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 “자민·공명 연립여당 과반 붕괴 확실”
27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하원·465석)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자 보수주의 정당인 자민당이 현재의 단독 과반 의석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로 2012년 이후 이어진 ‘자민당 1강(强) 독주’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정권 유지의 마지노선인 공명당과의 연립 여당마저 과반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자민당 총재)의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오후 8시에 NHK가 발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자민당은 이번 총선 결과, 현재 247석에서 급감한 153~219석을 확보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과반 기준(233석)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다. NHK는 “자민당의 단독 과반 확보 실패는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자민당과 연립 여당을 이루며 현재 의석수 32석인 공명당은 21~35석이 예상됐다. 자민·공명당 연립 여당의 예상 의석수가 174~254석으로, 최종 개표 결과 과반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요미우리신문과 니혼TV의 공동 출구조사에선 자민당·공명당의 예상 의석수가 각각 182석과 27석(총 209석)에 불과하다고 나와 과반을 밑돌 것으로 예상됐다. 개표 중인 28일 0시30분 현재, 자민당과 공명당은 각각 161석과 20석 당선을 확정했다. NHK는 이 시점까지의 개표 결과를 토대로 “자민·공명 연립 여당의 과반 붕괴가 확실하다”고 전했다. 일본 여당이 과반에 못 미치는 의석에 그치는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NHK 출구조사에서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이전보다 의석수를 크게 늘린 128~191석으로 약진이 예상됐다. 현재 98석에서 대폭 늘어난 것이다. 28일 0시30분 현재 이미 134석을 확보했다.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정권 교체만이 진정한 정치 개혁”이라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출구조사 결과 발표 후 “유권자의 엄중한 심판을 받았고, (선거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겠다. 일본 언론 사이에선 여당의 과반 붕괴 시 이시바가 단명 총리로 끝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자민당은 2012년 정권 탈환에 성공한 이후에 치러진 네 차례 총선에서 연이어 단독 과반을 확보해 왔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의석까지 합치면 야당의 협조 없이도 모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절대 안정 다수’(261석 이상) 지위를 누렸다. 여기에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100석도 차지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야당의 이념 성향도 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일본공산당·레이와신센구미 등 제각각이라 사실상 ‘자민당 1강 체제’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이 같은 자민당의 장기 독주에 결정타가 됐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 1강 시대는 끝났다”고 보도했고, 아사히신문은 “이번 총선에서 약진한 입헌민주당이 자민당의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았고, 이에 따라 야당과 협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NHK 출구조사에서 야당이면서도 자민당보다 보수 성향이 강한 일본유신회는 소폭 감소한 28~45석, 국민민주당은 20~33석, 일본공산당은 7~10석으로 예상됐다.
자민당은 지난해 불거진 이른바 ‘정치자금 스캔들’로 인해 중도·무당파 유권자의 외면을 받으며 인기가 하락했다. 정치자금 스캔들은 자민당의 일부 국회의원이 지난 5년간 각 파벌의 정치 행사 때 받은 현금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아 문제가 된 사건을 일컫는다. 이시바 총리는 비자금 문제에 연루된 의원 열두 명을 공천에서 배제했지만 유권자의 표심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최근 50% 이상 급등한 쌀값 등 일본이 경험하지 못한 고(高)물가 또한 서민층 유권자를 중심으로 자민당을 외면하게 한 원인이 됐다.
이번 선거는 지난 1일 출범한 이시바 내각의 신임을 묻는 성격도 있었기 때문에, 자민당의 과반 획득 실패는 이시바에게도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이시바 총리는 취임 8일 만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 실시를 발표했다. 당초 자민당 의원들은 이시바 신(新)정권 출범에 따른 국민의 기대가 순풍이 되리라고 예상했지만, 정작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33%(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 그치며 반등에 실패했다. 출범 초기 내각의 지지율로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급해진 이시바 총리는 총선 유세 기간 중 최북단 홋카이도에서 남부 가고시마까지 1만1015㎞를 강행군하며 지지를 호소했지만 분위기를 뒤집지는 못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시바는 선거 승리를 위해 지론인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창설을 공약에서 제외하는 등 ‘이시바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안전 운전’을 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민심을 돌리지는 못했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시바 내각 각료 가운데 마키하라 히데키 법무상, 오자토 야스히로 농림상, 이토 다다히코 부흥상, 기우치 미노루 경제안보담당상, 사카이 마나부 내각부 특명대신 등 5명이 지역구에서 야당에 패해 낙선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들은 비례 후보로도 입후보해 ‘부활 당선’할 여지가 있지만 이시바 내각으로선 타격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현직 각료가 낙선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중량급의 다선 의원들이 주로 각료를 맡는 데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지역구 의원의 각료 입각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다. 자민당 정권에서 현직 각료의 낙선은 2000년 모리 요시로 내각 시절 이후 없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국회의원이 각료를 맡는 게 관례이기 때문에 낙선하면 각료 사퇴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한 강경 보수 성향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벌써부터 이시바의 총리 퇴임을 노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선거 캠페인 때 후보 120명을 지원 유세하면서 당내 강경 보수 성향 의원의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다. 반(反)이시바로 분류되는 아소 다로 자민당 특별고문이 다카이치에게 (곧 차기 총리를 노리기 위한) “때를 기다리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회자된다.
다만 연립 여당 과반이 무너지더라도, 자민당이 야당 연합에 정권을 뺏길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은 정치자금 문제로 공천을 못 받고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렀던 의원들이 당선되면 다시 받아들일 방침”이라며 “자민당과 정치 성향이 비슷한 무소속 후보도 추가 영입하는 등 선거 이후에도 의석수 확보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한편 이날 총선에서 자민당이 과반 의석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미·일 3국 협력 관계에도 적지 않은 변수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선거는 한일 관계 등에서 자민당 내에서 비둘기파(유화파)로 분류되는 이시바 총리의 신임 투표 성격도 띠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한파인 이시바 총리의 리더십 약화는 한일 관계 개선에선 적신호”라고 분석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이시바 총리의 리더십 손상은 한국에는 외교 자산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며 “(강경 보수인)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정국 주도권을 잡게 되면 미일 관계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한일 관계는 삐걱거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내달 5일 열리는 미 대선도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노선을 계승한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마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다면 한·미·일 안보 협력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이시바 총리의 영향력 약화,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은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에 ‘겨울’이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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