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취재]‘도검 살인사건’ 그 후… 직접 구매해 보니

kkh4792@donga.com 2024. 10. 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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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도검 구입 누구나 가능, 범죄 악용 어쩌나

● 칼날 15cm 이상은 경찰 허가 받아야
● 도검 판매 사이트 “신체검사 없이 구매 가능”
● 우울증 환자라고 하자 ‘도검 구입’ 대행 유도
●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부적격자도 소지 허가
● “일정 기간마다 허가 갱신” “경찰에 영치하게 해야”

서울 은평구 소재 아파트 단지에서 같은 아파트 주민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살해한 30대 남성 백모 씨가 8월 1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살인 혐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한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서울 은평구 도검 살인사건에서 범인이 살해 도구로 사용한 것은 '일본도'였다. 7월 30일 오후 11시 22분경 담배를 피우러 잠시 아파트 단지로 나온 40대 가장 A씨는 단지에서 마주친 백모 씨가 휘두른 일본도에 어깨를 찔려 쓰러졌다. 골프 가방에 들어 있던 일본도를 꺼내 든 백 씨의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깨를 베인 A씨는 경비초소로 다급하게 달려가 경비원에게 신고를 부탁했다. 그러나 백 씨가 칼을 들고 쫓아와 모두 10여 차례 공격했고, A씨는 병원에 이송됐으나 결국 목숨을 잃었다. 당시 경비원은 신고하는 중이었다.

100㎝ 이상 장검이 범죄 흉기로

경찰 조사에 따르면 백 씨는 1월경 공격용으로 1m 길이의 일본도를 구매하고 소지 허가를 받기 위해 '장식용' 또는 '호신용'이라고 허위 신청했다. 일본도 사용을 위한 연습용으로 목검까지 추가로 구매한 정황도 드러났다. 백 씨는 2021년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한 뒤 3년간 정치·경제 기사를 읽다가 지난해 10월경부터 '중국 스파이가 대한민국에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망상에 빠졌고, 평소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자주 마주치던 A씨가 자신을 미행하고 감시하는 중국 스파이라고 생각해 범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해당 사건 이후 유튜버 강모 씨가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일본도를 휘둘러 경찰에 붙잡히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일어났다. 강 씨는 8월 8일 오후 9시경 술을 마신 상태에서 자신의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던 도중 일본도를 휘두른 혐의를 받는다. 그가 소지한 일본도는 길이가 각각 87㎝(칼날 59㎝, 손잡이 28㎝), 75㎝(칼날 53㎝, 손잡이 22㎝)인 2점이다. 현행법상 칼날 길이가 15㎝ 이상이거나, 15㎝ 미만이어도 칼날이 서 있어 흉기로 사용될 위험성이 있는 도검은 경찰청에 소지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강 씨는 일본도 2점을 허가 없이 소지한 혐의(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도 받는다.

그런가 하면 온라인에서 무허가로 8억 원어치 도검을 판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와 경기 남양주시에 사무실과 창고를 두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불법으로 일본도를 포함한 장검을 판매한 사건이다. 2020년 11월 도검판매업 허가를 받은 B씨는 2022년 5월 자진 폐업 신고로 허가가 취소된 뒤에도 네이버 쇼핑몰과 유튜브 등을 통해 도검을 판매한 혐의(총포·도검·화약류 등 무허가 판매)를 받는다. B씨가 2년 동안 무허가로 온라인 도검판매업체를 운영하면서 올린 매출은 약 8억 원으로, 범죄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을 벌였다.

‌‌일본도는 합법적으로 소지할 수 있는 도검 중에서 범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무기다. 최근 일본도 관련 범죄가 늘고 있는 것은 누구나 이 범죄용 흉기를 손쉽게 구매하고 소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도 도검범죄와 관련해 더는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도검은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어 범죄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캡처]

까다로운 소지 자격 규정, 유명무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심신상실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또는 알코올중독자, 정신질환자, 뇌전증 환자,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집행이 끝나지 않은 부적격자 등은 도검소지허가증(도소증)을 발급받을 수 없다. 20세 미만인 경우에도 도소증을 받을 수 없다.

도소증은 도검을 소지하려면 만들어야 하는 증서로, 사람이 아닌 도검에 발급된다. 다시 말해 도소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기준 이상의 도검을 무한정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준 이상의 도검을 하나 구입할 때마다 도소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예컨대 도검 10점을 구입하려면 도소증도 10번 발급받아야 하는 것이다. 도검 구입 단계부터 구매자는 판매자와 협의하에 경찰서에서 도소증을 발급받은 뒤 도검을 도소증과 함께 수령할 수 있다.

여기서 도검이란 칼날의 길이가 15㎝ 이상인 칼·검·창·치도(雉刀)·비수 등으로 성질상 흉기로 쓰이는 것과, 칼날의 길이가 15㎝ 미만이라 할지라도 흉기로 사용될 위험성이 뚜렷한 것 가운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을 말한다. 잭나이프(Jackknife·접어서 손잡이에 칼날이 들어갈 수 있는 주머니칼)의 경우 칼날의 길이가 6㎝ 이상인 것에 한한다. 비출(秘出)나이프(버튼 등을 누르면 스프링의 힘으로 칼날이 자동으로 펼쳐지는 형태)는 칼날 길이가 5.5㎝ 이상이고 45도 이상 자동으로 펴지는 장치가 있는 것에 한한다.

도검 소지 허가는 주소지 관할 경찰서에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확인 후 발급된다. 신청서에는 신청인 개인정보와 도검의 종류, 규격, 용도 등을 기재한다. 용도는 '수렵' '검도 수련' '예식지휘' '도살' '호신장식' '가보문화재' 등이다. 도소증 발급에 소요되는 기간은 약 7일에 불과하다.

일선 경찰서에서 도검 소지 허가 면허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부적격자의 도검 소지를 근절하자는 취지에서 까다로운 신원 조회와 철저한 신체검사 과정을 거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상은 경찰관의 설명과는 크게 달랐다.

도검 매매 무법 지대 '중고 거래 플랫폼'

9월 5일 일반인을 상대로 도검을 파는 한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갔다. "신체검사서를 별도로 제출하지 않고도 도검 구입이 가능하느냐"고 문의하자, "운전면허증은 신체검사를 포함하기에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은 신체검사서를 별도로 제출하지 않아도 도소증을 발급받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도검은 소지 허가를 갱신해야 한다고 해서 귀찮을 것 같다"고 하자, "의무 사항은 아니다"라며 도검 구입을 권유했다.

한 번만 허가받으면 사실상 영구 소지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소지 허가를 받은 이후 정신장애나 범죄 경력 등이 생기더라도 관할기관의 감독 및 관리가 별도로 이뤄지지 않는다. 총기류를 소지하려면 의료기관에서 발부한 신체검사서와 정신과 전문의 소견이 필요하고 3년에 한 번씩 허가를 갱신해야 한다. 이에 비해 도검류는 소지 요건이 상당히 느슨한 셈이다.

또 다른 도검 사이트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번에는 '우울증 환자'라고 밝혔더니, 판매자는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도검소지허가용 정신감정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체검사는 어차피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니 개인정보 동의서와 운전면허증만 보내주면 1주일 안에 도소증을 받게 해주겠다"고 장담했다. 도검상이 나서서 우울증 환자의 도검 구입을 대행하는 셈이다.

도검을 구입하기 전에 병원에서 받아야 하는 정신감정서는 경찰이 도검 소유 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 비중 있게 참고해야 하는 자료다. 도검의 경우에는 병원에서 정신감정을 받은 뒤 결과에 이상이 없어야 도검 구입이 허가된다. 하지만 정신감정서는 우편 등을 통해 거주지 경찰서로 전달되는 게 아니다. 검사자 본인이 직접 도검상이나 경찰서로 가져가게 돼 있다. 감정서에 '검을 소지하는 건 위험하다'는 진단이 언급돼 있으면 검사가 엉터리로 이뤄지는 다른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으면 해결될 일이다.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다거나 전과 사실을 암시해도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검 구입에 결격사유가 있음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도검을 구입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답한 판매업체가 적지 않았다. 한 업자는 "경찰 눈치 보지 않고 검을 소지하고 싶으면 가검(가짜 검)을 구입하라"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도검은 호신용 또는 장식용 대접을 받고 있을뿐더러 유통 단계의 관리 소홀로 정신병력이나 전과가 있는 부적격자도 쉽게 소지할 수 있다.

도검 소지 허가·갱신·처벌 규정 강화해야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12만 원에 판매되는 도검. [인터넷 캡처]
더 큰 문제는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도 도검 불법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 한 중고 거래 검색 사이트에서 도검 매물을 검색하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일도검 두 점을 12만 원에 판매한다는 게시물부터 일본 장인이 만든 일본도 두 점을 250만 원에 판매한다는 게시물까지 도검의 종류와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판매자에게 연락했더니 구매자의 심신상실과 정신장애, 전과 등에 대해 묻기는커녕 언급조차 없었다. 한 판매자는 도소증 소지자만 거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지만, 구두로 도소증 소지 여부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8조 등에 따르면 경찰로부터 소지 허가받은 도검이라도 인터넷을 통한 개인 거래는 엄연한 불법이다. 인터넷상에 판매 글을 남기는 등 관련 법규를 위반한 경우에는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73조 제1호의2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7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도검 소지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에 따르면 도검 소지 허가를 받은 인원이 2020년 1854명에서 2023년 2118명으로 14% 증가했다. 2024년 상반기(1~6월)에는 총 1226명이 도검 소지 허가를 받았다. 소지 허가를 받지 않은 도검도 적지 않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불법 무기 자진신고로 접수된 도검만 7598개에 달한다.

일본도가 범죄 도구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소유자가 도검을 집에 보관하며 언제든 소지할 수 있어서다. 도검은 엽총과 달리 소유자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대와 경찰에 맡겨둬야 하는 시간대가 정해져 있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도검류에 대한 규제를 엽총과 같은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처음 도검 소지 허가를 내줄 때 살상 무기로 악용되지 않도록 자격 검증을 까다롭게 해야 한다. 정신질환 여부와 이력을 파악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총포처럼 지구대 등에서 영치하도록 하기엔 행정적 한계가 있으므로 소지 허가 및 갱신,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게 현실적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도검 관리가 허술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관련법을 개정해 도검류를 비롯한 살상용 무기의 소지 허가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7월 3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현행법상 도검이나 가스발사총은 정신질환 병력 등을 확인할 신체검사서를 첨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규정이 느슨하다"고 지적했다. 국회 안에서도 법안 개정 움직임을 보인다. 여야 의원들은 관련 법안 개정안을 연이어 발의했다. 도검뿐만 아니라 총포, 석궁, 화학류 등에 대해 소지 허가를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정신질환 여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도검류 등에도 소지 허가를 5년마다 의무적으로 갱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이다. 특정강력범죄나 아동성폭력범죄 등을 저지른 자가 형의 집행 이후 10년 동안 총기 등을 소지할 수 없도록 하는 등 결격 사유를 추가한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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