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의 환생, 단군이레 최고 미녀로 불리던 전설의 한국 여배우

70년대 아시아를 휘어잡았던 전설의 한국 미녀 배우 정윤희

원조 한류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여배우로 1970년대 장미희, 유지인과 더불어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명으로 이름을 날린 그녀였다. 심지어 다른 트로이카 일원보다 외모면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으며 아시아 최고의 스타로 이름을 알리기 까지 했다. 그녀의 이름은 정윤희.

정윤희는 1954년 생으로 경상남도 충무시에서 태어나, 부산으로 이사가 초중고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어릴 때 꿈은 피아니스트 였지만, 고교 졸업후 음대에 떨어지면서 미술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고, 주로 명동 일대에서 활동하며 서울 말씨를 익혔다. 이때부터 정윤희는 명동 일대에서 부산 미니스커트로 불리며 그 일대 최고의 미녀로 유명해 졌고, 그로인해 전국구 미녀로 유명해 지면서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그러다가 1974년 최고 흥행작인 영화 <별들의 고향>의 오디션에 응시하게 되었지만 보기좋게 탈락했고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연예계 진출을 두두리다가 19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김지미, 윤정희가 거쳐 간 영화 <청춘극장>의 주연을 맡으며 인지도를 알리게 되었고, 해태제과의 전속모델로 활동하면서 대중에게 친숙한 존재가 된다.

그러다 1977년 장미희와 함께 호흡을 맞춘 TBC 드라마 <청실홍실>이 크게 히트하면서 정윤희는 본격 차세대 스타로 떠오르게 되었고, 당시 세련된 외모가 주목을 받으면서 그 해에 가장 예쁜 여자 연예인으로 선정되게 되었다

이후 정윤희는 영화 <얄개 시리즈>와 <나는 77번 아가씨>, <죽음보다 깊은 잠>,<우요일>,<꽃순이를 아시나요>를 히트시켰고, 1981년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며 연기력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히트작을 내놓다가 1984년 건설회사 대표와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예계에 은퇴하게 되었다. 현재는 70살로 경기도에서 평범하게 살면서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수한 모습으로 살고있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화제를 불러왔다.

정윤희는 전성기 당시 해외에서도 많은 화제를 불러올 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했다. 홍콩 최대 일간지 ‘빈과일보’에서 ‘양귀비의 환생’이라며 동양을 대표하는 배우로 불리기도 했으며, 일본 방문 당시 현지의 한 영화인이 그녀를 보고 '일본 일류 여배우 100명을 합쳐도 정윤희의 매력엔 못 당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현재도 그녀는 지금의 아이돌그룹이나 톱 여배우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이들의 판타지와 동경의 대상이라는 평가를 지닐 정도로 여전히 화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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