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반장하신 할머니, 최고에요!” 초등학교 졸업장 받은 어르신들

정해민 기자 2023. 2. 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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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성인 문해교육 기관 ‘늘푸름학교’ 졸업식 현장
8일 오전 영등포구 성인문해 기관 '늘푸름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이 환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다./박상훈 기자

“창피해서 어디에 말도 못하고 3년 동안 숨어서 공부 했는데, 오늘 경사가 터졌네.”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청 별관에서 열린 성인 문해교육 기관 ‘늘푸름학교’의 졸업식에서 만난 김명란(84)씨가 졸업을 축하해주러 온 가족 10여 명을 둘러보며 말했다. 김씨는 최고령 졸업자로 3년 동안의 초등학력 과정을 마치고 이날 졸업했다.

3년 중 대면 수업을 한 마지막 1년 동안 김씨는 오전 9시 30분 등교 시간을 지키기 위해 매일 오전 7시20분 집을 나섰다. 동작구 김씨 집에서 영등포구 늘푸름학교에 오려면 대중교통 환승을 2번이나 해야 됐다. 김씨는 “아침에는 버스나 지하철이나 ‘콩나물 시루’라 오는 게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못 배운 내가 이런 데(늘푸름학교)를 만났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각 한 번 안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김씨의 장남 한기철(64)씨는 “한국 전쟁을 겪으며 스스로를 지키느라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어머니가 공부를 시작한 것이 우리 가족의 큰 행복이 됐다”며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하신 어머니가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고 했다.

늘푸름학교는 영등포구에서 운영하는 성인 문해교육 기관이다. 2015년에는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초등학력문해교육프로그램 운영 기관으로 지정 받았다. 2016년 1회 졸업 이후로 이번이 초등과정 7회, 중등과정 3회 졸업식이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을 교장으로 약 20명의 교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18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지만 주로 김씨와 같은 중장년층들이 숨겨왔던 배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늘푸름학교를 찾는다. 3년 동안의 교육과정을 마치면 초등·중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이날 졸업식에는 졸업생 40명(초등 졸업자 23명, 중등 졸업자 17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식은 활동 영상 시청, 졸업장 수여 및 기념 촬영, 축하 말씀, 졸업생 소감 발표, 가족 대표 편지 낭독 순으로 이어졌다. 활동 영상 시청이 끝난 후에는 “할머니 3년동안 반장 하셨다는데 할머니 최고에요” “숙제할 때 그것도 모르냐고 잔소리 많이 했는데 미안하네” 등 가족들의 애정 어린 응원이 담긴 깜짝 영상 편지가 재생되기도 했다. 영상 하나가 끝날 때마다 졸업생 자리에서는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졸업생 대표 이향옥(62)씨는 소감 발표에서 “이제 우리도 남들처럼 학교생활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동창이 생겼습니다”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도 꿈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의 꿈을 들어보실래요?”하고 이씨의 소감이 마무리되자, 졸업생 5-6명이 한 명씩 일어나 자신의 꿈을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처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소질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민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겠습니다. 아자!”

“저는 건강을 회복하면 꼭 고등학생이 되겠습니다!”

“저는 봉사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저처럼 글 못 배운 사람들에게 봉사하겠습니다.”

“저는 아직 꿈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끝까지 공부하겠습니다.”

폐회식에는 늘푸름학교 강당에 졸업식 노래가 울려퍼졌다. 졸업생들은 졸업식 안내 책자에 적힌 가사를 직접 읽으며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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