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의 둔(遯)과 미제(未濟)

창업 35년에 K뷰티 주역에서 가족분쟁 기업으로

핵심은 상속주식 ‘부담부 증여’ …입증 쉽지않아

윤회장 승소 땐 콜마그룹 지배구조 큰 변화 예고

‘주역’ 64괘 중에서 33번째 괘는 ‘천산둔’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둔’(遯)입니다. 우리가 흔히 은둔이라고 말할 때 쓰는 바로 그 ‘둔’입니다. 당연히 물러난다는 뜻이 포함돼 있습니다. 주역에서는 은둔하고 물러나는 것을 아름답고 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동시에 행복이자 길운이라고 설명합니다. ‘천산둔’ 괘에서는 은둔하기를 좋아한다는 뜻의 ‘호둔’(好遯), 물러날 때를 알고 떠나는 아름다운 은둔이라는 뜻의 ‘가둔’(嘉遯),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의 삶을 사는 여유로운 은둔이라는 의미의 ‘비둔’(肥遯) 등 세 가지 은둔을 제시합니다.

호둔, 가둔, 비둔 세 가지 중에서 가장 경지가 높은 것은 무엇일까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적절한 때에 떠나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특히 큰 성취를 이룬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에서 나이가 들면 이미 얻은 것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올라가기도 어렵지만 내려오기는 더 어렵습니다.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의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으로 세계적인 K-뷰티 열풍을 이끈 콜마그룹이 창업 35주년을 맞은 올해 4개월째 가족 간 분쟁 중입니다. 처음에는 윤상현 콜마홀딩스 부회장과 윤여원 콜마비앤에이치 대표 간 남매 갈등에서 시작됐으나 창업자이자 두 남매의 아버지인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까지 가세하면서 분쟁은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고, 그룹의 미래를 예측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호둔·가둔·비둔 중 최고 경지 은둔은

윤동한 회장은 2019년 8월 한·일 경제 전쟁 당시 월례 조회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여성들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긴 극우 동영상을 상영해 큰 파장을 일으켰고, 그 결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그해 말 윤 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콜마홀딩스 주식을 윤상현 부회장과 윤여원 대표 부부에게 대략 3대 1의 비율로 증여했습니다. 그룹의 지주사인 콜마홀딩스의 1대 주주가 윤 회장에서 윤 부회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콜마홀딩스는 건강기능식품 회사인 콜마비앤에이치 지분 44.6%, 화장품 및 바이오의약품 회사인 한국콜마 지분 26.3%를 보유함으로써 윤 회장 대신 윤상현 부회장이 그룹을 총괄하는 구조로 지배체제가 정비됐습니다. 현재 콜마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윤상현 부회장으로 31.7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다음은 윤여원 대표 부부(10.62%), TOA(옛 일본콜마 7.8%), 달튼인베스트먼트(5.69%), 윤동한 회장(5.59%) 순입니다. 나머지 38.55%는 기관 및 소액주주들 몫입니다.

이보다 앞서 2018년 9월 윤 회장과 두 남매는 향후 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경영합의서’를 체결했습니다. 윤 부회장이 콜마홀딩스와 한국콜마를 통해 화장품, 제약 및 그룹 운영을 책임지고 윤여원 대표는 콜마비앤에이치의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맡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윤 회장이 2세들에게 지분 증여를 마치고 남매 간 역할 분담까지 명시한 경영합의서까지 체결함으로써 콜마그룹은 승계 작업이 완벽히 마무리된 듯 보였으나 6년 만에 분쟁에 휘말리게 됐습니다. 분쟁의 시작은 지난 4월 윤상현 부회장이 7년 전에 약속한 ‘경영합의서’를 깨고 자신과 대리인을 콜마비앤에이치의 사내이사로 선임하려 나서면서 비롯됐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콜마비앤에이치의 실적 부진이었습니다.

역할분담 합의서 불구 분쟁 발생한 이유

콜마비앤에이치의 사내이사 선임을 둘러싸고 남매 간 법적 갈등이 심화되자 윤동한 회장이 나섰습니다. 지난 5월 콜마그룹 창립 35주년 행사에서 윤 회장은 화장품과 제약은 윤상현 부회장이, 건강기능식품은 윤여원 대표가 맡기로 했던 경영합의서 상의 약속을 환기하며 그 결정에는 변함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어 자신이 윤 부회장에게 증여한 주식 230만 주에 대한 반환 청구 소송도 제기했습니다. 남매 간 역할 분담을 전제로 한 경영합의서가 깨진 만큼 증여도 무효이며 주식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게 윤동한 회장 입장입니다.

윤 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달 말에는 본인과 윤여원 대표 등 10명을 윤상현 부회장이 지배하는 콜마홀딩스의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내용의 임시 주주총회 소집 허가를 법원에 신청했습니다. 이는 윤 부회장이 임시 주총을 열어 동생이 지배하는 콜마비앤에이치의 경영권을 빼앗으려 하자 그에 맞서 대응한 조치입니다.

윤 회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나는 아들 편도, 딸 편도 아닌 오로지 회사의 편을 드는 것입니다. 콜마의 명예와 임직원의 노고가 훼손되지 않도록 끝까지 법의 심판을 받겠습니다. 1990년 콜마를 창업하고 신의와 성실을 원칙으로 기업을 일궈 왔으며 콜마의 경영 철학과 정신이 남매에게 온전히 전해졌으리라 믿고 경영권을 위임했는데 아들은 그 믿음과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윤상현 부회장은 콜마비앤에이치의 계열 분리를 위한 지시를 모두 거부했고 이전의 합의를 파기했습니다. 수십 차례 설득했지만 끝내 임시 주총 개최 소송을 강행하는 등 상상도 못 한 선택을 했습니다. 소송도 대화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문제를 바로잡아 나갈 것입니다.”

특히 윤 회장은 윤상현 부회장을 상대로 한 주식 반환 청구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회사의 지배구조를 재정비하고 지분을 공적 자산처럼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가족경영이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고, 유한양행을 모델로 삼아 재단을 중심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창업주 윤동한 회장과 콜마홀딩스 1대 주주 윤상현 부회장의 분쟁은 윤 회장이 제기한 증여 주식 반환 청구 소송이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윤 회장은 윤 부회장이 남매 간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한 2018년 9월의 경영합의서를 깼기 때문에 이를 전제로 실행된 2019년 말의 주식 증여 역시 당연히 무효라는 주장입니다.

윤 회장이 생각하는 이상적 지배구조

윤 회장의 주식 반환 청구 소송의 핵심은 이 증여가 3자 간 경영 합의를 전제로 한 이른바 ‘부담부 증여’인지, 아니면 단순 증여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윤 회장은 당연히 부담부 증여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률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현실적으로 윤 회장이 승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윤 회장이 소송에서 이기려면, 예를 들어 주식 증여 계약서에 1년 전에 체결된 ‘경영 합의서’를 위반할 경우 증여를 취소한다는 등의 조항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어야 합니다. 법조계에서는 윤 회장이 이를 적극적으로 입증해야만 승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따라서 경영 합의서와 주식 증여 계약서가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별도로 체결됐다면 윤 회장이 증여한 주식을 다시 돌려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윤 회장 측이 주식 증여 계약이 두 남매 간 경영 역할 분담을 전제로 체결된 것임을 입증해 설령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윤 부회장 측이 계속 싸우겠다고 버틴다면 향후 콜마그룹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주식 반환 청구 소송에서 윤 회장이 승소할 경우 윤 부회장의 지분은 31.75%에서 18.93%로 줄어들고 윤 회장의 지분은 5.59%에서 18.41%로 늘어나지만, 윤 부회장을 지지하는 달튼인베스트먼트(5.69%)와 소액주주들이 가세할 경우 분쟁의 향방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창업주 윤 회장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윤 회장은 본인이 승소할 경우 콜마그룹의 지배구조를 유한양행을 모델로 하여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공적 자산화 등을 추진할 생각임을 시사했습니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며, 기업의 진정한 소유주는 사회라는 철학을 강조했던 유한양행의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의 정신은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본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대한민국 기업 지배구조의 정답은 아닙니다.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법조계가 전망하는 분쟁 소송 결과는

오너경영이나 가족경영이라고 해서 모두 실패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고, 전문경영인 체제라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대리인 비용(agency cost)’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수반합니다. 유한양행도 초기의 명성에 비해 전문경영인 체제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오히려 성장과 발전이 정체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유한양행은 콜마그룹의 해답도, 비전도 아닙니다.

윤 회장 입장에서는 집안의 전통을 존중해 장남인 윤 부회장에게 딸 윤 대표에 비해 지분 기준으로는 3배, 사업 규모로는 6배 이상을 넘겨줬는데도 장남이 동생이 지배하는 콜마비앤에이치까지 넘보며 욕심을 부리는 것이 대단히 못마땅할 것입니다. 자본시장에서 윤 부회장에 대한 평가 역시 이 같은 점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시각을 바꿔 보면, 윤 대표가 오너가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었다면 이렇게 경영성과가 나쁜 상황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윤 대표가 콜마비앤에이치를 경영하며 주요 의사결정을 콜마홀딩스나 윤 회장과 사전에 협의해왔다고 하더라도, 2020년 7만 원을 넘었던 주가가 최근 1만 원대로 추락했다면 책임지는 것이 상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이었다면 결코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주역’ 64괘 중 33번째인 ‘천산둔’으로 돌아가 호둔·가둔·비둔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지를 묻는다면 물러날 때를 알고 떠나는, 아름다운 은둔이라는 뜻의 ‘가둔’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윤 회장도 이번 윤 부회장과의 분쟁을 겪으면서 ‘가둔’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셨으면 합니다. 혹여 공자가 경고한 대로 나이가 들어 이미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성찰해보시길 바랍니다.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윤 회장은 주식 반환 청구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설령 승소하더라도 윤 부회장이 버틴다면 콜마그룹은 오랜 기간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자칫하다간 탐욕스러운 사모펀드에 콜마그룹이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윤 회장이 승소해 그룹의 지배구조를 유한양행 방식으로 전환하더라도 그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전문경영인이 주인과 회사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할 때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정교한 장치를 마련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생도 기업도 역사도 모두 미완성

다시 주역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64괘의 마지막은 ‘화수미제’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미제(未濟)’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마지막이 완성이 돼야 할 것 같지만 주역에서는 ‘미제’, 곧 ‘미완성’을 말합니다. 인생도, 기업도, 국가도, 역사도 완성된 것은 없습니다. 당연히 콜마그룹도, 윤 회장의 인생과 기업인으로서의 성과도 아직은 미완성입니다. 그렇다면 윤 부회장은 더욱 미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게 온전함을 기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윤 회장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전문 연구가입니다. 윤 회장만큼 이순신 장군에 대해 해박하고 그의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윤 회장은 이순신 장군이 악조건 속에서도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것은 타인의 의견을 듣고 활용하는 ‘경청의 힘’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윤 회장이 가족 간 분쟁을 해결하는 데도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이 ‘경청’일 것입니다. 윤 회장이 가까운 측근들뿐 아니라 멀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셨으면 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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