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대 100년 뿌리, 조선여자의학강습소에서 찾다

정광성 기자 2026. 5. 28.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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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한국 최초 여성 의학교육기관서 출발
신규환 여성의학사연구소장 “여성을 의학의 주체로 세운 역사”
[의학신문·일간보사=정광성 기자] 고대의료원이 오는 2028년 고대의대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의과대학의 출발점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했다.
고려대 여성의학사연구소 신규환 소장 / 사진제공= 고대의료원

고려대 여성의학사연구소 신규환 소장(의인문학교실)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고대의대가 2028년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며 "100년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여자의학강습소에서 시작된 여성 의학교육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지난 1928년 9월 4일 서울 창신동에서 17명의 여학생으로 시작한 한국 최초의 여성 의학교육기관으로 고대의대의 뿌리이자 여성을 의료의 '대상'에서 의학을 배우고 환자를 돌보는 '주체'로 세운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여성은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유교적 관습이 강했던 시대에 여성 환자가 남성 의사에게 몸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았고 질병을 미루거나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인물이 미국 의료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로 단순한 진료를 넘어 조선 사회 안에서 여성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여성 의료인을 길러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 소장은 "많은 사람이 당연히 여성도 의학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랫동안 여성 의학교육은 금기시되는 상황이었다"며 "한국 최초의 여성 의학교육기관은 1928년 설립된 조선여자의학강습소로 이 부분은 학계에서도 이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대의대의 역사가 조선여자의학강습소에서 경성여자의학강습소,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서울여자의과대학, 수도의과대학,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을 거쳐 현재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신규환 소장은 "대부분의 의과대학은 병원에서 출발해 의학교육을 실시한 경우가 많지만 고대의대는 의학교육기관으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며 "강습소에서 출발해 전문학교, 의과대학, 종합대학으로 발전한 긴 여정 자체가 고려의대 100년사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신 소장에 따르면 조선여자의학강습소의 역사는 로제타 홀 한 사람의 헌신으로만 완성되지 않았다. 로제타 홀이 1933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김탁원·길정희 부부가 학교 운영을 이어받았다.

김탁원·길정희 부부는 사재를 들여 강습소를 관철동으로 이전하고 정식 의학전문학교 승격을 위해 힘썼다. 이후 전남 순천의 자산가 우석 김종익이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설립기금을 기부하면서 1938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가 정식 개교하게 됐다.

그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의 설립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장거(壯擧)"라며 "학교 하나의 설립을 넘어 민족의 힘으로 의학교육의 미래를 세운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서울 창신동에 위치한 '조선여자의학강습소' 전경 (출처= 양화진기록관)

고대의대 100년사, 여성의학사연구소 중심으로 체계화

아울러 여학생 17명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시작해  현재 5개 캠퍼스, 교직원 1만명, 연 예산 2조원을 운영하는 초대형 의료기관으로 성장한 고대의대는 역사적 정체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지난 2022년 12월 여성 의료인의 역사적 경험과 의학에 관한 역사 연구를 수행하는 국내 최초의 전문 연구기관인 여성의학사연구소를 개소한 바 있다.

신규환 소장은 "여성의학사연구소라고 해서 여성과 관련된 것만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성 의료인과 여성 교육에 관한 연구를 중심으로 하되 한국 의료의 역사와 변화, 의료인의 정체성, 의료문화 전반을 역사적 관점에서 성찰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고대의대 100년사 관련 자료 수집과 아카이브 구축도 담당하고 있다. 의학박물관이 아직 별도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대메디사이언스파크 동화바이오관 1층 의학박물관 자료실을 중심으로 인물 자료와 사료를 관리하고 있으며 향후 의학역사관과 의학박물관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신 소장은 "체계적인 의학사 연구를 위해서는 자료 수집이 필수적"이라며 "조선여자의학강습소가 만들어진 1928년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 전후, 한국전쟁기, 경제 개발기에 이르는 자료들이 많이 유실된 만큼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고대의료원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향후 100년의 방향을 묻는 계기로 삼아 디지털 헬스케어와 AI 기반 정밀의료, 융합연구를 가속화하고 의학지식·술기는 물론 사회적 책무와 윤리의식을 겸비한 미래인재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