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19세기 철길’ 달리다 21세기 최악 열차 참사
인도에서 여객열차와 화물열차가 잇따라 충돌해 사망자가 300명에 육박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생명이 위태로운 부상자가 많아 사망자 수가 3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번 사고는 인도에서 2000년 이후에 발생한 열차 사고 중 인명 피해가 가장 큰 ‘21세기 최악의 참사’로 불리고 있다.
4일 로이터·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인도 동북부 오디샤주(州)에서 지난 2일(현지 시각) 대규모 열차 탈선·충돌 사고가 발생해 275명이 숨진 것으로 중간 집계됐다. 부상자가 1000명에 달하는 가운데 구조 당국 관계자는 “사망자 수가 380명에 달할 수 있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이번 참사는 인도 오디샤주의 발라소레 지역에서 여객열차 2대와 화물열차 1대가 부딪치는 ‘3중 충돌’로 일어났다. 1차 충돌은 시속 130㎞로 달리던 ‘코로만델 익스프레스’(1257명 탑승)가 정차 중인 화물열차를 들이받으면서 발생했다. 이어 맞은편에서 오던 하우라 수퍼패스트 익스프레스(1039명 탑승)가 여러 철로에 걸쳐 탈선해 있던 코로만델 익스프레스와 부딪히면서 2차 충돌이 발생했다. 당시 두 열차는 입석까지 빽빽이 들어찬 상태였고, 사상자는 대부분 코로만델 익스프레스 승객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정부가 진행 중인 조사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철로 진입 관련 신호 오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매체 ‘트러스트 오브 인디아’는 “코로만델 익스프레스에 주 선로로 진입하라는 신호가 전달됐지만, 이후 갑자기 신호가 해제되면서 이 열차가 순환선으로 진입하는 바람에 그곳에 있던 화물 열차와 충돌했다”고 전했다.
사고 현장을 찾아 구조 작업을 지켜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사고 책임자가 밝혀지면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사고 현장을 찾은 아슈위니 바이슈노 철도부 장관은 구체적인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고위급 조사 위원회를 꾸렸다고 밝혔다. 오디샤주는 3일을 애도의 날로 정했다.
인도에서 철도는 ‘경제의 생명선’으로 불린다. 운행 선로 길이가 10만2000㎞가 넘어 지구 둘레 길이의 2.5배에 달하고, 하루 평균 수송객은 900만명이 넘는다. CNN은 “세계에서 가장 큰 철도망 중 하나인 인도의 철도망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19세기에 건설됐다”며 “매일 1만대가 넘는 열차가 10만㎞ 선로를 달린다”고 전했다.
2018년 연구에 따르면, 인도 철도의 98%는 1870년에서 1930년 사이에 건설돼 심각한 노후화 문제를 겪고 있다. 이처럼 낡은 철로와 열차, 부실한 안전 관리 등으로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인도 철도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사고로 꼽히는 건 1981년 여객 열차가 비하르주에서 다리를 건너던 중 탈선한 사고로, 승객 750명이 사망했다. 또 1999년 서벵골에서 두 대의 기차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285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5년에는 서부 구자라트주에서 여객열차가 정차 중인 화물열차를 들이받으면서 24명이 숨졌다.
열차 시스템 개선을 성과로 내세웠던 모디 정부는 이번 참사로 궁지에 몰리게 됐다. 2014년부터 총리직을 맡고 있는 모디 총리는 수천 개의 무인(無人) 철도 건널목을 없애는 대신 지하도를 건설하고 신호 체계를 정비하는 등 철도 시스템 개선에 힘써왔다. 2020년 기준 중대 열차 사고는 22건으로 20년 전(연간 300건 이상)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올해에도 모디 총리는 열차 선로 개선, 신규 열차 도입 등에 작년보다 약 50% 늘어난 총 2조4000억루피(약 38조2000억원) 예산을 투입했지만, 이번 참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철도 사고는) 오랫동안 황폐화된 인도의 인프라를 현대화하려는 모디 총리의 노력에 흠집을 낸 사건”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봄 총선에서 집권당 바라티야 자나타당(BJP) 후보로 나설 모디의 3선 도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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