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배정 알고리즘 설명, 단협에 명시하기까지”

2022. 11. 22.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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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플랫폼업체와 첫 단협…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
지난 10월 26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 승차 호출 서비스를 운영하는 플랫폼업체 카카오모빌리티가 처음으로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단체협약은 법으로 다 정할 수 없는 ‘일터의 질서’를 노사가 합의해 결정한 것을 말한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일이니 대수로울 게 없다. 노사가 근로계약으로 엮여 있지 않은 플랫폼업계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이번 카카오모빌리티 노사의 단체협약 체결은 한국 전체 플랫폼업계를 통틀어도 역대 두 번째에 해당한다. 플랫폼 중에서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모빌리티 서비스로 범위를 좁히면 세계적으로도 노사가 단체협약을 체결한 사례가 거의 없다. 모빌리티 플랫폼이라는 거대 산업의 노사관계에 이정표가 될지도 모를 협약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온 것이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11월 15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효상 기자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이하 대리운전노조)이 카카오모빌리티의 상대방이 됐다. 구조적인 착취,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잘 알려진 대리기사들의 노조다. 기술 발전으로 가장 먼저 회사 밖으로 내몰린, 고용이 유연해질 대로 유연해진 직종이기도 하다. 한때는 한 업체에 고용돼 월급제로 일하는 대리기사들도 있었지만, 자동화시스템 도입 이후에는 뚜렷한 소속 없이 콜을 따내기 위해 여러 업체에 등록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현재는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일감을 따내는 이른바 ‘플랫폼노동자’다. 그 이름이 어떻든 ‘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지만 한국 법은 이들을 주 52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나아가 노동 3권이 적용되는 ‘법상 근로자’로 보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 노조를 만들고, 교섭을 하고 모빌리티 플랫폼업계에서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단체협약을 이끌어냈다. 고정된 작업장이 없어 노조로 뭉치기도 힘든 현실적 한계, 법의 미비, 정부의 방관을 딛고 플랫폼업체에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웠다.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53)을 지난 11월 15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대리운전노조 사무실에서 만나 이번 협약의 의미와 한계, 남은 과제를 짚어봤다.

-카카오모빌리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플랫폼기업들은 기업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리스크를 외부화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고용과 관련한 리스크를 외부화하려고 한다. 채용이나 노무관리는 자회사나 외부의 업체를 통해 하고 자신들은 ‘단순히 일감을 중개한다’는 포지션을 취하려고 한다. 그런 것들을 뛰어넘어 플랫폼사와 직접 단체 협상을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내에서도 거의 보지 못했던 일이다.

“국내 플랫폼업계에서는 2020년 ‘배달의민족’과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의 단체협약에 이은 두 번째 노사 단체협약이 맞다.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당시 노조는 ‘배달의민족’ 플랫폼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과 직접 협상한 것이 아니다. ‘우아한청년들’이라는 자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에 대리노조는 카카오모빌리티라는 플랫폼 기업 그 자체와 체결했다. 승차 호출 서비스를 운영하는 모빌리티 기업이 직접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해 합의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별로 없다.”

플랫폼기업들은 서비스에 필요한 핵심 노동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음식배달 플랫폼은 배달기사를 고용하지 않고, 승차 호출 플랫폼은 운전기사를 고용하지 않는다. 직접 고용하는 인력이 일부 있어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 대다수 노동력의 고용을 책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직장 밖에서 이들 삶의 최소한을 보장하기 위해 기업이 부담하는 4대 보험 등 사회보장비용도 내지 않는다. 고용 책임 또는 사회적 책임의 회피는 플랫폼기업에 단순한 비용 절감 이상의 역할을 한다. 뉴욕타임스의 2015년 조사를 보면, 플랫폼업계 경영진들은 플랫폼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할 경우 20~30%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고 추정했다. 대표적인 모빌리티 플랫폼인 우버는 2020년 연간 보고서에서 운전기사를 직접 고용할 경우 “사업과 재정 상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사업 모델을) 근본적으로 변경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고용되지 않은 플랫폼노동자는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다. 법의 보호는 기대하기 어렵다. 기존 노동법들이 노사의 고용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노사 간의 자치협약인 단체협약이 답이 될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마저 쉽지 않다. 실제로 모빌리티 플랫폼 노사가 단체협약을 체결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 5월 영국에서는 우버가 현지 노조 GMB를 협상의 상대방으로 인정하는 기초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분기별로 노사가 협상을 벌이기로 했지만, 핵심인 운전자의 소득 문제는 합의가 아닌 협의 대상으로 남겨 노동계의 비판을 샀다.

대리운전노조가 카카오모빌리티와 체결한 단체협약은 대리기사가 월 2만2000원을 내면 호출을 우선 배차해주는 프로서비스의 단계적 폐지를 골자로 한다. 대리기사 처우 개선을 위한 고충처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건강권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 지킴이를 선임하기로 했다. 핵심 과제인 대리요금, 수수료, 콜 배정 등과 관련해서는 내년 상반기 추가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의 조합원들(오른쪽)이 대리기사 호출 서비스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의 경기 성남시 판교 사옥에서 사측과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제공


-단체협약 체결까지 과정이 길었다. 단체협약 체결이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플랫폼기업들이 기술혁신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기술혁신만으로 플랫폼산업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플랫폼은 결국 상당히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나. 그 데이터는 대리기사뿐 아니라 모든 플랫폼노동자가 제공하고, 소비자들이 제공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플랫폼기업 자체는 사회 공공성이 굉장히 강한 셈이다. 플랫폼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엄청나게 많이 이야기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건 노동자를 일정하게 고용하고 사회적으로 최소한 삶의 필요조건을 보장하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의 핵심은 다른 게 아니라 사용자 책임이라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체협약이 필요하다.”

-그간 카카오모빌리티와 소통할 창구는 없었나.

“2016년부터 카카오가 대리운전 시장에 진입했다. 기존 대리운전 업체들은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이라고 반대했다. 대리기사 대다수는 기존 업체들의 갑질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카카오가 진입해 시장을 정상화시키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카카오도 잘못된 관행을 고치겠다고 했다. 기존에 대리기사들은 업체에 수수료, 보험비, 프로그램 사용비, 출근비까지 내고 있었는데 카카오는 수수료 이외에 다른 것은 대리기사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일부 정상화가 이뤄졌지만, 카카오가 시장을 어느 정도 장악한 뒤에는 얘기했던 만큼 좋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진 않았다. 기사들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는 프로서비스가 대표적으로 약속을 어긴 사례다. 대리기사들과 소통을 통해 여러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지만 전혀 안 됐다. 상생 자문위원회 형식으로 노조가 현장의 요구를 전달하는 창구가 있었는데, 노조가 요구해도 반영이 안 돼 자문위원회를 탈퇴했다. 사측과 협상을 강제할 수 있는 노동조합법상 교섭이 아니고서는 요구를 반영시키기 어려웠다. 이후로는 권한과 의무가 있는 교섭을 만들기 위해 계속 싸웠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었나.

“일단 전국단위노조가 되기까지만 10년 가까이 걸렸다. 노조를 만들 수 있는 노동자로 인정받기까지 그만큼 시간이 걸린 것이다. 노조 설립신고증이 나오고 나서 바로 카카오모빌리티에 교섭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카카오에서 ‘당사가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하더라. 막상 노동자가 되니까 협상할 사용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단체협약 체결까지의 과정은 고용되지 않은 플랫폼노동자들에게 노동 3권의 보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2005년 대구에서 처음 출범한 대리기사노조는 2012년부터 전국대리운전노조를 설립하고 전국단위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전국단위노조는 고용노동부가 교부하는 노조 설립신고증 없이 활동했다. 정부가 노조 설립신고제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해 왔기에 벌어진 일이다. 2017년에도 대리기사들은 전국단위 노조 설립신고를 냈지만, 행정관청이 법상 3일 이내에 교부해야 하는 설립신고증은 3년이 지난 2020년에야 나왔다.

노동 3권 보장이 온전치도 않았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대리운전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우리가 사용자가 맞는지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며 회피했다. 노조가 간난신고 끝에 ‘법상 근로자’ 지위를 확보하자 협상의 상대방이 돼야 할 플랫폼기업이 ‘법상 사용자’ 쟁점을 새로이 제기한 것이다. 행정 조치를 통해 양측의 교섭을 촉진했어야 할 정부는 손을 놨다. 노조는 노동위원회에 카카오 측의 교섭 해태를 시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지방·중앙노동위원회는 모두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카카오 등 플랫폼기업의 횡포가 집중 조명된 이후에야 기류가 바뀌었다. 지난해 10월 양측은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중재로 성실 교섭을 벌이기로 하고 소 취하에 합의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체결된 이번 단체협약은 향후 플랫폼업계의 노사관계에 장기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단체협약에 담긴 “회사는 배정정책과 관련해 조합에 주요 내용을 설명한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사실상 노조에 알고리즘을 설명할 의무를 회사에 부여한 셈이다.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 플랫폼기업이라도 효율적인 업무 배분을 위해서는 노동력 관리가 필요하다. 기존 기업의 관리자가 하던 이 일을 플랫폼기업에서는 알고리즘이 한다. 노동자의 업무 완료 속도, 업무 중 동선을 추적하고 콜 수신 정보를 종합해 일감 할당, 가격 책정을 한다. 어떤 노동자들에게는 알고리즘이 일감 배정을 제한하기도 한다. 플랫폼 일터에서 노동자가 해야 하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담은 일종의 ‘취업규칙’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취업규칙은 사업장에 비치하고 노동자들에게 공개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플랫폼업계는 알고리즘을 영업비밀로 보고 공개하지 않는다. 노동자로서는 수입·생존과 직결되는 알고리즘을 알지 못한 채 일터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2018년 12월 카카오모빌리티 판교 사옥 앞에서 단독배차권 폐지, 요금 정상화, 수수료 인하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제공


-단체협약에 알고리즘 설명 의무가 담겼다고 봐도 될까.

“배정정책이라고 담겼지만, 사실상 알고리즘을 의미한다. 노조의 최초 요구안은 노사가 추천한 전문가들로 알고리즘 검증위원회를 꾸리자는 것이었다. 알고리즘을 우리한테 설명한다 한들, 실제 일감 배분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할 수가 없지 않나. 회사가 여기까지는 수용을 못 했다. 결국 회사가 알고리즘을 노조에 설명하고, 노조는 현장의 요구를 모아 전달해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

-알고리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친숙하지 않은데 이 복잡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노동자들이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알고리즘은 대리기사들의 출퇴근 시간을 파악해 활용하는 아주 세분화된, 그것도 실시간으로 적용되는 취업규칙이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서 일을 하고,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밥줄이 걸린 문제라는 얘기다. 배차가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해서 알리는 건 플랫폼기업의 당연한 의무다.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질 개선을 위해서도 알고리즘 공개는 필요하다. 알고리즘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기사들의 비합리적인 선택이 일반화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현장에서는 ‘어디 지역에 가면 콜이 잘 잡히더라’는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 돈다. 그 얘기를 듣고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가면 기사들은 일을 못 잡고, 고객들의 서비스 이용에도 지장이 생긴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사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한다. 회사는 고객들이 매기는 대리기사 별점 평가를 일감 배정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알고리즘에 별점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확증이 없으니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다. 고객이나 기사의 확신 속에서만 합리적인 관행이 만들어지고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은 공개를 넘어 당사자들의 참여 속에 검증하는 과정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지금껏 알고리즘 설명 의무를 단체협약에 명시한 선례가 있었나.

“해외 사례를 봐도 단체협약에서 언급한 경우는 거의 없다. 스페인 라이더법에 관련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안다(스페인 라이더법은 노조의 알고리즘 설명 요구가 있을 시 회사가 15일 내에 답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협상 결과에는 만족하나.

“아쉬움이 크다. 회사는 교섭 초반부터 임금 등은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걸로 엄청나게 싸웠다. 기사들이 관심이 많고 절박한 사안이 대리기사 몫의 수수료(일종의 임금)였는데 정작 이 문제는 내년 상반기에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일감 배정시스템이나 대리기사 몫의 수수료가 교섭대상임을 분명히 한 점은 성과다.”

-열악한 플랫폼노동자는 늘어나는데 노동조건을 규율할 노사관계는 개별 노조의 뼈를 깎는 노력과 기업의 선의에만 기대고 있다. 바람직한 플랫폼 노사관계를 위한 제도적 해법이 있을까.

“현재 해외 각국도 플랫폼기업에 책임을 부과하기 위해 노조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추세다. 국가는 시민이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보장할 책임이 있지 않나. 국가 입장에서도 플랫폼노동으로 말미암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은 노동자들과 사용자의 직접 교섭이다. 지금 민주노총이 ‘근로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정의한 노동조합법 제2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기 어려웠지만, 최근엔 신고증 교부까지는 빠르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문제는 그 이후에 교섭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핵심은 사용자 찾기라고 본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실질적으로 많은 이익을 가져가고, 사업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다. 특수고용직이든, 플랫폼노동자든,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든 진짜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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