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추계기구 '먹구름'…의료계 "장관 사과? 변한 것 없어"
추계센터 두겠다 한 국책연구기관부터 '보정심 최종의결' 구조까지 비토
"정부, 진정성있게 협의하려는 생각 없어…사태해결, '2천 증원' 사과부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올 2월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 이후 처음으로 전공의들을 향해 사과한 것을 두고 양측의 대치 완화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의료계는 여전히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정원 증원을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노선을 고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연내 구성 계획을 밝힌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또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같은 심의·의결 권한이 없다는 점에서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취지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전공의단체 등 의료계 추천인사를 과반으로 채우겠다는 정부의 '당근책'도 큰 유인이 못 되는 모양새다.
대한의학회 박형욱 부회장(단국대 의대 교수)은 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통해 조 장관이 전날 브리핑에서 "의료개혁 추진 과정에서 필수의료에 헌신하기로 한 꿈을 잠시 접고 미래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전공의 여러분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언급한 대목을 인용했다.
또 이 사과가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사과는 아니다'라며 선을 그은 복지부 측의 해명을 들어 "이 사태는 (애당초) 왜 일어났나"라고 반문하며 "(정부가) 고등교육법 4년 예고제를 무시한 절차 위반과 이를 과학적 근거라며 정당화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당국이 "의료계와 수십 차례 증원규모를 논의했다면서 거짓말로 의료계를 낙인찍었다"며, 의대 2천 명 증원을 의결한 복지부 산하 보정심 역시 형식적인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중에서도 전공의들에게 가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수많은 법적 협박과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은 정말 끔찍한 것이었다"며 "이로 인한 수많은 소송은 아직 법원에 계류되어 있다"고 적었다.
이 같은 상황에선 장관 사과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부회장은 "조 장관 사과의 의미는 무엇인가. (의대 증원 등 관련) 이대로 가겠다는 것"이라며 "다만, 여론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가 의료계의 요구를 반영해 꾸리겠다고 밝힌 의사수급 추계위원회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새로운 기구의 운영절차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내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 설치를 시작으로, 최종적인 관련 의사결정은 내년도 의대 증원이 확정됐던 보정심의 심의로 결정된다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박 부회장은 "(한 마디로) 가지고 노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뭔가 진정성 있게 협의하려는 생각이 없다. 일방적인 내용을 언론에 터뜨리고 여론관리를 하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밝혔다. 정책의 실질적 추진을 위한 의료계의 수용 의사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도 이런 내용을 의료계가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추계기구 내) 공급자단체에 누가 들어가겠나. 대한병원협회는 사용자단체다.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보정심에서의 최종 결정 구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의대 증원과 관련해 정부는 자료도 미리 주지 않고 회의를 열어 1시간 만에 2천 증원을 결정 내고 회의를 끝냈다. 이렇게 운영해놓고 '최고의사결정기구'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향후 인력 추계를 도울 기관으로 보사연을 선정한 것과 관련해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무제가 국책연구기관에서 나타나는 연구의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쓰는 것"이라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앞서 정부는 '국내 의사 수 부족'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로 보사연의 보고서를 인용한 바 있다. 다만, 해당 연구에 참여했던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2035년이면 의사 1만 명이 부족해질 거란 정부 전망에 동의하면서도, 단기간 대규모 증원보다는 '점진적 증원'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박 부회장은 "윤 정부의 어리석음은 버티면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년에는 정권에 치명상을 입으면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며 "이 사태의 해결은 정부가 자신들이 내건 '2천 명'의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선언하고 개선책을 논의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전공의들이 정부의 추계기구 제안에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의 의료단체들은 현재로선 참여 의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도 전날 최안나 대변인의 현안 브리핑에서 "의사 악마화에 몰두해온 정부가 전공의에게 미안한 마음을 처음 표현한 것은 긍정적 변화"라면서도 '아직 충분치는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정부가 초래한 의료대란 사태에 대한 사과가 아닌 전공의에 대한 유감 표명이라서 여전히 정부의 진정성에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며 "지금 세계 최고수준의 우리나라 의료가 한순간에 붕괴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리 전공의들 탓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사인력 추계기구와 관련해서도, "현 상황에선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문기구가 아닌 '의결기구'여야 한다는 점 △해당 기구의 구성과 운영은 철저히 전문가(의사단체 등)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 △논의과정은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점 등이 약속돼야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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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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