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를 울린 '초속 5센티미터' 실사판, 감독은 원작을 어떻게 바꿨을까


“있잖아, 초속 5㎝래.” “응, 뭐가?”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너의 이름은’과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초기작 ‘초속 5센티미터’는 두 주인공 다카키와 아카리의 대화로 시작한다. 무한과 영원의 세계인 우주에 빠져 있는 소년과 찰나의 느릿한 움직임을 보는 소녀. 순정만화적 감수성과 섬세한 작화로 ‘신카이 월드’의 서막을 알렸던 이 작품이 19년 만에 실사영화로 재탄생해 지난달 25일 국내 개봉했다.
팬이 많은 작품에 다시 손을 대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 실사판 연출을 맡은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오쿠야마 팀만의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신카이 감독의 이야기에 큰 용기를 얻었다”면서 “두 프로듀서도 최대한 제 생각을 실현시키려 해줘서 부담이나 제약을 생각하지 않고 연출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오쿠야마 감독은 지난해 개봉한 ‘엣 더 벤치’로 국내 관객과 먼저 만난 바 있다. 20대 초부터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단편영화와 광고 영상을 찍고 요네즈 켄시의 ‘킥 백(Kick Back)’을 비롯해 가네코 아야노, 호시노 겐 등 유명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영상 아티스트다. 최근 국내 개봉한 영화 ‘마이 선샤인’을 만든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의 형이기도 하다.
오쿠야마 감독은 “저 역시 원작의 팬 중 한 명이기에 원작이 갖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지키려 했고, 신카이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내 이야기로서 뭔가를 넣지 않으면 원작의 개인적인 매력이 살아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내 실제 인생을 어떻게 투영할까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제작사에 따르면 신카이 감독은 이번 영화를 보고 "당시의 서툰 씨앗이 푸르름을 머금은 채 훌륭한 결실이 됐다"며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울면서 봤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원작은 초등학생 때 가깝게 지내던 다카키와 아카리가 진학과 이사로 멀어지면서 변화하는 관계를 소년, 고교생, 성인 시기의 에피소드 3편으로 나눠 그린다. 또렷한 흐름의 이야기가 아닌 단편적인 장면을 인물들의 내레이션과 감성의 흐름으로 이어 붙인 1시간짜리 애니메이션은 보다 촘촘한 서사의 2시간짜리 실사판으로 재탄생했다.
일본 현지에선 대체로 원작의 정서를 잘 살린 실사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간 배열은 현재에서 시작해 플래시백으로 과거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다카키(마쓰무라 호쿠토)와 아카리(다카하타 미쓰키)의 현재를 함께하는 인물들이 여럿 투입돼 서사의 빈틈을 채웠다. 초등학생 시절 두 주인공이 친해지는 과정도 보다 상세히 설명한다. 과거의 인연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2009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는 설정으로 현재화했다. 원작의 주제가 ‘원 모어 타임, 원 모어 찬스’를 다시 쓰면서도 요네즈 켄시의 ‘1991’을 더해 새로운 감수성을 불어넣었다. 1991년은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때이기도 하고 오쿠야마 감독과 요네즈 켄시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오쿠야마 감독은 “원작을 고교생 때 처음 봤는데 개인적인 우주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것으로 연결되고, 내면을 파고든 끝에 우주를 만나게 되는, 미시와 거시가 병렬돼 있는 서사 방식이 놀라웠다”고 했다. “원작의 사소설 같은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서 “너무 개인적이어서 남에게는 부끄러워 보여주지 못했던 감정을 어디까지 넣을 수 있을지에 주안점을 뒀다”고도 했다.
촬영은 치밀하게 준비했다. 원작의 인물 배치와 카메라 화각, 촬영법, 연출 의도 등을 분석해 일부 장면은 원작과 흡사한 영상을 연출했고, 실제로 원작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가서 촬영하기도 했다. 신카이 감독의 특징 중 하나인 직선으로 뻗는 빛을 고스란히 재현하려 애쓴 장면도 많다. “그리움과 새로움이 혼재해야 한다”는 생각에 디지털로 촬영해 16㎜필름에 입히는 최신 기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신카이 감독이 원작의 다카키에 자신을 투영했듯 오쿠야마 감독도 자신만의 다카키를 만들었고 그를 통해 고유의 정서를 완성했다. 그의 손을 통해 원작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30대 전후로 설정돼 있는 다카키처럼 나 역시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창작자로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첫 시사를 마치고 나온 순간이 새로운 한발을 시작하는 순간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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