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https://gall.dcinside.com/running/574038
지난 글에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후기 기대하신 분들 위해 점심 시간 이용해 후기를 남깁니다.
1. 개인 스펙
키 178~9, 몸무게 현재 기준 78~80
나이: 86년생
운동 경험: 20초반부터 후반까지 취미 생활로 축구 또는 풋살 (주 포지션: 윙, 전성기 기준 100m 12초 대, 몸무게 70초반)
이후 흔히들 겪는 것 처럼 사회생활, 매일 음주, 결혼, 육아 참여 등으로 약 10년 간 정기적 운동은 X,
다만 같은 기간 동안 골프(제일 어려운 구기 종목 스포츠로 생각은 되나 진짜 운동은 아닌 것 같음)를 쳐서 구력 10년 정도(80후반대)
2. 러닝을 시작하게 된 계기
운동을 제대로 안 한 약 10년 동안 늘 진짜 운동, 특히 달리는 운동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 20대의 대부분을 공을 차면서 늘 개처럼 뛰어다닌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서 그런 것 같네요.
그러는 동안 저는 키 178~9, 몸무게 최고점 90kg, 평상시 80k 중반의 흔히 볼 수 있는 30대 후반 배불뚝이 애 아빠가 되어있습니다.
그 동안 온 몸은 여기저기 아팠는데(너무 많아서 생략)
한창 러닝붐이 시작 될 때도 SNS의 러너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며 부러움만 가득하다가 어떤 계기인지는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뭔가 이대로 가다간 끝이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여름 8월 즈음에 러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발장을 보니 러닝화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구 시내로 나가서 매장(나이키, 아디다스, 아식스, 뉴발란스 등)을 둘러보고 신어봐도 제가 신을 수 있는 마땅한 러닝화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발길이 260, 발볼이 11센치 넘는 펭귄발입니다. 또 당시에도 엄청난 러닝붐이 지속되고 있어서 재고도 별로 없더군요.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당근마켓에서 뉴발란스 트레이너v3(2e) 280사이즈를 좋은 판매자 러너분을 만나서 한번 신어보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 뒤부터 러닝을 본격적으로 하였습니다. 이후 뉴발란스 1080을 구매해 주로 신었습니다.
3. 러닝을 한 방법(트레드밀만 뛴 이유)
저는 어제 첫 마라톤 전까지 약 5개월 동안 야외에서 단 한번도 뛴 적 없이 오로지 제가 사는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 트레드밀만 뛰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핑계지만 그래도 육아에 참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뛸 수 있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동안 이동해야하는 야외보다는 아파트 커뮤니티 트레드밀에서
뛰는게 시간적, 공간적으로 가능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는 20대 때는 없던 햇빛알레르기가 30대부터 너무 심해져서 햇빛에 일정 시간 노출되면 피부가 모두 일어나서 병원에 다녀야 했습니다.(여름 골프 칠 때도 완전 무장)
세 번째는 시작부터 혼자서만 뛰었기 때문에 어떤 기준점이나 상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틈틈이 유튜브나 SNS를 즐겨보며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러닝을 처음 할때는 트레드밀 기준 7~8을 설정해도 제대로 뛸 수가 없어서 한 3~4주간은 트레드밀 기준 5~6을 놓고 몇 시간 동안 걷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 뒤부터는 경사치를 계속 높여서 걸었고, 어느 정도 뛸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트레드밀 기준 8정도 설정하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뛰기 시작한 건 9~10월 즘 인 것 같고 그 때는 트레드밀 기준 10~12를 설정하고 1~2시간 뛰었고, 11월 12월 즘엔 트레드밀 기준 11~12를 설정하고,
한번 뛸 때 적으면 1시간, 많으면 2~3시간 뛴 것 같습니다. 11~12월 달엔 월 300km정도 뛰었습니다.
1월부터는 레디샷에 남긴 글처럼 개인적인 일이 생겨서 러닝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2월 중순까지 약 1달 반 동안 매일 술(러닝 하기 전 생활)을 마셨습니다.
4. 대회 전
그러다보니 대구마라톤 일주일을 남겨두고 있더군요. 큰일 났다 싶어서 급하게 뉴발란스 홈페이지에서 뉴발란스 엘리트v4를 주문해서 도착하자마자
대회 전 주 일요일날 다시 아파트 커뮤니티시설 트레드밀에 가서 11로 설정하고 약 2시간을 뛰어보니
12월이랑 느낌상 큰 차이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도 30km 이상 장거리 연습을 해본 적 없기에 조급한 마음에 대회 3일전 목요일날 다시 아파트로 내려가 트레드밀을
10으로 설정하고 약 2시간 30분정도 쉼 없이 뛰었는데 속도가 워낙 느리게 설정해서인지 호흡이 그럭저럭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바로 후회했습니다. 약 1달 반동안
안뛰다가 갑자기 뛰어서인지 다리에 무리가 이미 가있더군요.
5. 대회 당일
새벽 6시에 일어나보니 여전히 다리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일찍 일어나 대구마라톤 간다는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자마자 집에서 먹을 수 있는 건
보이는대로(밥, 찜닭, 계란후라이 등) 먹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나 뛰다가 영양이 부족하거나 너무 배고플까봐)
지하철 타고 알파시티역에 내려서 스타디움까지 걸어가는 순간부터는 계속 기분이 좋고 벅차고 황홀했던 것 같습니다.
이 글 보시는 모든 분들이 이미 아시는 분위기이므로 느낀 긍정적 감정은 생략할게요.
준비는 많이 부족하나 그래도 첫 마라톤, 아침 똥은 반드시 누고 뛰겠다는 일념 하에 대회장에서 배변은 할 수 있었습니다.
6. 첫 마라톤 첫 풀코스 과정
저는 정말로 시작부터 끝까지 추웠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다른 기억보다도 너무너무 추웠습니다. 마라톤 내내 춥다는 생각 밖에 안한 것 같습니다.
따뜻하게 껴입은 다른 러너들을 보며 너무 부러웠습니다. 첫 마라톤 달리기야 준비가 이미 안되었으니 느릴 수 있지만 추워서 중도포기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달리기는 시작하자마자 알았습니다. 다리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시작하는 병목구간부터 뻐근하게 올라오더군요.
그래도 완주만 한다는 일념 하에 다른 아무 생각 없이 땅바닥만 보고 달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리의 수많은 응원하시는 분들과 기대했던 제가 늘 보고 살던 대구 풍경을
제대로 감상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거의 땅바닥만 보고 뛰었지만 솔직하게 정말 황홀했고 힘들지만 내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황홀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 같네요.
운동하며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입니다.
하프까지는 그런대로 달렸고, 정확히 하프부터는 걷고 뛰었습니다. 저는 하프이상을 제대로 뛸 수 있는 준비가 안되어있음을 사실 알면서도 스스로를 조금 속였는데 바로 들통이 났습니다.
또 변명이지만 첫 마라톤 첫 풀코스는 사점을 극복해야는 생각보다는 무리하지 않고 완주한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네요.
그리고 업힐에 대한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뛰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아~ 내 다리엔 업힐을 뛰기 위한 근육이 하나도 준비가 안되어있구나.
그래서 오르막길에는 걷고 내리막길에는 폴짝폴짝 다시 뛰었습니다. 그렇게 추위와 싸우고 무뎌진 다리를 끌다보니 어느덧 결승점에 도착해있었습니다.
시작부터 다리가 온전치 않은걸 알기에 무리를 하지 않아서 도저히 뛸 수 없거나 도중에 다리에 쥐나 경련이 오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래서 완주라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마라톤이라는 스포츠만 가진 매력 요소(사점 극복, 투혼, 러너스하이??ㅋㅋ 등)를 몇가지 더 못 느낀 것 같아 더 아쉬움이 남습니다.
7. 후기 (개인적으로 느낀 점)
첫째, 마라톤은 실외 스포츠이다(마라톤 연습, 러닝은 가급적 야외에서 직접 뛰자)
둘째, 마라톤은 가장 깨끗하고 솔직하며 멋진 스포츠이다(해본 운동(축구, 풋살, 유도, 헬스, 골프 등) 중 제일 재미있다)
셋째, 마라톤 당일 날 아침을 굳이 많이 먹을 필요가 없구나
넷째, 무거운 몸으로는 잘 뛸 수가 없구나
다섯째,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해서 적어도 내년 대마에서는 서브4를 해야겠다.
여섯째, 모든 러너들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