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 전 핑크색 유니폼의 기억
벌써 한 달이 됐다. 핑크색 유니폼을 입던 때다. 정확하게는 5월 8일 게임이다. 대전에서 이글스와 트윈스가 맞붙었다.
치열하기 이를 데 없다. 8회까지 엎치락뒤치락한다. 8-7 박빙 승부다. 뒤지던 홈 팀이 뒷심을 발휘한다. 9회 말에 기어이 동점을 만든다.
심지어 끝이 아니다. 역전 기회가 이어진다. 1사 2, 3루다. 웬만한 타구면 역전극이 완성된다.
바로 여기다. 문제의 장면이 연출된다.
이원석의 타구가 날카롭게 뻗는다. “변화구 밀어냅니다~.” 중계 캐스터(이동근)가 비명을 지른다. 모두가 그랬다. ‘끝났다.’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다. 전혀 다른 결말이 기다린다. 3루 주자가 꼼짝도 못 한다. 아웃 1개만 늘었다. 1사 2, 3루가 2사 2, 3루가 바뀌었을 뿐이다.
9회 말은 끓다가 만다. 연장 승부로 이어진다. 결국 원정 팀의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10회 초에 1점을 뽑는다. 9-8이 최종 스코어다.
러닝 타임이 무려 5시간 5분이다. 패전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홈 팬들은 상심이 크다. 질타와 원망이 쏟아진다. 대상은 뻔하다. 3루에 있던 2명이다. 주자와 베이스 코치다.
우익수 플라이가 나왔다. 당연히 홈에 들어왔어야 한다. 그런데 안 들어왔다. 우물쭈물하다가 놓쳤다. 그런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플레이어에게 따가운 시선이 쏠린다. 선발 출장도 아니다. 딱 그 타이밍에 기용된 인물이다. 그러니까 대주자다. 잘 달리기만 해라. 그런 특명을 받고 나간 셈이다. 그런데 일을 그르쳤으니….

두 해설자의 의견
당시 상황은 KBS2 TV가 중계했다. 2명의 해설자가 비슷한 의견이다.
“지금도 사실은 3루 주자 하주석 선수 보시면…. 공이 떴으면 바로 돌아가서, 그다음에 태그업을 준비해야 된다. 여기서 이렇게 (중간에서) 지켜보는 상황이 아니고, 최대한 빠르게 3루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다.” (박용택 해설위원)
“(우익수가) 슬라이딩을 하는 것을 염두에 뒀다면, (3루 주자는) 리터치가 맞다. 태그업을 해서, (우익수가) 일어나서 바로 던져도, 그 시간이 있다. 이거는…. 글쎄, 3루 쪽에서 미스가 많이 나온다.” (조성환 해설위원)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5월 9일)이다. 이글스의 엔트리가 변경된다. 1군에서 1명이 말소된다. 바로 그 3루 주자다. 2군행 조치가 내려졌다.
달 감독의 코멘트가 보도된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아쉬움은 드러난다.
“조금 (컨디션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말소했다. (전날 플레이에 대한 질문에) 또 끄집어내서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여러모로 아쉽다.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를 놓치니까 너무 아까운 것이다.” (김경문 감독)

적장의 두둔
오히려 적장이 두둔한다. 염경엽 감독이 다음날 한 얘기다. <스타뉴스> 김동윤 기자의 보도를 인용한다.
“타구가 아주 짧았다. 사실 하주석이 잘못했다고 하기엔 굉장히 어려운 플레이였다고 생각한다. 발이 엄청 빠르지 않다면 대부분의 주자가 그 상황에서 (하주석처럼) 하프 웨이를 선택했을 것이다.”
구체적인 설명도 보탠다.
“만약에 하프 웨이를 하지 않고 리터치하고 홈에 들어왔으면 주자가 죽을 확률이 높았다. (홍)창기가 어깨가 약한 것도 아니고 바로 노 바운드 송구가 됐을 텐데, 그때는 왜 하프 웨이를 하지 않았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심지어 자기 팀 선수까지 예를 든다.
“우리로 따지면 (박)해민이나 (최)원영이 정도나 가능했을 것이다. (신)민재도 내가 봤을 땐 쉽지 않다. 그 정도 빠른 선수들이면 타구가 짧아도 (홈에 들어올 자신이 있으니까) 하프 웨이를 생각하지 않고 베이스에 붙어있다. 그런 선수들에게나 한정된 플레이다."
그의 결론은 역시 운명론이다.
“누군가 잘못했다기보다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본다. 우리가 봤을 때는 굉장히 어려운 플레이지만, 팬들은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하니까 그럴 수 있다."

주루 전문가의 전격 등판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어제(7일) 새벽이다. 영상 하나가 업로드된다. 눈길을 확 잡아 끈다. 유튜브 채널 <슈퍼소닉이대형>의 컨텐트다. 이런 제목이다.
‘하주석 주루플레이 만약 이대형이었다면!?’
요즘 가장 핫한 해설자다. 게다가 주루 플레이 분야다. 가장 전문적인 식견을 가졌을 것이다.
“하~” 깊은 한숨으로 시작된다. 시간이 꽤 지났다. 그런데도 올린 이유를 설명한다.
“내가 해설을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 그럼 이제 각 팀의 주루코치들이 불러서 많이들 물어본다. ‘이 상황(하주석 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한 가지를 입증하는 얘기다. ‘그동안 현장에서도 논란이 상당했구나.’ 하는 사실이다.
보직 코치들이다. 해당 분야의 실전은 물론이다. 웬만한 이론을 연구한 인재다. 그런 이들조차 서로 의견을 물을 정도다.
슈퍼소닉이 전하는 일선 코치들의 분위기다.
“현장의 의견에서는 그 주루 플레이가 잘못이다, 아니다. 딱 결정지어서, 단정지어서,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결론을 밝힌다.
“조금의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100% 미스다(잘못이다)’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현직 주루 코치들의 결론
이어지는 설명이다. 요약하면 이런 얘기다.
1점이면 끝나는 상황이다. 주자는 컨택트 플레이를 준비한다. 땅볼이 나오면 무조건 홈으로 스타트한다는 자세다. 즉, 평소보다 스킵 동작을 과감하게 한다는 (중간까지 많이 나온다는) 뜻이다.
여기서 변수가 생긴다. 이원석의 타구는 라인드라이브였다. 게다가 거리가 짧았다. 우익수 앞이다. 직접 잡을지, 짧은 바운드가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전은 홍창기가 어렵게 잡아냈다. 슬라이딩까지 필요했다. 그래서 왜 주자가 리터치(태그업)를 준비하지 않았냐. 하는 비난을 받게 됐다.
슈퍼소닉은 이렇게 반문한다.
“만약 태그업을 위해 3루로 돌아가려고 한 발짝만 움직인다? 그런데 타구가 쇼트 바운드가 됐다. 그럼 3루 주자는 절대로 홈에 못 들어온다(거리가 너무 짧아서).”
즉, 우전 안타가 됐다고 치자. 그런데도 3루 주자가 득점에 실패했다는 말이다. “그럴 경우는 충격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잡힐 때까지 알 수 없는 타구였다. 후에 비디오 판독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외형적 결과는 플라이 아웃이다. 그것도 슬라이딩 캐치가 이뤄졌다. 때문에 태그업을 했다면 홈에서 충분히 살 수 있었다. 그런 ‘결과론’이 등장한 것이다.
그는 이런 예를 든다. 염 감독의 주장과 비슷한 결이다.
“모든 주자가 이대형이나 박해민일 수는 없다. 혹시 그렇다고 해도 두 번은 (중간에서 왔다 갔다) 브레이크가 걸렸을 것이다. 그래도 나라면 아웃이 되더라도, 홈에서 승부를 봤을 것이다.”

야구는 야구로
아마 그럴 것이다. 올해 가장 뜨거운 장면이었다. 그래서 내내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슈퍼소닉의 영상을 서둘러 클릭했다.
물론 플레이 자체에 대한 평가는 중요하다. 잘했냐? 잘못했냐? 본헤드냐? 아니냐? 그런 가늠과 정리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다르다. 또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우선 팀(감독)의 처분이다. 다음 날 엔트리에서 말소시켰다. 누가 봐도 문책성이다. 물론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그냥 아쉬움 정도만 드러냈다.
이게 과연 그럴 문제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다른 팀 감독, 코치, 전문가들도 갸웃거린다. 이후로 꽤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연구와 토론의 대상이다. 그만큼 난해한 상황이고, 플레이다.
그렇다면 달라야 한다. 적어도 같은 팀이라면 그래야 한다. 감싸고, 옹호해야 마땅하다. 즉각적인 2군행? 그것도 이렇게 오랜 기간을?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여론이 뜨거웠다. 원망과 비난이 들끓었다. 그런 댓글도 보인다. ‘그래 놓고 벤치에서 하는 태도와 표정을 봐라. 전혀 용서가 안 된다.’ 같은 반감이다.
그에 대한 나쁜 기억이 꽤 있다. 아마도 잊히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연관시키면 곤란하다. 과거로 인해 현재가 일그러지면 안 된다.
스타일, 인성, 언행….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게 그라운드에서의 수행을 평가하는 요소가 돼서는 안 된다. 영역은 엄연히 분리돼야 한다.
그날의 3루 주자 말이다. 결코 잘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100% 잘못했다는 단정에도 동의할 수 없다.
“오늘 이 영상은 하주석을 대변하려는 것은 아니고….” 슈퍼소닉은 그렇게 전제한다.
<…구라다> 역시 마찬가지다. 두둔하려는 뜻도, 이유도 없다. 다만 생각해 보자는 얘기다. 그날 3루에서의 일 말이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야구는 야구다. 플레이는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