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의 연쇄작용
흔히 마흔을 불혹이라 한다. 불혹의 정확한 뜻은 ‘미혹(迷惑)되지 아니함’. 즉, 크고 작은 것에 정신을 뺏겨 헤매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우리는, 적어도 마흔이 될 때까지는 수없이 흔들리며 자란다고 할 수 있겠다. 평범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주변의 의견에 미혹되지 않기에 한 여고생은 너무도 어렸고, 자신을 제대로 마주했을 때는 큰 용기를 내야 했다. 그러나 이 한 사람의 용기가 또 다른 용기를 낳을 것이라고 믿는다. 야구라 하면 당연하게도 남자들의 스포츠만이 떠올랐던 작은 세계를 깨고, 4대 구기 종목 중 유일하게 여자 프로리그가 없었던 우리나라 야구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킬 국민대학교 여자야구부를 소개한다.
Photographer 나인비 Editor 김서현 Location 드림 베이스볼 아카데미

#감독 김익
<더그아웃 매거진>에 인사와 자기소개 부탁해요! (1월 8일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국민대학교 여자야구부 감독 김익입니다. <더그아웃 매거진>에 롯데 자이언츠 (손)호영이가 나오는 걸 봤어요. 제 제자거든요. 이런 기회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 뵙게 돼 반갑습니다.
엘리트 여자 대학야구부는 국내 처음이에요. 감독 자리는 어떻게 맡게 됐나요?
학교에서 채용 공고가 올라와서 지원했어요. 주변에서도 저한테 한번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알려주시더라고요. 사실 여자야구는 남자야구에 비해 활성화되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감독으로서 보면 이 친구들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에 대한 걱정도 남자야구보다 더 깊게 해야 했고요. 졸업 후 진로도 책임져야 하니 오랫동안 고민했죠.
이전에도 여자야구에 관심이 있었나요?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관심이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해요. 십여 년 전에 여자야구 연맹이 만들어졌다는 건 알고 있었고, 어떤 대회를 나가고 있다는 소식만 가끔 듣는 정도였어요. 특별히 여자야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 길이 없기도 했고요.

유소년 야구단부터 중고교, 대학팀 감독까지 모두 경험한 베테랑 지도자예요. 나이별로 교수법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맞아요. 저는 코치 생활을 중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했어요. 근데 감독직은 초등학교에서 시작했거든요. 감독을 맡게 되면서 어린 야구부 친구들을 처음 지도하게 된 거죠. 코치 시절에는 공을 잡고 던지는 방법을 다 배운 상태로 올라온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초등학생들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잖아요. 그래서 어디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오더라고요. 제가 바보처럼 느껴졌어요. ‘왜 내가 이것 하나도 못 가르치고 있지?’라는 생각마저 들면서 답답하더라고요.
그럴 땐 어떻게 타개하려고 했나요?
초등학생 아이들을 1~2년 지도하다 보니 뭔가를 가르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훈련하고 사고하는 힘을 길러주는 게 필요하겠구나 싶더라고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야구가 얼마나 재밌는 건지를 알려주려고 했어요. 경기에 나가서 실수해도 괜찮다고, 고작 야구 1년밖에 안 했는데 실수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마음을 편히 하는 방법을 알려주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칭찬을 자주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야구 초심자를 가르쳤던 경험이 지금 큰 도움이 되겠어요.) 무척 도움이 됐습니다. 오히려 제가 중고등학생들만 가르쳤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 여자야구부 선수들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가르쳐줄 수 없었겠죠.
중고등학생을 가르칠 땐 어떤 스타일이었나요?
중학생이라면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하고, 고등학생은 프로 구단에 입단하거나 대학에 진학해야 하잖아요. 미래를 책임져야 하니까 제가 냉정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애들한테 정을 준다고 해서 그 학생들이 입단이나 진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독하게 운동시켰죠. 그게 제가 제자들의 인생을 책임질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의 교수법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건 뭔지 궁금해요.
초등학교 감독하던 시절에 지도자 세미나에 가서 교육받은 적이 있어요. 그중 기억에 남는 게 심리학과 멘탈에 관한 교육이었어요. 수업을 듣는데, 너무 기가 찬 거예요. 제가 여태까지 뭐 했나 싶었어요. 왜 애들한테 죽도록 기술만 가르치려고 했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애들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나 돌아보게 됐어요. 사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멘탈, 즉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거든요. 근데 그동안 배울 준비가 안 돼 있는 애들을 밀어붙이면서 지도했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 교육 이후로 지도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특정 훈련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서 배포 좋은 선수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죠.
그런 심리적인 부분을 움직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요?
야구는 잘하는데 깡이 없는 선수, 실력은 뛰어나지 않으나 배포가 큰 선수 중에 지도자는 후자를 좋아해요. 경기에 나가면 본인이 가진 실력보다 더 큰 활약을 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면대면 상담을 자주 합니다. 훈련이 모두 끝나면 오늘 어떤 마음으로 운동했는지,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요. 그럼, 그 친구들이 털어놓는 속마음을 모두 듣고 어떤 마음으로 야구해야 하는지를 조언하죠.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 팀엔 네가 꼭 필요하다, 야구는 아홉 명이 하는 거니 모든 것을 잘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얘기요.

지금 야구부 훈련은 어떤 목표를 갖고 하는 건지 궁금해요.
작년 5월에 채용이 결정되고 6월에 익산에서 열리는 생활 체육 여자야구 대회를 처음 가봤어요. 국제대회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여자야구의 현 위치를 확인했고요. 대만하고 일본에는 아직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홍콩에 지는 모습을 보고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가볍게 봐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선수들 평일 수업을 다 주말로 옮겼습니다. 야구는 반복적인 스포츠라, 매일 치고받는 훈련을 3시간 이상씩은 해야 하거든요. 근데 지금 상황에서 매일 수업하고 병행하면 쉽게 지칠 듯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느꼈어요. 그런 식으로 운동 시스템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하나하나 맞춰가고 있습니다.
팀 구성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현재는 전 포지션이 다 채워진 상태고요.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는 친구들은 합류를 늦게 하게끔 조율해서 당장은 완벽하진 않지만 총 12명으로 팀은 완성했습니다. 사실 8월부터 운동을 시작한 터라 거의 3~4개월 차 선수들인데, 무리하면 스스로 지치게 될 수도 있어서요. 그러지 않게끔 신경 쓰고 있어요.
운영 총괄급인 양석원 교수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요?
교수님과는 새벽 4~5시까지 얘기를 나눈 적도 꽤 있을 정도로 대화를 자주 합니다. 우리가 이 학생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어떤 건지, 어떻게 하면 길을 열어줄 수 있을지 필사적으로 연구했어요. 지금도 저희 스스로는 무척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사실 지원서를 받을 때는 35명 정도가 지원했는데, 여자야구는 실업팀이나 프로팀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반대하는 부모님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 남아있는 이 친구들이 더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그렇기에 이 선수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교수님과 소통하죠.
학생들이 졸업 후 기록 분석원이나 심판, 지도자 등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요. 어떤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은가요?
솔직히 말해서 감독 입장으로 보면, 아이들이 졸업 후에 기록 분석원이나 심판 등 어떤 진로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아요. 사실 여자 선수가 갈 수 있는 우리나라 실업팀은 소프트볼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한 명이라도 더 어떤 팀이든 들어갈 수 있게끔 하는 게 첫 번째 목표고요. 두 번째로는 학교 수업을 통해 자격증을 딸 수 있게끔 하는 방법이 있는데, 우선은 졸업 후에도 선수 생활을 하게끔 만드는 게 가장 크죠.
2023년 아시아야구연맹(BFA) 여자야구 아시안컵에서는 우리 대표팀이 동메달을 거머쥐기도 했어요.
솔직히 저는 그 당시에는 잘 몰랐어요. 이후에 얘기를 듣고는 동메달까지 딸 수 있단 사실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 여자야구 선수들이 야구를 못하는 게 아니에요. 연습량이 부족한 거예요. 국가대표라는 건 어느 정도 장기 합숙도 하고, 기술 운동도 하면서 엘리트 선수를 선임해야 하잖아요. 근데 그게 안 되다 보니까 짧은 시간 내에 완성도를 높이기 어려운 거죠. 문제는 기술적인 것보다는 멘탈에서 시작되거든요. 예를 들면 승부처에서 실책 직후의 마음가짐이요. 아마 지금 우리 팀 선수들은 이제 어느 정도 알 거예요. 그런 순간에 절대 무너지면 안 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거요.

우리나라의 4대 구기 종목 중 프로 리그가 없는 유일한 종목이에요. 여자 프로리그가 생기는 것에 대한 꿈도 있을까요?
물론 있죠. 제가 선수들에게 매번 하는 말이 있는데요. 우리가 창단하고 첫 대회를 치르게 되면 그 이후에는 저를 운동장에서 자주 못 만날 수도 있다고 해요. 선수들이 들어갈 수 있는 실업팀이 만들어질 수 있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하고, 어필해야 하잖아요. 인기 있는 여자배구나 농구, 축구도 있는데 굳이 예산을 들여 여자야구팀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아직 모르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여자야구에도 이렇게나 열정적인 선수가 많으니, 학교에 오셔서 선수들 운동하는 걸 한 번이라도 봐달라고 읍소해야죠. 그렇게 국민대 외 다른 대학교에도 여자야구 엘리트 팀이 생기면, 점차 중고등학교에도 엘리트 야구부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우선 대학야구 리그가 만들어져 실력을 키워놓으면 실업팀들도 생기고, 그 이후에는 프로리그도 생기지 않을지 꿈꾸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여자야구의 매력을 하나 전해주세요!
우리 선수들의 열정이 남다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야구를 왜 하냐는 얘기도 종종 들었어요. 남자야구팀에서도 오라는 곳이 있을 텐데, 왜 이 팀을 선택했냐고 물어보면 저는 열정을 봤다고 답해요. 물론 남자 선수들도 열정이 있죠. 프로팀에 입단하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친구도 있지만, 여자야구 선수들은 조금 달라요. ‘어떻게 이렇게나 간절하게 야구하지?’ 싶을 정도로요. 처음에는 1시간 버티는 것도 힘들어하던 애들이 2~3시간을 해내고, 뜻대로 안 되면 분하다고 우는 거예요. 처음엔 왜 울지 싶었는데 그만큼 간절한 거죠. 눈빛부터가 달라지는 거 무슨 느낌인지 아시죠. 그래서 이 열정을 계속 뿜어낼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첫 엘리트 여자 대학 야구팀 감독으로서 목표가 있을까요?
사실 채용이 결정된 이후에 잠을 거의 못 잤어요. 한 사나흘 밤샌 적도 있고요. 이걸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무척 많았어요. 저보다 더 좋은 이력을 가진 지도자도 있을 텐데, 일개 아마추어 지도자만 했던 제가 이걸 어떻게 하면 될지 고심했거든요. 근데 야구라는 건 단순히 전력을 잘 짠다고 해서 우승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죠.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선택했기 때문에, 단순히 우승 따위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감독이 아니라 반드시 역사를 만들어 내는 스승이 되겠다고요. 여자야구의 역사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구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여자야구, 솔직히 많이 어렵습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 등록 선수가 스무 명 안팎에, 2학년은 15명, 입학생은 8~9명 남짓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이 모두 엘리트 팀에 진학할 거란 보장이 없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사회적 이슈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야구를 통해 취업할 수 있는 사회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고, 그렇게 돼야만 더 많은 꿈나무가 대학 엘리트팀에도 진학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 얘기가 누군가에게 들리신다고 하면, 부디 깊은 관심과 함께 여자야구 실업팀을 만드는 데도 뜻을 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장 진희우, 부주장 박정현
<더그아웃 매거진> 대학 선수 코너에 여자 선수로는 첫 등장이에요. 자기소개 부탁해요!
진희우(이하 희우) 안녕하십니까. 국민대학교 여자야구부 주장 진희우라고 합니다.
박정현(이하 정현) 부주장 박정현입니다.
주장과 부주장은 어떻게 정해진 거예요?
희우 팀이 만들어지고 3~4개월 정도 지난 후에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회의한 이후에 정해주셨고요. 부주장은 팀원끼리 상의하고 투표해서 정했어요.
부주장이 보기에 진희우는 어떤 주장인가요?
정현 우선 일상생활이나 훈련할 때 가장 언니다운 모습인 게 정말 멋있고요. 저희가 아직 스무 살 정도 되는 어린 선수가 많은데 언니가 잘 이끌어 주고, 힘들 때도 선수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세요. 팀으로도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주고요.
희우 어유, 부끄럽습니다. (수줍)
본지에 여자야구 대표팀 선배들은 꽤 등장했어요. 접해본 적이 있나요?
정현 박민성, 박주아 선수가 출연했던 화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서 봤어요. (148호 ‘더그아웃 스페셜 인터뷰’) 저도 여자야구 팬으로서 인터뷰는 자주 찾아봤죠. 지금 여자야구 대표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선수들이다 보니 현재의 저로서는 알지 못하는 여자야구팀의 분위기라든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야구를 하는지 알게 돼 좋았어요.
희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일부러 여자야구를 잘 못 보겠더라고요. 그래서 출연했던 선수 인터뷰는 못 봤지만, 김라경 선수도 그렇고 여자야구를 알리기 위해서 무척 노력하고 계신 것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 있어요. (일부러 피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부끄럽지만, 그분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저는 야구가 무척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거든요. 그런 매체를 볼 때마다 저 자신이 작아져서 억지로 회피하곤 했어요.


어떻게 야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희우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십몇 년 전에는 여자야구의 존재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뭐가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게는 그런 현실이 큰 상처였나 봐요. 그래서 프로야구를 보긴 해도 솔직한 마음으로는 질투심이 자꾸 생겼어요. 이런 마음으로 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억지로 외면하다가, 지난해에 우리나라 최초로 여자야구 엘리트 팀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여자야구의 역사가 될 순간인데 놓치고 싶지 않았죠.
정현 저는 초등학교 4학년쯤에 아빠가 프로야구를 보고 계셔서 그때 처음으로 야구를 알게 됐어요. 평소에도 운동을 좋아했는데 TV 중계 화면에 나오는 선수들 폼을 따라 하면서 꿈을 키워오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사회인 야구팀에도 들어갔거든요. 근데 부모님이랑 조부모님이 반대하셔서 다시 학업으로 돌아와 평범하게 대학에 들어갔어요. 근데 공부가 정말 재미없었고, 이대로라면 제 인생도 그럭저럭 재미없게 흘러갈 것 같은 거예요. 그러던 차에 국민대에 여자야구부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이거다!’ 싶었어요.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마음에 지원서를 쓰게 됐죠.
과거에 야구를 피하던 마음이 지금은 달라졌을까요?
희우 물은 엎질러졌습니다. (웃음) 지금 도전하는 이 시간만큼은 다른 잡념은 버리고 야구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제일 큰 건 십몇 년 전 야구가 정말 하고 싶었지만, 여자였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그 시간의 저를 위로해 주고 싶었어요. 미련을 없애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해요. 내가 정말 야구선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고 싶었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 하루하루, 한 시간이 무척 소중하고 또 간절해요. 그래서 훈련 외적으로도 식단도 그렇고 휴식도 그렇고 루틴을 만들어가며 지내고 있어요.
사실 한국에서 여자야구는 불모지라고 할 만큼 환경이 어려운데, 다른 종목이 아니라 야구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희우 그러니까요. 저희도 항상 하는 말이에요. ‘왜 우리는 하필 야구를 좋아해서 이렇게 어려운 도전을 할까?’라고요.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탁구나 배드민턴 같은 종목도 아니고 어쩌다 야구를 좋아해서 이러고 있는지 저희도 그 이유를 알고 싶어요. 근데 저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게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봐요. 그냥 야구를 좋아했어요. 지금도 그냥 좋아하고 있고, 혼자 짝사랑 중입니다. (웃음)
정현 운명 같아요. 알게 모르게 저도 야구를 향해서 막 달려가고 있는 것 같고요. 다른 종목에는 이렇게까지 관심이 안 생기거든요.
지금은 어떤 훈련을 하고 있나요?
정현 그래서 지금은 몸을 만들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훈련보다는 체력 단련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언니 말대로 저희가 운동을 해왔던 사람이 아니니까 지금으로서는 몸에 근육을 붙여나가는 훈련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오히려 모두가 비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통하는 게 있겠어요.
정현 맞아요. 힘들 때 함께 힘들고요. 근육통도 같이 와요. 그 고통이 풀리는 시기도 비슷하고요.

김익 감독과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요.
정현 우선 정신적으로 많이 단련시켜 주세요. 앞으로도 긴 시간 운동할 거기 때문에 어느 순간 지치는 순간이 올 텐데, 그 순간을 위해서 김익 감독님이나 양석원 교수님이 철저하게 신경 써 주시곤 해요. 가장 중요한 건 멘탈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강조하세요.
당근보다는 채찍을 주는 지도자인가요?
희우 골고루 주시는데, 저희는 다들 야구에 정말 진심이다 보니까 당근도, 채찍도 그냥 “감사합니다!”하고 받죠.
정현 맞습니다. 뭐든 제게 자양분이 될 테니까요.
훈련 전후로 야구에 대해 바뀐 생각이 있나요?
정현 저희끼리 정말 자주 하는 얘긴데, 야구는 하면 할수록 어렵습니다. 사소하게 골반을 여는 각도, 손목을 트는 각도에 의해서 타구의 질과 속도가 크게 바뀌다 보니 정말 어렵더라고요. 알면 알수록 더 예민하고 세밀한 운동이에요.
희우 그래서 애들하고 얘기하면 ‘야구는 수학 아닐까?’라는 말도 해요. 사실 처음에는 하하호호 시작했어요. 그저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고, 공을 잡을 수 있음에 감사했거든요. 근데 점점 어려워지니까 생각도 많아지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어렵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해요. 이제야 우리도 배울 준비가 됐구나 싶고요.
지원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깊었을 것 같은데, 확신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정현 사실 입학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고요. 어떤 곳인지 얘기나 들어보자 해서 입학 설명회에 아빠 손 잡고 갔는데, 제 인생에서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고 느꼈어요. 아빠도 저한테 넌 공부에 재능이 없지 않냐며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용기를 얻고 확신을 갖게 됐어요. 아빠가 정말 열렬하게 응원을 보내주시는 지원자시죠. 아빠도 어릴 때 꿈이 야구선수라고 하시긴 했는데, 그래서 그런 걸까요?
희우 저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고민이 더 많긴 했죠. 근데 확신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야구 엘리트 팀이라는 역사에 제가 빠질 순 없겠다는 거였어요. 이 기회를 지나치면 평생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전에는 어떤 일을 했어요?) 사회복지사였고요. 사실 관둘 때도 회사에 솔직하게 말하지는 못했어요.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만둔다고 했는데…
다음 세대 여성들에게 야구선수가 당연해지도록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어쩌다 이런 사명감이 생겼는지 궁금해요.
희우 사명감이라고 하면 거창하고요. 제가 지금까지도 야구선수라는 꿈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 보면, 그 열 몇 살에 받은 상처가 너무 깊었나 봐요. 그래서 다음 세대 친구들은 저처럼 용기를 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고 싶은지 아닌지만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해요. 상처받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 누구도 감히 “어떻게 여자가 야구하냐?”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한 번 태어난 거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인생이 되게요!

여자야구의 발전을 위해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희우 저는 프로선수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점점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또 꿈꾸던 게 있는데, 기사를 보면 ‘프로야구선수 부자 타이틀’ 같은 이슈가 있잖아요. 그게 어느 날 ‘부녀 타이틀’이 된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프로야구 선수들의 따님들도 당연히 야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요.
정현 팬분들께도 마찬가지로 저희가 대회에 참가한다면 보러 찾아와 주시거나, 아니라면 중계를 지켜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 부탁드립니다!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에게 인사하고 인터뷰 마칠게요!
희우 저희가 최초의 여자야구 엘리트 팀이니 그냥 즐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우선 잘해야 리그도 생길 거고 실업팀도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건 그냥 지금의 야구를 열심히 하는 것이겠죠. 더 많은 분이 여자야구에 관심을 갖고, 여자야구가 더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이 팀에 있는 것을 영광이라 생각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정현 저희가 야구를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이 아니라 아직 부족할 테지만, 예쁜 마음으로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5년 166호 (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
페이스북 www.facebook.com/DUGOUTMAGAZINE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dugout_mz
유튜브 www.youtube.com/@DUGOUTMZ
네이버TV tv.naver.com/dugoutmz
<더그아웃 매거진>은 대단한미디어가
제작,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포스트 내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대단한미디어와 표기된 각 출처에 있습니다.
잡지 기사 전문을 무단 전재, 복사, 배포하는 행위를 금하며,
적발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