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4일, 현대차가 경기도 용인에서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와 함께하는 디자인 토크쇼를 진행했다. 인자한 웃음과 함께 등장한 주지아로는 현대디자인센터장 이상엽 부사장, 루크 동커볼케(Luc Donckerwolke) 현대차그룹 CCO(Chief Creative Officer)와 함께 현대 포니, 포니 쿠페 콘셉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었다. 특히 후반부에는 양산에 성공하지 못했던 포니 쿠페 콘셉트를 복원한다고 전해 이목을 끌었다.
글 최지욱 기자
사진 현대자동차, 최지욱


자동차 마니아라면 조르제토 주지아로라는 이름을 한 번 쯤 들어봤을 듯하다. 그는 수퍼카는 물론 대중성이 짙은 양산차까지 다양한 자동차를 디자인했다. 주지아로의 손길을 거친 국산차로는 대우 레간자, 라노스, 쌍용 렉스턴, 코란도 등이 있다. 현대차의 경우 ①포니 ②스텔라 ③쏘나타(Y1, Y2) ④포니 엑셀 ⑤프레스토 ⑥스쿠프 ⑦엑센트 등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력 또한 화려하다. 1955년 피아트에 입사해 4년 동안 특수 차종 설계 디자이너로 일했다. 1959~1965년에는 자동차 디자인 업체 베르토네(Bertone)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활약했다. 이후 기아(Ghia)로 자리를 옮겨 2년 동안 책임 디자이너 및 임원 자리를 맡았다. 이듬해에는 이탈디자인 주지아로를 설립해 2015년까지 운영했다. 현재는 이탈리아 디자인 회사 GFG 스타일의 설립자 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차와 주지아로의 인연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차는 포드와의 기술제휴 관계를 청산하고 미쓰비시로부터 엔진과 플랫폼 등을 받았다. 그러나 독자 개발 모델의 필요성을 느낀 정주영 현대차 회장은 주지아로가 있는 이탈리아 토리노(Torino)를 찾았다. 이후 주지아로를 우리나라에 초청한 정주영 회장은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자동차 디자인을 요청했다.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정주영 회장의 추진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지아로는 그때를 회상하며 “당시 한국은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였다. 때문에 정주영 회장의 요청에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울산에 갔더니 현대그룹이 큰 배를 만들고 있었다. 이때 처음 현대차의 의욕을 느끼고 정주영 회장의 부탁을 수락했다”고 덧붙였다.

현대차 내부에는 ‘현대 스피드’라는 은어가 있다. 디자인부터 프로토타입 제작까지 빠른 시간 안에 제작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상엽 부사장은 “현대 스피드라는 표현은 주지아로가 있던 시절부터 생긴 말인 듯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지아로는 엔지니어 50명과 협업해 포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부품을 조달하는 공급책이 많지 않았다. 프로토타입을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은 셈이었다. 그러나 주지아로 팀은 8개월 만에 포니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주지아로는 “당시에는 팀 내 인원이 많지 않아 모든 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문득 포니 프로토타입을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만든 비결이 궁금했다. 주지아로는 한 패널의 질문에 “기술자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과거에는 모든 프로토타입 제작을 사람이 직접 용접하고 다듬어야 했다. 나는 창의성이 디자인은 물론 엔지니어링에서도 나온다고 생각한다. 포니의 프로토타입은 디자인 팀의 열정과 엔지니어와의 협력이 시너지를 이룬 결과”라고 답했다.

주지아로는 포니 디자인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도 하나 공개했다. 1세대 포니의 앞모습을 보면, 좌우에 동그란 헤드램프를 두 개씩 달았다. 주지아로에 따르면, 포니 디자인 팀은 원래 직사각형 모양의 헤드램프를 넣을 계획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경험 및 공급책 부족으로 인해 구현하는 데 실패했다. 주지아로 팀이 원했던 사각형 헤드램프는 1982년 포니2를 통해 세상 빛을 봤다.
양산에 실패한 포니 쿠페 콘셉트, 49년 만에 다시 부활한다!

1974년 11월, 현대차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포니와 포니 쿠페 콘셉트를 최초로 공개했다. 그중 포니 쿠페 콘셉트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파격적인 디자인을 앞세워 많은 이의 이목을 끌었다.


포니 쿠페 콘셉트의 디자인은 48년이 지난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쐐기처럼 뾰족한 노즈와 동그란 헤드램프, 종이접기가 떠오르는 선, 큼직한 리어 쿼터 글라스가 조화를 이뤄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연출한다. 언뜻 보면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에 등장하는 드로리언 DMC 12(DeLorean DMC 12)의 잔상도 아른거린다. 주지아로는 “DMC 12의 외관은 포니 쿠페를 바탕으로 완성했다”라고 전했다.

안타깝게도 포니 쿠페는 양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설상가상 프로토타입과 관련 자료마저 어디 갔는지 없다. 그러나 포니 쿠페의 영혼은 지금까지도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차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7월 등장한 고성능 수소연료전지 하이브리드 롤링 랩(Rolling Lab) N 비전 74(N Vision 74)가 좋은 예다.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프로젝트에 대한 주지아로의 자세는 남달랐다. 그는 “과거의 열정을 갖고 디자인할 예정이다. 클레이 모델은 물론 프로토타입까지 직접 만들어 우리가 과거에 잃었던 포니 쿠페를 만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연필 노동인’이라고 부르는 조르제토 주지아로. 고령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디자인에 대한 열정은 젊은 디자이너 못지않았다. 포니와 포니 쿠페 콘셉트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로 현대차는 11월 중순부터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복원을 마친 포니 쿠페 콘셉트는 내년 봄 49년 만에 모습을 다시 드러낼 예정이다. 주지아로의 손에서 다시 태어날 포니 쿠페 콘셉트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