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의 지난 시즌과 베니스 영화제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선보인 파격적인 스타일이 이번 2023년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 곳곳에서도 눈에 띄었다.

올가을, 티모시 샬라메(Timothée Chalamet)는 그의 새로운 식인종 영화 '본즈 앤 올(Bones And All)’로 베니스 영화제 레드카펫에 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의 붉은색 홀터넥 수트를 입고 등을 훤히 드러낸 채 등장했다. 한동안 인터넷은 그의 파격적인 의상으로 인해 떠들썩해지기도 했다. 혹자는 그의 패션을 보고 제시카 래빗(Jessica Rabbit)의 남성 버전이나 대피 덕(Daffy Duck) 밈을 떠올렸고, 또 다른 이들은 ‘나니아 연대기’의 툼누스(Mr. Tumnus)나 자신의 65번째 생일을 맞아 한껏 꾸민 유럽의 나이 든 여성을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티모시와 같은 남성이 레드 카펫에서 맨 등을 드러낸 것이 완전히 새로운 일만은 아니다. 최근 시즌을 살펴 보고 있자면, 남성복의 섹시한 미학이 패션계를 완전히 장악한 것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다. 오늘날 한껏 드러난 남성의 맨 등은 많은 이들에게 섹시한 노출로 여겨짐과 동시에, 디자이너들에게는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트렌드는 올해 1월, 킴 존스(Kim Jones)가 선보인 디올(Dior)의 2022년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에서 본격적으로 눈에 띄기 시작했다. 쇼의 오프닝을 장식한 모델은 올 블랙 니트웨어와 몸에 꼭 맞는 하이 웨이스트 바지, 보석으로 장식된 신발, 블랙 가죽 베레모 등 전형적인 프랑스 스타일의 옷을 걸친 채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옷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어둡고 신비로운 에너지는 칼라부터 허리까지 트여있어 등이 훤히 드러나는 슬릿 디테일로 상쇄되었다.
디올 쇼 이후로 남성의 맨 등을 드러내는 트렌드는 2023년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를 완전히 장악했다. 노 세소(No Sesso)는 흰색의 두꺼운 캔버스 천으로 이루어진 후드로 모델의 머리와 가슴을 감싼 뒤, 그의 등과 어깨를 완전히 노출시키기도 했다.

2017년부터 화려한 크리스털로 무장해온 섹시한 젠더리스 브랜드 루도빅 드 생 세르넹(Ludovic de Saint Sernin)의 모델들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브래지어와 반짝이는 홀터넥 스퀘어 톱, 몸을 감싸는 베이비돌 드레스를 걸친 채 런웨이를 장식했다.
2023년 봄-여름 뉴욕 패션 위크에서 피터 도(Peter Do)는 런웨이에 케이팝 보이그룹 NCT의 제노를 내세워 오픈 버튼 셔츠, 넉넉한 품의 실크 팬츠, 각진 플랫폼 부츠와 블레이저처럼 앞에서 보기에는 다소 심플한 룩으로 쇼의 막을 올렸다. 모두 피터 도가 기존에 선보이던 아름다우면서도 단순한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우아하고 섹시한 비즈니스 룩이었다. 하지만 반전은 다름 아닌 제노의 뒷모습에 있었다. 등이 훤히 뚫린 블레이저는 가죽 벨트로 고정되어 마치 비키니 톱처럼 두 개의 끈으로 묶여 있었고, 컷 아웃된 부분은 셔츠의 프릴로 둘러싸여 있었다. 제노의 파격적인 룩은 피터 도가 에너지 넘치는 쇼의 막을 올리기에 더없이 완벽한 룩이었다.
영국 패션계의 떠오르는 스타이자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의 석사 졸업생인 애런 에쉬(Aaron Esh)는 과거에 “성숙한 관능미”가 물씬 풍기는 옷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2023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등이 깊이 파인 홀터 조끼를 입은 채 맨 등을 훤히 드러냈다. 이처럼 두 디자이너의 파격적인 옷은 '앞모습은 비즈니스, 뒷모습은 파티’를 연상케 했다.
인터넷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이러한 급진적인 트렌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파격적인 등 노출에는 분명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 겉으로는 말끔하게 턱시도를 차려입은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알고 보면 변태적인 속옷을 입고 있다는 밈처럼 말이다. 단순히 흥미롭거나 음란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곤 했던 기존의 컷아웃 스타일과 달리, 옷의 뒤쪽에 포인트를 더하는 방식에서는 올드스쿨스러운 관능미마저 느껴진다. 애론의 '성숙한 관능미’와 피터 도의 뮤즈로부터 느껴지는 자신감은 마치 옛날 헐리우드 영화 속 에로틱한 장면에서 찾아볼 법한 에너지와 닮아있다. 영화 속에서 잠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연인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채 침대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연인은 셔츠를 벗어 던진 채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미 여성복 사이에서는 만연한 등 컷아웃 트렌드를 남성복이 따라잡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법. 남성들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여성들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패션 해설가이자 모델 브렌다 바이셔(Brenda Weischer)는 등이 훤히 드러난 피터 도의 가죽 코트에 끈 팬티가 드러날 정도로 엉덩이가 파인 드레스를 매치했다. 줄리아 폭스(Julia Fox)는 밀라노에서 파격적인 안드레아 아다모(Andreādamo) 룩을 선보이기도 했다. 과연 티모시가 등을 훤히 드러내는 남성복 트렌드에 불을 지필 수 있을까?
에디터 Tom George
샤넬, 꼼데가르송을 즐겨 입는 배우 윤여정의 아이코닉 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