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보다 날카로운 체인지업
밤 9시가 넘었다. 9회 초가 끝났다. 그런데 요지부동이다. 이닝 보드는 ‘0’만 나열한다. 아예 점수 날 생각들이 없다. (17일 대구 라이온즈 파크, 키움 히어로즈 – 삼성 라이온즈)
‘이러다 연장 가겠어~.’ 막 하품이 나려던 무렵이다. 9회 말, 홈 팀이 기지개를 켠다.
첫 타자 김성윤이다. 직구 공략에 성공한다. 타구가 깔끔하다. 중견수 쪽으로 라인드라이브가 걸린다. 무사 1루. 뭔가 꿈틀거린다.
다음 타순이 문제다. 3번 구자욱이다. 평소 같으면 그냥 놔둔다.
하지만 왠지 미심쩍다. 앞서 3타수 무안타다. 더구나 두 번은 삼진이다. 왠지 무기력해 보인다.
‘혹시 작전이 걸리나?’ 그런 생각도 든다. 꼭 보내기가 아니더라도. 여러 상상력이 동원된다. 이를테면 기습(을 가장한) 번트, 치고 달리기, (1루 주자의) 도루 등등의 변화다.
그런데 아니다. 만두 감독은 단호하다. 괜한 솜씨 부리지 않는다. 가장 간결한 결정을 내린다. 중심 타자 아닌가. ‘책임지고 해결하라.’
그러나 불안감은 여전하다. 아니나 다를까. 초구부터 헛손질이다. 체인지업(122km)에 시원하게 강풍기를 돌린다.
“(투수 박지성의) 체인지업이 생각보다 좋더라.” (구자욱 경기 후 인터뷰)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앞 타자에게 직구를 맞았다. 그럼 이후는 변화구 승부가 순리다. 그걸 알고 들어갔다. 그런데도 쉽지 않았다.
카운트 1-1이 됐다. 운명의 3구째다. 또다시 체인지업이다. 초구와 똑같다. 코스도 비슷하다. 높은 곳으로 걸리는 형태다.

주장다운 인터뷰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정리했다. ‘좋은 상상을 하자. 잘 되는 생각만 하자.’ 그렇게 다짐하면서 임했다.”
그런 집중력이 한몫했다. 가벼운 스윙이 발사된다. 덕분에 간결한 타이밍이 만들어진다.
“빡!!!” 공 깨지는 소리가 난다.
우중간에 빨랫줄이 걸린다. 하얗고, 날렵한 포물선이다. 중견수, 우익수. 누구도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뻗어간다. 타구는 담장 아래까지 구른다.
1루 주자(김성윤)는 파열음과 함께 스타트했다. 의심할 필요 없는 타구다. 2루를 돌아, 3루로 달린다. 거기서도 멈추지 않는다. 좌회전, 또 좌회전이다. 있는 힘껏 액셀러레이터(가속기)를 밟는다.
홈이 코 앞이다. 거기서 시원하게 몸을 내던진다. 상대도 구경만 하지 않는다. 필살의 중계 플레이가 이뤄진다.
그러나 달리기가 빠르다. 두어 걸음이나 앞선다. 오각형 플레이트는 홈 팀의 차지가 된다. 스코어 1-0, 2시간 53분의 접전이 끝난다. 퇴근벨이 울린다.
라이온즈 파크가 환호에 휩싸인다. MVP를 향한 물세례가 쏟아진다. 그라운드 인터뷰 때다. 첫마디가 주장답다.
“오늘 투수들은 너무 잘 던졌는데, 저희가 점수를 못 내고 있어서…. ‘마지막 타석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연결시키자’ 하는 생각으로 타석에 섰다. 다행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 만렙
그는 전날(6월 16일) 휴가였다. 팀에서 하루 쉬게 해 줬다. 체력 관리는 위한 배려다.
“사실 어제도 경기에 나가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 돼서 못 나간 것이다. (월~화) 이틀을 쉬니까, 타격감 잡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다.”
이날 삼진 2개에 설명이다. 아울러 더 많은 타석에 대한 의욕이기도 하다.
물론 사회생활도 만렙이다. 도와준 스태프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는다.
“(1400경기 출장에 대해서) 다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체력 관리를 하고 있다. 또 팀에서 잘 신경 써 주시고, 트레이닝 파트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코치에 대한 인사가 빠지면 큰일 난다. 타격 담당 무라카미 다카유키(60)가 거론된다.
KBS N Sports의 <베이스볼 투나잇>에 이렇게 밝혔다.
“투수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을 주신다. 매 경기 브리핑도 너무나 열심히 해주시고, 투수에 대한 내용 같은 것을 알려주신다. (보안상) 방송에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무라카미 코치께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인터뷰는 또 있다. 이후 2차로 진행된다. 이번에는 현장 취재 기자들이 둘러싼다. 여기서는 또 다른 코치도 언급한다.
“무라카미 코치께서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말을 많이 해주셨고, 박한이 코치께서도 상대 투수에 대한 분석을 잘해주신다. 그런 것들이 모두 큰 도움이 된다. 감사함을 전한다.”
선배(박석진) 아들에 대한 극찬도 잊지 않는다.
“박준현을 처음 상대해 봤다. 어릴 때부터 지켜본 선수였는데, 직접 겪어보니 앞으로 대한민국의 에이스가 될 훌륭한 공을 가진 것 같다. 앞으로는 더 잘 준비해서, 안타를 치도록 하겠다.” (3타수 무안타 2삼진)

인터뷰 속 특별한 인물
0-0에서 나온 일타다. 생애 4번째 워크오프(walk-off)였다. 그것도 단타가 아닌, 3루타다. 1루 주자를 홈까지 불러들였으니, 얼마나 극적인 순간이겠나.
그런 짜릿함의 끝이다. 사방에 감사함이 차고 넘친다. 그중에 특별한 인물이 등장한다. 팀 선배 최형우다.
“요즘 (최) 형우 형이 배팅을 칠 때 가까이 다가간다. 자세하게 관찰하기 위해서다.”
조금 뜬금없다. 롤모델은 나이가 많다. 40대 초중반이다. 10살이나 많다(33세, 43세).
따지자면 언제 은퇴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 타자에게 뭘 배우겠나. 자신은 30대 초중반 아닌가. 타자로는 절정의 시기다. 그런데 뭘 배우겠다는 건가?
“형우 형 치는 것을 보면 예술이다. 오른쪽 어깨가 일찍 열리지 않는 상태에서 좌측 방향으로 강한 타구를 보내는 기술을 보면 감탄하게 된다. 난 그 부분이 부족해서, 많이 배우고 있다.”
스승을 가까이서 모시는 셈이다. 심지어 함께 실전을 뛰면서 말이다.
“덕분에 최근에 밸런스가 많이 좋아졌다. 형우 형을 보면서, 배운 것이 크다.” 후배의 진심이 느껴진다.
이런 칭찬은 한두 번이 아니다. 타격 훈련 때면 늘 감탄한다.
얼마 전이다. 황재균 해설위원과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배팅 케이지 뒤에서 누군가의 타격을 지켜본다. 반팔, 반바지 차림. 최형우의 프리 배팅이다.
황재균 “형우 형 보는데, 혼자 다 치고 있더라고.”
구자욱 “치는 게 미쳤어요. 도삽니다. 도사….”

에필로그
작년 겨울이다. 40대 타자가 팀을 나왔다. FA로 새 직장을 찾기 위해서다.
그때였다. 주장(구자욱)이 단장(이종열)에 문자를 보낸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형우 형 좀 잡아주세요.”
그것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영입은 이뤄졌다. 그리고 ‘타격 도사’가 친정 팀에 합류했다.
그는 몸소 실천한다. 함께 땀을 흘린다. 같이 안타도 치고, 삼진도 당한다. 그 생생한 가르침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게 젊은 사자들을 깨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