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기관 vs 보험사 이익 대변" 보험개발원 역할 놓고 입방아

지난 2018년 보험개발원 13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 실손의료보험 간편청구 시연 및 간담회' 당시 사진. (사진=보험개발원)

보험업법 개정안 체제에서 환자 정보를 전달할 보험개발원을 두고 설전이 오가고 있다. 보험회사들이 출자했지만 공적 역할을 한다는 정부 측 주장과 보험회사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시민단체 의견이 대립각을 세우는 모양새다.

26일 국회,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바꾸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보험 계약자나 피보험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정당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병원 등 요양기관이 진료비계약서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자 방식으로 보험사에 제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금 청구 서류는 전문중계기관을 거쳐 보험사에 전달된다. 전문중계기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진다. 개정안 논의 초기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전문중계기관으로 거론됐으나 여러 반발에 부딪혔고, 보험개발원이 최종 낙점됐다.

의료계와 소비자단체,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이 전문중계기관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는 가운데 보험개발원의 지위와 역할이 도마에 올랐다.

도화선은 전날 열린 보험업법 개정안 긴급 토론회였다. 이 자리에는 개정안에 반대하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의 단체가 참여했다. 정부 측에선 금융위원회가 자리했다.

이날 신상훈 금융위 보험과장은 전문중계기관을 두더라도 실손보험 청구 과정에서 환자의 모든 전자의무기록(EMR) 데이터가 보험사에 넘어가는 것은 아니라며 보험개발원이 공적 기관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심평원이나 보험개발원처럼 공적인 역할을 하는 주체들을 (전문중계기관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를 지켜보던 이들은 신 과장 발언이 나오자 보험개발원은 공공기관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에 신 과장은 "보험개발원은 공공기관이 아니다"면서도 "보험법에 따라 지정된 기관으로 공적 기능의 일부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금융감독원도 결국 금융회사들이 낸 부담금으로 운영하는 기관이지만 공적 기능을 수행하며, 금융보안원, 신용정보원도 마찬가지"라고 부연했다.

금융위 당국자의 해명에도 토론회에선 성토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토론회 말미 발언 기회를 얻은 한 의사는 "보험개발원이 공적 기관이라면 삼성화재 같은 재벌 회사의 임원이 보험개발원 임원이 될 수 있느냐"고 따져물었다.

지난 1983년 창립한 보험개발원은 보험요율 산출, 통계, 자동차보험 차종별 등급, 손해보험 연구조사 전문기관이다. 보험업법 제176조를 보면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에 충당되는 보험료를 결정하기 위한 요율을 산출하고 보험 관련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이용하기 위해 금융위의 인가를 받아 보험요율 산출기관을 설립할 수 있다. 같은 법 제180조를 보면 보험요율 산출기관에는 사단법인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현재 보험개발원 임원진은 허창언 원장과 박진호 부원장을 포함해 비상임이사, 비상임감사, 집행임원으로 구성됐다. 이 중 비상임이사는 공익대표와 사원대표로 나뉜다. 공익대표 비상임이사에는 정동영 한국소비자원 부원장, 김정욱 매일경제 상무, 성주호 경희대 교수, 강종구 법무법인 케이원챔버 변호사가 포진했다. 사원대표 비상임이사는 편정범 교보생명 사장, 김성한 DGB생명 사장,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 김재영 하나손해보험 사장 등 모두 보험회사 사장으로 꾸려졌다. 이 밖에 임재환 DB손해보험 상무는 비상임감사로 이름을 올렸다.

역대 보험개발원 임원진을 살펴봐도 보험회사 출신 인사는 다수다. 박성욱 5대 원장을 비롯해 강영구 9대 원장, 김수봉 10대 원장, 성대규 11대 원장, 강호 12대 원장이 대표적 예다. 이 가운데 9~11대 원장은 모두 퇴임 이후 보험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각각의 이력을 보면 강영구 9대 원장은 2013년 퇴임 이듬해부터 롯데손해보험 사외이사를 거쳐 메리츠화재 윤리경영실 사장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18대 한국화재보험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김수봉 10대 원장 역시 퇴임 이듬해인 2017년 알리안츠생명 부사장, ABL생명 부사장을 거쳐 현재는 동양생명보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성대규 11대 원장은 2019년 원장직에서 내려온 직후 신한생명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이후에는 신한라이프 사장으로 근무하다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보험개발원은 보험사가 담합할 수 있는 보험료를 결정한다"며 "민간 보험사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전진한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최근 열린 또 다른 토론회 당시 보험개발원이 보였던 입장을 근거로 공적 기관이 아니라고 일갈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따르면 지난 17일 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에서 건강보험자료 제공 가이드라인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이 가명 처리한 공공 데이터를 민간 보험사에 제공하는 건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전 국장은 "정부가 건보공단과 심평원 데이터를 환자 동의 없이 가명 처리해 민간 보험사에 제공하려 하는데 토론 인사 대다수는 반대한 반면 보험회사들과 보험개발원만 찬성했다"며 "보험개발원은 보험회사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단체라는 점이 이 대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