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표현의 자유 도와” vs “범죄 악용에도 방종”

조은아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2024. 10. 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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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의 유로프리즘] ‘자유의 나라’ 프랑스가 체포한 ‘표현의 자유 수호자’

● 프랑스에 체포된 ‘러시아의 저커버그’ 두로프
● EU도 두로프와 텔레그램 조사하는 중
● 감시 피해 러시아 떠난 ‘표현 자유의 상징’
● 두로프 “숨길 게 없다”면서도 일부 기능 삭제

2018년 5월 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메이데이 집회에서 시위대가 텔레그램 공동 창업자 파벨 두로프의 초상화를 내걸고 러시아 정부의 앱 차단에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40)가 8월 프랑스에서 체포되며 유럽이 들썩였다. 두로프의 체포는 여러 면에서 파장을 낳았다. 이번 사건이 소셜미디어에 대한 규제가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텔레그램뿐 아니라 X(옛 트위터) 등 빅테크 기업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과 러시아 간의 외교 갈등도 불거질 조짐이다. 두로프는 프랑스와 아랍에미리트(UAE) 국적을 취득했지만 러시아 태생이다. 프랑스 당국의 사법 제재를 받자 러시아가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가 반발하는 배경엔 국가 기밀이 새어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 상태로 보안을 중시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이 텔레그램을 소통 채널로 삼고 있다. 텔레그램은 보안 기능이 어떤 소셜미디어보다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수사 당국이 두로프를 수사하며 텔레그램 내부를 샅샅이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기밀이 노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에서도 인공지능(AI) 기반의 이미지 합성 기술 '딥페이크' 피해가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어 두로프가 어떤 처벌을 받을지 주목된다. 프랑스 당국의 처벌에 따라 국내에서도 텔레그램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에 대한 규제 수위와 방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로프는 8월 24일(현지 시간) 밤 프랑스 파리 외곽의 르부르제 공항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텔레그램이 범죄에 악용되는 현상을 막지 않고 방조했다는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두로프는 자신이 수배된 상태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빅테크 CEO 사상 첫 체포

프랑스 검찰은 나흘 뒤 텔레그램 내 온라인 성범죄 등 각종 범죄에 공모한 혐의로 두로프를 '예비 기소'했다. 예비 기소는 범죄 혐의가 의심되지만 조사가 더 필요할 때 내리는 조치다. 검찰은 추가 조사를 거쳐 정식 기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일단 두로프는 보석금 500만 유로(약 74억 원)를 내고 풀려났다. 그러나 출국할 수는 없다. 일주일에 두 번씩 경찰에 나와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가 받은 구체적인 혐의는 12가지에 이른다. 미성년자 성착취, 마약 밀매, 사기, 돈세탁 등 각종 범죄에 공모한 혐의, 당국의 합법적 정보 요청을 거부한 혐의, 공식 등록 절차 없이 암호화 서비스를 제공한 혐의 등이다.

두로프를 주시하고 있는 건 프랑스만이 아니다. 유럽연합(EU)도 텔레그램을 더 꼼꼼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EU는 조건에 맞는 빅테크를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VLOP)'으로 지정해 영향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다. VLOP로 분류되려면 EU에서 이용자 수가 4500만 명 이상이어야 한다. 텔레그램은 올해 2월 기준 EU에서 약 41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VLOP 지정을 피했다.

EU는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텔레그램이 EU 내 이용자 수를 축소해 신고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두로프의 변호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책임자라는 이유로 자신과 관련 없는 범죄행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반발했다.

텔레그램은 2013년 설립돼 세계적으로 사용자 9억 명을 보유한 온라인 플랫폼이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고, 관리자만 메시지를 올리는 채널을 만들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최다 20만 명을 불러들일 수 있는 토론 그룹도 개설된다.

본사는 UAE 두바이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원진 대부분이 두바이에 거주하고 있지만 각국에 분산돼 있어 원격으로 일한다. 텔레그램이 '무국적 플랫폼'으로 불리는 이유다.

텔레그램은 사용자를 검열하지 않고 보안 기능이 강력한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텔레그램도 스스로 "강력한 암호화로 사용자의 통신을 보호하고 미국 법률에 따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표현의 자유 수호자'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

다만 안전성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텔레그램의 암호화는 애플리케이션의 '비밀 대화' 기능을 통해 주고받은 메시지에만 적용된다"며 "기본적으로 그룹의 내용이나 사용자 간 토론은 암호화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란 속에도 강력한 보안 기능과 함께 주요국 정부에 협조하지 않는 장점 때문에 러시아, 이란 등 통제가 심한 국가에서 반체제 인사들이 선호한다.

텔레그램의 사업 모델도 독특하다. 르몽드에 따르면 텔레그램의 운영 비용은 수년간 두로프가 개인 재산으로 충당했다. 2010년 말에는 암호자산 '톤(TON)코인'을 발행해 14억 유로(약 2조800억 원) 모금을 시도했다. 암호자산 발행을 통한 모금이 주주들의 압력에 취약한 기업공개(IPO)보다 낫다는 논리에서였다.

이러한 시도는 좌절됐다. 2019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를 위장 주식 발행으로 간주해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텔레그램은 톤코인 생태계를 키우려는 것으로 보인다. 르몽드는 "텔레그램은 암호자산 결제를 통합하는 최초의 플랫폼으로서 암호자산 거래나 관련 서비스로 쉽게 수익을 창출하려는 목표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텔레그램은 그 후로도 다른 자금 조달 방법을 모색했다. 2021년 공개 채널에서 광고를 시작했다. 2021년엔 매달 5.49유로(약 8000원)에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를 내놨다.

‘러시아판 저커버그' = 두로프

텔레그램을 만든 두로프도 이력이 독특하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과학을 전공했다. 두로프와 형 니콜라이(44)는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니콜라이는 학생 때 여러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우승했다. 두로프는 그의 형 덕분에 네 살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해진다. 그는 형 니콜라이와 함께 2006년 러시아판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프콘탁테(VK)를 만들었다. VK를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에서 최대 소셜미디어로 키워 '러시아판 마크 저커버그'로 불렸다.
텔레그램의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의 평소 모습. 그가 8월 24일 프랑스에서 체포되자 모국 러시아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기밀 정보를 빼내려는 서구의 계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파벨 두로프 인스타그램]
‌두로프는 2013년엔 형과 함께 텔레그램도 내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두 사람은 당시 "안전한 메시징 앱이 없어 안전하게 소통하기 위해 개발했다"고 밝혔다. 또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정보기관의 대규모 감시 행태를 폭로한 뒤 안전한 앱을 공개적으로 공유하게 됐다고 한다.

소셜미디어를 키운 그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부호가 됐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155억 달러(약 20조8000억 원)에 이른다. 그러던 두로프는 러시아를 떠나게 된다. 러시아 정부가 반(反)정부 시위에 참가한 VK 사용자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기 때문. 두로프는 이를 거절하며 VK 지분을 판 뒤 2014년 러시아를 떠났다.

독일에서 거주하다가 UAE 국적을 취득해 두바이에 주로 머물렀다. 2021년 8월엔 프랑스 국적도 받았다. 다국적은 그에게 방패가 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가 프랑스에서 체포되자 UAE는 영사 조력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프랑스에 요청했다.

텔레그램의 보안성과 모국에 협조하지 않는 행보는 가족사에 뿌리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두로프의 조부모는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통치 시절 강제 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는 4월 미국 극우 논객 터커 칼슨 전 폭스뉴스 앵커와 인터뷰하면서 "사람들은 사생활과 자유를 사랑하며 (이 때문에) 텔레그램으로 (플랫폼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두로프와 러시아와의 관계도 미궁 속에 있다. 그는 러시아를 도망치듯 떠났지만 러시아 독립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떠난 이후에도 러시아를 50회 이상 방문했다.

체포된 두로프를 두고 찬반 논란도 격렬해졌다. 반대하는 세력은 두로프를 '표현의 자유 수호자'라고 본다. 본인 스스로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협조하지 않고 러시아를 떠난 점이 상징적이다. 텔레그램이 민주화운동 세력의 소통 도구가 된 측면도 있다. 이에 테슬라 창업자이자 X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 미국 개인정보 감찰 사건의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두로프의 체포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비난했다.

반면 두로프 처벌 찬성파들은 그가 범죄행위가 판치는 텔레그램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테러리스트들과 극단주의자들, 마약상들이 텔레그램의 보호막 아래 모여들었다"고 꼬집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국의 사법 당국은 텔레그램이 다른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비해 당국에 협조하지 않는 점을 불만스러워했다고 영국 더타임스는 전했다.

"두로프가 아닌 회사 고소했어야"

텔레그램 측은 프랑스에서 구금된 두로프가 "숨길 게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고 영국 BBC방송은 보도했다. 텔레그램은 성명을 발표해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포함한 유럽연합(EU) 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플랫폼 또는 플랫폼 소유자가 해당 플랫폼의 남용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강조했다.

두로프도 프랑스 당국이 자신이 아닌 회사를 고소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는 9월 6일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체포 이후 첫 공식 입장을 밝혔다. 두로프는 "만약 어떤 국가가 인터넷 서비스에 불만이 있다면 서비스 자체에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게 관행"이라며 "플랫폼 내에서 제3자가 저지른 범죄와 관련해 해당 플랫폼 CEO를 기소하는 건 잘못된 접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텔레그램이 범죄의 온상이란 지적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무법 천국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매일 수백만 개의 유해 게시물과 채널을 차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억울해하던 그는 같은 날 다시 X에 글을 올려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우선 텔레그램의 '근처 사람들(People Nearby)' 기능을 삭제할 방침이다. 이 기능은 범죄에 악용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이 지적을 인정하듯 "텔레그램 유저의 0.1% 미만이 사용했던 이 기능은 봇(bot)과 사기 문제를 갖고 있었다"며 "우리는 대신 합법적이고 확인된 업체만 보여주는 '근처 기업들(Businesses Nearby)' 기능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또 텔레그램의 익명 블로그 서비스인 텔레그래프의 미디어 업로드 기능을 비활성화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 보안 수준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IT 전문매체 더버지는 텔레그램의 '자주 묻는 질문(FAQ)'란에서 "개인 채팅 내용은 보호되며 이를 대상으로 한 조정 요청은 처리되지 않는다"는 문구가 삭제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두로프를 쥐고 있는 프랑스 사법 당국이 어떤 처벌을 내릴지, 이에 따라 텔레그램도 어떻게 변신하게 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조은아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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