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홀린 로제 '아파트'를 읽는 3가지 '성공 신호'
이제 기승전결은 필요없다. 너무 길고 답답하다. 승과 결을 빼고 기와 전만으로도 충분히 어필하고 사로잡는다. 뉴진스가 음악의 기승전결 구조를 버리고 기와 전, 때로는 승과 결의 단순한 구성으로 듣는 이의 귀를 순식간에 낚아채며 전 세계를 홀렸듯, 블랙핑크의 로제가 이 수순을 그대로 밟으며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지난 18일 발표한 로제의 '아파트(APT.)'는 발매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각종 차트 1위 석권은 물론, 유튜브 1억 조회수도 거뜬히 넘겼다. 한국 여성 솔로 가수의 스포티파이 미국 및 글로벌 차트 1위도 난생 처음이지만, 이대로라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인기와 기록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도 제시되고 있다.
아파트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거주 공간인 아파트가 아닌, 술 먹기 게임에서 착안한 술 문화의 건배사로, '강남스타일'에서 강남의 지리적 호기심이 이번에는 한국 술 문화의 궁금증으로 확산하는 셈이다.
이 노래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금세 빠져들 만한 매력 포인트들은 차고 넘친다. 8비트의 록킹한 빠른 템포, 슈퍼스타와의 협연, 영어로 소화하는 글로벌 경쟁력…. '아파트, 아파트'를 끊임없이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뇌리에 꽂힌' 3가지 핵심 비법을 들춰봤다.
① 다 버려도 핵심 키워드만 살려=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듣고 뇌리에 꽂히는 문장은 단 하나다. '오빤, 강남스타일'. 노래가 어떻게 구성됐고, 어떤 박자에 맞춰 불러야 할지는 그다음 문제다. 중요한 건 지금, 바로, 이 순간 내 뇌리에 직격탄으로 꽂혀 바로 따라 부른 뒤, 다시 재생버튼을 누르고 싶은 욕구가 '살아나는지'일 뿐이다.
'아파트'는 이 단순하고 뻔한 규칙을 그대로 살렸다. '아파트, 아파트'로 시작하는 '브릿지'에 해당하는 음의 구간이 다른 모든 멜로디를 설사 잊게 한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절대 마디'로 존재한다. 지금의 음악은 숲이 아니라 나무다. 전체의 호응이 아름다운지, 들어맞는지, 차별화하는지 같은 완결의 미학은 대중 어필에 별 소용이 없다. 어느 한 마디, 어느 한 테마, 어느 한 구성이 찰나를 사로잡을 수 있는지, 귀에 박히는 '핵심 키워드'가 존재하는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이것부터 '증명'돼야 다른 곁가지들이 함께 생명력을 얻는다. 아파트에 대한 궁금증, 태극기를 흔드는 노래 속 부르노 마스의 행동, 한국 술 문화('소맥' 만들기 등)와 '아파트 게임' 등이 함께 오버랩되며 인기를 곱절로 얻는 식이다.
② 기승전결 대신 단순·직선·압축의 '놀이터'=이 노래의 가장 큰 인기비결은 단순하고 쉬운 구성이 주는 중독성이다. 쉽게 불려지기 위해 기승전결 같은 구성의 완결성은 지웠다. '아파트, 아파트…' 같은 브릿지(Bridge, 노래와 노래를 연결하는 짧은 몇 마디의 섹션) 구성을 통한 무한 반복의 '단순' 선율이 귀에 자극을 줄 뿐이다.
마치 게임처럼 단순하고 직선적이고 압축적인 놀이 반복을 통해 무한 재미와 극강의 집중력을 잃지 않는 원리와 같다고 할까. 슬픈 발라드 대신 즐거운 놀이 같은 댄스 음악에 대한 높은 관심을 이 곡이 제대로 반영하면서 '중독'이 보장되는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
노래의 구성은 '키시 페이스, 키시 페이스'(Kissy face, kissy face)로 시작하는 '기', '돈 유 원 미 라이크 아 원 요, 베이비'(Don't you want me like I want you, baby)로 이어지는 '전'의 구성만 눈에 도드라질 뿐, 사실상 승과 결에 해당하는 부분은 '아파트, 아파트'나 '홀드 온, 홀드 온~예 예 예'(Hold on, hold on~Yeah yeah yeah) 등 제1, 제2 브릿지 역할을 하는 가벼운 구성으로 대체하고 있다. 가장 단순한 문구가 가장 매력적인 후렴구라는 사실을 이 짧은 브릿지들을 통해 증명하는 셈이다.
이 곡의 리듬은 록에서 주로 쓰는 8비트다. 요즘 트렌드를 고려하면 (특히 뉴진스 음악에서 주로 선보인 당김음(싱코페이션)이나 미는음(레이백)의 흑인 음악 소스) 리듬을 비트는 식을 고집했을 법한데, 이 곡은 정통으로 승부한다. 뮤직비디오에서 브루노 마스가 드럼을 정박으로 치는 투박한 로킹 리듬이 이를 잘 설명한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직선' 리듬으로 승부한 정공법이 먹혀든 것이다. 리듬 음악의 최고로 통하는 리조(Lizzo)의 '보이즈'(Boys)도 '아파트'의 단기간 인기에 비견되지 못할 만큼 정통 리듬의 문법이 새바람을 일으켰다.
단순한 노래에 맞춰 뮤비 구성도 여러 장소나 장면을 교차 편집하는 복잡함을 거치지 않고 하나의 장소에서 모든 걸 '압축'하는 효율성으로 집중력을 극대화했다. 심지어 2분 53초의 짧은 곡에서 로제는 검은 재킷을 입고 배경은 핑크로 채색해 자신이 '블랙핑크'의 멤버임을 간접적으로 알려 정체성 역시 하나로 '일원화'하고 있다.
③ 영어·스타 콜라보 등 'K팝의 경쟁력'=방탄소년단(BTS) 이후 세계적인 스타와의 콜라보레이션(협연)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마치 유명 미국 뮤지션들끼리 협업하는 것처럼 이번 작업이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다. 그것도 현존 최고의 싱어 브루노 마스라면 얘기는 더 남다르다. 마스가 '아파트'를 계속 외친 덕분에 외국인들의 '따라하기' 열풍이 더 거세진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스타와의 콜라보가 주는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그래미상 다회 수상자인 찰리 푸스도 '아파트' 따라하기 대열에 나서는 등 '강남스타일' 인기를 넘어설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곡의 도입에서 로제가 '~게임 스타트'라고 말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모든 노래가 영어로 돼 있는 것도 '글로벌 뮤직'임을 알리고 있다. 한국의 특정한 문화만을 한국어로 소개하고 브릿지로 소화할 뿐, 가창에는 그 흔한 '뽕끼'도 없다. 한국식 발음인 '아파트'를 노래 곳곳에 교묘하게 배치해 호기심을 부추기는 장치는 K팝의 새로운 출구전략으로 읽히기도 한다.
'아파트'라는 독특하면서 복잡한 한국 문화, 이를 통해 알게 된 '술 게임'과 술 조제 비법, 그리고 무엇보다 중독성 넘치는 선율의 인기는 한동안 '열풍'을 넘어 '광풍'으로 번질 것 같다.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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