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슬램게임: 드래프트에 참가하시겠습니까?] (003) '노력의 대명사' 연세대 이규태 "선수이기 전에 사람이니까요!"

정다윤 2025. 9. 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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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정다윤 인터넷기자] KBL 신인드래프트는 단 하루. 그 하루를 위해 살아온 시간은 수년. ‘25슬램게임’은 드래프트 지명과 KBL 무대 데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증명해야 할 의무를 가진 대학 농구 일원들의 생존기록을 담았다. 003번 참가자는 연세대 이규태다.

#001_Scan. 003번 참가자: 이규태

이규태는 법동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한때 스카우트 활동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호기심에 한 달 정도 활동해봤지만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그는 어린 마음에 스스로 그만두고 평범한 학교생활로 돌아갔다.

중학교는 월평중학교로 진학했다. 이 학교에는 여자 엘리트 농구부가 있었고, 어느 날 농구부 감독이 이규태에게 ‘동아리 농구 한번 해볼 생각 없냐’고 권유했다. 사실 그는 당시엔 축구를 더 좋아했지만 감독의 제안에 호기심이 생겨 농구를 시작해봤다.

막상 해보니 동아리 농구는 재미 위주의 활동이었고, 골도 넣어보며 점점 흥미가 붙었다. 그렇게 농구에 조금씩 빠져들던 중, 마침 대전중학교 농구부가 연습 경기와 훈련을 위해 월평중에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이규태의 플레이를 본 대전중 코치진이 눈여겨보게 되었고 결국 제의를 받는다. 이규태는 그렇게 본격적인 농구 인생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


제가 1년 정도 고민했던 것 같아요. 2학년이 되고 농구가 재밌어서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생각이 들었고 바로 유급하게 됐죠. 동아리 농구에서 재미를 본 게 컸어요. 공부보다 운동이 더 재밌었죠(웃음). 그런 마음에 ‘운동을 하면 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187cm였거든요.” 

늦게 출발한 만큼 누구보다 더 치열한 노력이 필요했다. 이규태는 매일 남들보다 더 많이 체육관에 나와 기본기 훈련에 매진했다. 모든 기본기를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렸고 체력 훈련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묵묵히 쌓아온 땀의 결실이 맺어진 것일까. 이규태는 2017년 협회장기, 자신의 첫 공식 대회에서 폭발적인 활약을 펼쳤다. 평균 22.5점, 18.7리바운드 괴력을 선보였고, 대전중을 준결승까지 이끌었다. “유급하고 1, 2년 동안 경기를 뛰지 못하고 훈련만 열심히 했어요. 유급기간에 노력으로 채운 부분이 잘나온 것 같아요.

결정적인 전환점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주된 득점 방식이 풋백 득점에 머물렀다면 이후엔 리바운드 후 속공, 포스트업까지 플레이 영역이 넓어졌다. 신장 덕에 일찍이 빅맨으로 분류됐음에도 중학교 때부터 3점슛까지 시도하며 외곽 플레이도 겸비하게 됐다. 그 배경은 이렇다. 故박광호 코치의 “이제 3점슛도 던져야 한다. 프로에 가면 외국선수도 있고,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조언은 그에게 큰 영향을 주며 다재다능한 선수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일찍이 3점슛을 장착한 중학생 이규태는 공식 대회에서는 팀 밸런스를 위해 외곽슛을 자제했지만, 개인 훈련에선 늘 빠지지 않는 루틴이었다. 특히 야간 훈련이 끝난 뒤에도 슛 연습을 이어가며 늦은 밤까지 체육관에 남는 일이 많았고, 혼자 수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연습에서만 활용되던 3점슛은, 대전고에 진학 후 본격적으로 실전 무기가 됐다. 새로운 배움은 설렘이었고, 1학년 시절부터 외곽 플레이를 즐기며 자신감을 키웠다. 중학교 시절 랭킹 1위였던 그는 금세 고교 무대에서도 중심 선수로 자리 잡았다.

예전엔 포스트 플레이만 하다가 외곽에서 슛이 들어가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1학년 시절은 안쪽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죠. 그래서 제 밸런스가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는 내외곽을 같이 신경 쓰면서 적응했고, 그 덕에 3학년 때 농구가 잘 풀린 것 같아요. 코치님도 ‘내외곽을 오가야 메리트가 있는 거지, 제 키에 외곽만 하면 메리트가 없다’고 말씀해주셨거든요.”

3학년이 된 이규태는 동계훈련과 대학 팀들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실력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 큰 형들을 상대할 땐 외곽에서, 미스매치가 나면 안쪽에서 풀어가는 식으로 경험을 쌓으며 고3 무렵부터 밸런스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 결실로 2021년 대전고는 13년 만에 전국대회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규태는 제46회 협회장기 전국농구대회에서 득점상과 우수선수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특히 본선에서만 45점과 1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고교 무대 손꼽히는 빅맨임을 입증했다.
더불어 2021 FIBA U19 남자농구 월드컵에 출전해 프랑스,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세계 강호들과 한 조에서 경쟁했다. 그는 “세계 대회는 제 또래 중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모이는 무대잖아요. 한국에서만 하다가 나가보니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됐습니다”라며 직접 느낀 자극을 전했다.

#002_Life in University. (대학: 지명을 위한 1차 관문)

연세대에 오르자 체계의 벽이 느껴졌다. 강한 웨이트 트레이닝, 빽빽한 패턴, 한 발 늦으면 뚫리는 수비 속에서도 그는 1학년 시절 평균 26분 12.5점 3점 성공률 45%를 기록했다. 그러나 대학 수비는 기교가 아닌 흐름을 끊는 힘이었고, 그 무게 속에서 그의 플레이는 새롭게 재구성됐다.

대학교 4개월 만에 지도자가 바뀌자 역할의 색깔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임이 분명했고 주로 받아먹는 장면이 많았다면, 연세대 윤호진 감독 체제에서는 코트가 넓어졌다. 빠른 전개와 전진하는 흐름 속에서 그는 페인트존과 외곽을 오가며 장점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

윤호진 감독님은 제 장점을 살리도록 틀을 넓혀 주셨어요. 얼리 오펜스로 같이 뛰고, 3점슛도 쏘면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 포스트업도 하게 됐죠. 그 과정에서 많이 성장했다고 느꼈습니다. 윤호진 감독님은 외곽 수비의 중요성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때부터 수비 연습을 더 많이 한 게 제 농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 외곽 수비를 해보라고 꾸준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비에 대한 마인드와 연습 방식이 달라졌고, 그 시기를 기점으로 수비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며 성장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드리죠.

깨달음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는 단점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다. 동료들과의 1대1을 일상처럼 이어가며 외곽 자원과 맞붙어 발 스텝을 익혔고, 수비가 좋은 선배들에게 손의 위치와 몸의 각도, 한 박자 앞선 밀어내기의 요령을 배우며 채워나갔다. 메모가 아닌 반복으로 몸에 새기며 꾸준한 성장을 만들어갔다.

항상 제 수비 장면을 영상으로 계속 봐요. 한 번에 뚫렸던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야간에 나와서 그 장면을 그대로 연습해요. 외곽 수비가 필요하니까 외곽 플레이를 하는 친구들과 1대1을 자주 합니다. 애들이 힘들다고 해도 제가 계속 하자고 졸랐어요(웃음). 팀에서도 수비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특히 (안)성우에게 많아서 물어보고 또 따라 해요. 작은 디테일이 습관이 되면 전체가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그는 연세대에서 팀의 굵직한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4년 내내 꾸준히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팀 내 상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득점력을 유지했고, 동기들과 함께 골밑을 책임졌다. 수비의 무게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며 이해하기 시작했다.

#003_Application. (드래프트 참여를 원하십니까?)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키가 크다보니 박스아웃과 리바운드를 먼저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내외곽 수비가 먼저 되면서 신뢰를 쌓을 거예요. 그다음에는 팀에 필요한 공격이 무엇인지 알아가야죠. 부족한 부분은 노력으로 메꾸면 됩니다. 성실함은 자신 있어요. 기본적인 것부터 충실히 하겠습니다.

이규태를 설명하는 수식어 중 하나는 ‘노력의 대명사’다. 그는 화려한 개인 능력보다 동료들을 편하게 만드는 힘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스스로보다 팀을 앞세우는 태도, 그것이 곧 그의 가장 큰 무기다.
#004_My Future (‘프로’농구 선수 이규태의 삶은?)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기자로서 숱하게 던져온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규태의 대답은 식상한(?) 예상을 벗어났다. 가장 먼저 꺼낸 단어는 ‘인성’이었다.

인성도 갖춰졌고, 상대가 막기 까다로운 선수라고 듣고 싶어요. 인성은 부모님도 항상 강조하시는 부분이고, 감독님도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농구 선수이기 전에 사람이니까요.

인성은 단순히 성격이 좋은 차원을 넘어선다. 팀 스포츠의 본질은 신뢰와 호흡에 있는데, 동료가 믿고 공을 맡길 수 있는 선수는 결국 태도에서 판가름 난다. 지도자에게는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동료에게는 배려와 신뢰로, 팬에게는 기억에 남는 모습으로 다가간다. 기록은 하루 만에 바뀌어도 태도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인성이 곧 실력이고, 커리어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자산이 된다. 이규태는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항상 중학교 때부터 프로에 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해봤죠. 저는 내외곽 가리지 않고 공격하고, 수비적인 부분도 되게 잘 갖춰졌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요즘 (유)기상이 형 같이 공격 수비 둘 다 잘한다라는 말처럼요(웃음).”

중학교 시절부터 이규태는 노력으로 시간을 메꿨다. 자신의 단점을 그대로 두지 않고 꾸준히 연구하며 보완해왔고, 더 많은 연습량으로 한계를 돌파했다. 그래서일까. 프로필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주저함 없이 술술 써 내려갔다. 이는 곧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성 좋고 막기 어려운 선수”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붙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사진_이규태 제공,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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