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을 퓨처스에서 버텼다. 드래프트 지명도 받지 못한 채 육성선수 신분으로 입단해 최저연봉 3000만 원을 받으며 2군 타석을 지켰던 선수가, 지금 KIA 타이거즈 1군 라인업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 됐다. 박상준(24)이다. 스코어보드보다 타석 내용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선수, 기록보다 가능성이 앞서 보이는 선수라는 말은 보통 평가가 후해졌을 때 나오는 수식어다. 그런데 박상준은 이제 숫자로도 말하기 시작했다. 타율 0.311, OPS 0.870, 선발 출전 4경기 팀 전승. 감정 서사가 아닌 팩트로 주목받을 시점이 됐다.

박상준의 이력은 단순하지 않다. 세광고를 졸업했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단 한 팀도 호명하지 않았다. 강릉영동대를 거친 뒤 KIA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2군에서 방망이를 돌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1군 콜업이나 관심을 받는 일 자체가 드물었던 시간이 5년 가까이 이어졌다. 연봉은 최저 기준인 3000만 원이었다.
반전의 실마리는 올 시즌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였다. 이범호 감독이 당시부터 박상준을 주목했다고 알려졌다. 시즌 초반 주전 1루수 경쟁은 오선우가 앞서는 구도였다. 그러나 오선우와 윤도현이 초반부터 기대를 밑돌았고, 외국인 1루수 카스트로마저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공백이 생겼다. 박상준은 이 틈을 기다렸다기보다 준비된 채로 맞이했다는 표현이 맞다.

첫 번째 콜업은 4월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무서웠다"고 표현할 만큼 1군의 무게가 컸다. 기록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2군에서 타율 0.394를 기록하며 재정비했고, 5월 재입성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타자처럼 움직이고 있다. 사직 원정에서 부산 팬들의 함성에 귀가 멍했고, 대구에서는 분위기에 압도돼 4회쯤 돼야 정신이 돌아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선수가, 지금은 팀의 최우선 우투수 플래툰 카드로 자리잡고 있다.
타격 스타일의 배경도 짚어둘 만하다. 박상준은 세광고 시절 최형우의 폼을 모델로 삼기 시작했다. 당시 레슨장에 삼성 출신 코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최형우처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78cm, 104kg의 체형에서 나오는 스윙은 간결하면서도 순간 폭발력이 있다. 하체와 힙 회전을 기반으로 하는 타격 메커니즘으로, 크게 돌리지 않고도 타구가 강하게 뻗는 스타일이다.

5월 재콜업 이후 박상준의 기록은 구체적이다. 타율 0.311, OPS 0.870.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산한 OPS가 0.87을 넘긴다는 건 타석 효율 면에서 상당한 수준이다. 최근 선발 출전 4경기에서 팀은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해당 기간 17타수 7안타 3타점을 기록했다.
5월 19일 광주 LG전에서는 데뷔 첫 홈런을 신고했다. 선발 앤더스 톨허스트를 상대로 1회에 쏘아올린 솔로포는 비거리 138.7m, 타구속도 184.1km/h였다. 팀은 14대 0으로 이겼다. 선구안 지표도 유효하다. 첫 콜업 당시 약 2주 만에 6개의 볼넷을 골라낼 만큼, 1군 투수들 상대로도 공을 보는 능력을 발휘했다.

수비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신장이 크지 않은 1루수는 리치나 수비 범위 면에서 약점이 지적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포구 안정성이 예상을 웃돌았다. 다리를 벌리며 짧은 송구를 잡아내는 유연성과 반응 속도가 내야수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 최희섭 이후 가장 안정적인 포구라는 평가가 나오는 맥락이 여기에 있다.
박상준이 지금 주목받는 이유를 기록만으로 설명하면 절반 이상을 놓친다. KIA는 수년째 1루 고민을 반복해왔다.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높았고, 국내 자원이 이 포지션을 장기적으로 책임진 사례가 드물었다. 팬들도 이 패턴을 잘 안다. 유망주가 반짝 활약 뒤 이름이 사라지는 과정을 여러 번 지켜봐서다. 그래서 쉽게 확신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박상준에게 "이번엔 다를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기록보다 타석 내용이 먼저 설득하기 때문이다.

선구안이 있는 타자는 슬럼프가 와도 완전히 무너지는 빈도가 낮다. 억지로 방망이를 내밀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공략 패턴을 바꾸더라도 적응의 여지가 생긴다. 반면 힘만 앞세운 타자는 분석이 축적될수록 약점이 노출된다. 박상준은 전자에 가깝다는 게 현장과 팬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금 이 시점에 박상준이 주목받는 데는 타이밍의 측면도 있다. 박재현이 어깨 통증으로 잠시 이탈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젊은 선수가 구멍을 메우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단순히 한 명이 활약하는 것보다, 팀 내 젊은 자원이 연쇄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흐름이 감지될 때 팬들의 관심은 증폭된다. KIA가 수년간의 세대교체 진통 끝에 내부 자원으로 라인업을 채울 수 있다는 기대가 이 흐름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물론 과제는 분명하다. 좌투수 대응이다. 현재는 우투수 상대 플래툰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고, 좌완의 구위와 변화구 조합에는 아직 적응이 완전하지 않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역할 확장에 한계가 생긴다. 다만 선구안 기반 타자가 경험을 쌓으며 좌완 대응도 발전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지금 당장의 플래툰 제약을 영구적인 한계로 단정하기보다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점을 지켜보는 게 더 정확한 시각이다.
KIA 입장에서 이상적인 구도는 이미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박재현이 외야 한 축을 맡고, 박상준이 1루를 책임지는 그림이다. 두 선수 모두 스카우트의 각광을 받지 못한 채 팀 안에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부 영입이나 대형 FA 계약 없이 내부 자원으로 1군 타선을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 선수가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게 성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시즌은 아직 반환점을 돌지 않았다. 상대 팀 분석도 본격화될 것이고, 긴 여름을 거치며 체력과 집중력이 시험받는 시간도 온다. 박상준이 현재 수치를 어느 선까지 유지하느냐, 그리고 좌투수라는 변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이 선수의 최종 가치를 결정하게 된다. 지금 기대치를 갖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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