 프레임으로 둘러싸인 기하학적 파베 다이얼이 특징이며, 한 점당 약 112시간의 보석 세팅 작업이 투입된다. 옐로우 골드에 블랙 래커와 다이아몬드를 더한 버전, 그리고 화이트 골드에 986개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버전으로 선보였다.

비로소 몇 번이나 읽으려다 포기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권에 도달했다. 실상 읽는 순서는 처음부터 상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문맥과 행간 속에 진리는 ‘숨 쉬듯’ 쉴새없이 돋아나기 때문이다. 까르띠에가 현재와 과거의 제품을 동시에 진열해 선보였듯, 깨달음의 과정이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 대화를 나누는 속에 진행되는 것처럼 말이다. 프루스의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é)’에서 화자는 깨닫는다.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삶, 그러므로 유일하게 충실히 살아낸 삶, 그것은 문학이다.” 까르띠에의 일곱 시계 앞에서 우리는 이 문장을 살짝 비틀어볼 수 있다. “진정한 시간, 마침내 발견되고 형태가 부여된 시간, 그러므로 유일하게 충실히 살아낼 수 있는 시간, 그것은 형상(形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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